사람&사람들 : 황금자 할머니 ''세상에 맺힌 한(恨)을 나눔으로''

지역내일 2011-01-12

세 번에 걸쳐 ''장학금 1억원'' 기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랬다. "내가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남을 도와야지"라고. ''광에서 인심 난다''지만 꼭 살림이 넉넉해야 남을 도울 마음이 생기는 건 아니다. 어려운 사람이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주머니를 털어 나눔을 실천하기도 한다. 정부 지원금과 연료비를 아끼고 폐지를 팔아 모은 돈을 아껴 2006년, 2008년, 2010년 세 번에 걸쳐 1억원을 강서구장학회에 장학금으로 기부한 황금자 할머니가 바로 그런 분이다. ''황금자여사 장학금''으로 기억되며 참다운 기부문화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고 있는 할머니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참담했던 위안부시절이 상처가 되어  
 1924년 함경도 태생인 황금자 할머니(등촌3동)는 9세 때부터 혼자가 되었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길거리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고 살다 17세가 되던 해 일본 순사에게 붙잡혀 흥남의 한 유리공장으로 끌려가서 노동을 했다. 3년 뒤 다시 간도지방으로 끌려가 5년간 일본군 종군위안부 생활을 해야 했다. 일본군의 군화발로 짓밟혀 뒤틀리고 뭉개진 손가락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할머니의 거친 인생을 말해 주었다.  
광복 후 조국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가정을 꾸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외로움에 길에서 떠돌던 여자 아이 하나를 데려와 양녀로 삼았지만 이 아이마저 열 살을 못 넘기고 죽어 다시 혼자가 됐다. 눈길을 헤치며 남대문 집에서 홍제동 화장터까지 죽은 딸을 업고 걸어가 화장장의 뜨거운 불길 속으로 던졌다. 측은한 할머니의 모습에 한 아주머니가 건네준 ‘뜨거운’ 국 한 사발이 춥고 배고파 죽을 것만 같았던 할머니를 살렸다.
위안부로 지낸 고통의 세월을 기억에서 지워내지 못한 할머니는 환청과 망상 속에서 망가진 건강으로 늘 병을 달고 살았다. 길을 지나가는 고등학생 교복만 봐도 일본 군인으로 착각하고 밤이면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환청에 시달려 잠을 뒤척이곤 했다. 남을 믿지 않아 외톨이로 지내며 사납고 무서운 할머니로 온 동네에 소문났고, 눈에 거슬리는 것을 참지 못하는 할머니는 괴팍한 성격이라며 이웃들로부터 따돌림도 당했다.

사랑으로 희망의 꽃이 피다
 희망이라고는 도무지 찾을 수도 없었던 할머니가 2002년부터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당시 등촌3동사무소에 근무했던 김정환(現 강서자원봉사센터 팀장)씨와의 만남으로 피 맺힌 한에서 서서히 해방되어 갔다. 날마다 동사무소에 들러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불만만 털어놓는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차분히 들어주며 작은 관심과 사랑으로 가슴 깊숙이 맺힌 한을 스스로 풀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게 시작한 인연으로 집으로 찾아와 사랑을 전해주는 김 씨를 아들로 삼았다. 
 유일하게 정을 나눠준 김 씨에게 할머니는 평생 모아온 돈을 남겨주고 싶었다. “네가 안 받으면 관 속에 넣어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할머니에게 뜻 깊은 곳에 쓰자고 김 씨는 설득했다. 천주교재단의 공원묘지를 마련한 할머니는 김 씨와 함께 둘러보고 오면서 마음을 바꿨다. “이제 평생 모은 돈을 관으로 가져갈 필요가 없겠다. 평생 모은 돈인 만큼 소중한 곳에 쓰고 싶다”면서. 마지막 인생에 돈을 가장 보람 있게 쓰는 것을 고민하다가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을 돕기로 했다.
 2006년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꼬깃꼬깃 모아두었던 4000만원을 강서구장학회에 내놓았다. 하루 세 끼 식사를 집 근처 복지관 무료 급식이나 배달 도시락으로 때우며 자신을 위해 쓰는 데는 한 푼도 벌벌 떨면서 모든 보조금을 꼬박꼬박 모았다. 11평 임대아파트의 난방비도 아끼고자 겨울에도 두꺼운 잠바를 입고 견뎠고 폐지까지 주워 모아 팔았다. 이렇게 모은 소중한 돈을 2008년, 2010년에도 3000만원씩 내 놓아 총 1억원의 이자수입으로 네 명의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황금자여사 장학금''을 줄 수 있게 되었다. 

''행복한 할머니''로 다시 태어나
 할머니의 방 한 쪽에는 미리 찍어 걸어두면 오래 산다는 말을 들으며 찍은 영정사진이 있다. 혈혈단신이라 장례를 치를 가족도 없는 할머니는 돌아가시면 강서구청에서 구민장을 하기로 약속 받았다. 강서구청 민원실에는 할머니의 부조상이 걸려있다. 강서구청을 찾는 사람들은 부조상을 보며 할머니의 얼굴을 기억하며 참다운 기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고 ‘황금자 여사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할머니의 이름과 숭고한 뜻을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06년에는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으로 선정되었고, 2007년에는 강서구민상 대상을 받았다. 또한 강서구를 대표하는 인물, 문화, 자연 등 유ㆍ무형 자원을 발굴하는 ''강서40경''으로도 선정되었다. 강서40경에는 조선시대 한의학의 대가 허 준을 비롯해 화가 겸재 정 선 등 5명을 ''강서 대표 인물''로 선정했지만 생존하고 있는 인물은 황 할머니가 유일하다. 
 전 재산을 장학기금으로 내놓은 뒤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던 할머니는 사회복지사들과 충남 태안 서해바다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 바다를 보고 왔다. 그때 제주도 유채꽃밭에서 찍었던 사진을 벽에 걸어놓고 바다에서의 추억을 되새겨본다. "지금까지 좋은 일 충분히 하셨으니 이젠 제발 당신을 좀 위해 사시라"는 주위 사람들의 진정어린 충고를 받아도 장학금 앞에선 황소고집을 피운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장학금으로 공부를 계속하며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부모도 나라도 없이 최악의 상황에 내팽개쳐 불행하게 살면서 맺혔던 자신의 ‘한’이 조금씩 풀어지기 때문이다. 
 작년 추석부터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거동조차 자유롭지 못해 휠체어에 의존해야 다닐 수 있게 된 할머니는 "어떤 학생들이 내 장학금을 받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지 보고 싶어"라며 수줍게 짓는 미소에서 순수함이 묻어났다. 할머니의 인생은 비록 한 번도 꽃핀 적 없이 시들었지만 장학금이 가난으로 상처받는 학생들에게 용기와 힘이 되어 활짝 꽃을 피우는 것이 보고 싶은 것이다. ''황금자여사 장학금'' 1억원의 원금은 계속 남아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에게 기억되며 따뜻함으로 전해져 또 다른 사랑으로 전달될 것을 믿기에 할머니는 행복하다.
황윤정 리포터
hyj66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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