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강남 수험생 부모들 속 얘기

우울한 수험생 부모, '심리적 탯줄'을 끊자

자녀의 대학 입시 결과에 따라 천국과 지옥 경험해

지역내일 2011-02-21 (수정 2011-02-21 오전 11:31:34)

2011학년도 입시를 치러낸 학부모 박 모(45)씨에게는 아직도 힘겨웠던 그 때의 순간순간들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엄마, 왜 나를 뽑아주는 대학이 하나도 없을까?” 대입 수시전형에 모두 탈락한 딸이 절망적인 심정으로 보내온 문자에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힘들게 공부해온 게 어디 가겠니? 우리 크게 마음먹고 정시까지 한 번 가보자. 힘내, 우리 딸!” 아이의 상처받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려고 이렇게 답장을 보내긴 했지만 정작 자신은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듯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조차 힘들어 링거를 맞으며 버텼다. 
지난 입시에서도 수많은 학부모들이 그야말로 집집마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여정을 거쳤다. 수험생을 둔 엄마에게서 합격 소식을 알리는 문자나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절대로 먼저 연락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하나의 불문율인 나라, 이 땅에서 입시전쟁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강남 부모들의 우울한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재수, 삼수 뒷바라지할 생각에 억장이 무너져
자녀가 목표로 했던 대학 수시전형에 일찌감치 합격한 경우 엄마 아빠는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기분 좋게 한 턱 내고 다니거나, 가족 모두 큰일을 해냈다는 안도감에 자축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느 해보다 치열했던 2011학년도 입시에서 그렇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경우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입시 실패로 인해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부모들이 더 많은 실정이다. 자녀의 입시 결과에 따라 부모들이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연년생 남매를 둔 학부모 정 모(46)씨는 재수를 한 딸이 수능시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삼수를 하겠다고 선언을 한데다가 아들까지 재수를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몸져누웠다. 공부를 아예 못하는 아이들이라면 그만하라고 다그치기라도 하겠지만 둘 다 상위권이고 공부 욕심도 많으니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부모 입장에서도 아이들이 그동안 정말 힘들게 공부해왔는데 만족스럽지 못한 대학에 다니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그러자니 자신은 도대체 몇 년이나 수험생 부모로 살아야 하며, 하나도 아니고 둘 다 다음 입시에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어떨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다. 강남에서 두 아이 대입 뒷바라지 한 후 병이 든 엄마들이 있다는 얘기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자신의 처지를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아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지낸다. 동네 마트에 나갔다가 아는 엄마라도 만나면 아이들 얘기를 물어볼까봐 필요한건 전화로 주문하고 외출도 거의 하지 않은지 오래다. 평소에는 친한 엄마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었지만 지금은 사람만나는 게 제일 싫어 소위 말하는 잠수 탄 수험생 엄마가 됐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결과가 마음의 병으로
대치동에 사는 학부모 김 모(45)씨는 비록 아들이 평소 실력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한 대학에 합격했지만 재수를 시키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강남 아이들이 재수는 기본으로 생각한다지만 몸도 의지도 약한 아들이 재수를 하기에는 무리인 것 같아서다. 정작 아들은 크게 안타까워하지도 않고 이제 대학생이 된다는 사실에 홀가분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들 하나 최고로 교육시켜보겠다고 10여 년 간 강남 전세살이를 감수한 엄마 자신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당연히 재수 시켜야지 왜 그러냐며 이상하게 보는 주변 엄마들의 시선도 화살이 돼 꽂히고, 자신의 아들보다 성적이 낮았던 아이들이 더 나은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도 억울해 속이 끓는다. 게다가 대놓고 말은 안 해도 “그동안 애 교육에만 매달려 강남에서 온갖 유난은 다 떨더니 겨우 그 정도였냐”며 뒷말을 하고 있을 시누이나 동서를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입시를 치르면서 온 몸의 진을 다 뺐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결과마저 마뜩하지 않으니 경쟁에서 낙오자가 됐다는 절망감에 빠졌다. 결국 외출했다가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고 현기증이 심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동안 아이의 입시에만 온통 신경을 쓰느라 정작 갱년기 우울증 운운할 여유조차 없었는데 갑자기 밀려드는 허무함을 감당하기가 힘들다.
자녀의 입시 실패를 자신의 탓으로 여겨 괴로워하는 엄마들도 많다. 학부모 강 모(45)씨는 자신이 다른 엄마들에 비해 정보가 부족해 똑똑한 아이를 제대로 이끌어주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게다가 비록 소위 말하는 SKY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실력이 되는 아이를 엄마인 자신이 입시전략을 잘못 세워 실패하게 만들었다는 자책감도 지울 수가 없다. 재수를 해도 상위권 재수생이 넘쳐나는 올해 입시에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고 경제적인 여유도 없어 남들처럼 유학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도 못할 입장이라 이래저래 한숨만 깊다.




아빠들이 겪는 좌절감도 엄마들 못지않아
요즘은 자녀를 하나 둘씩만 낳아 아빠들까지 교육에 관심을 쏟는 시대이다 보니 자녀 입시 실패에 대해 아빠들 역시 엄마들 못지않게 좌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입시에 실패한 딸을 둔 아버지 김 모(47)씨는 어지간한 모임은 모두 거절하고 퇴근하기가 무섭게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회식자리에서 ‘누구네 아들, 딸은 어느 대학에 합격했다더라’하는 소리도 듣기 싫고 더군다나 공부 잘하던 자신의 딸은 어떻게 됐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일일이 대답하기는 더 싫어 만남을 피하게 되는 것이다.
딸이 외고에 합격했을 당시만 해도 주변의 부러움을 받으며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딸은 웬만한 외고생이면 다 들어가는 줄 알았던 상위권 대학에 모두 탈락했고 결국 재수를 하겠다고 한다. 명문대 출신인 한 선배가 아들이 같은 대학에 합격하니 자신이 합격했을 때보다 더 기쁘더라고 한 말이 생각나 씁쓸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니 수년간 밤늦은 시간에 학원까지 데리러 가도 피곤한 줄도 몰랐고 학원비다 과외비다 하면서 뭉칫돈이 들어가도 아까운줄 모르고 뒷바라지 했는데. 자랑스럽기만 했던 딸이 한 순간에 실망감을 안겨줘 허무한 마음뿐이다.
회사에서도 일을 할 기운이 나지를 않고 뭘 해도 재미가 없어 좋아하던 운동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있다. 아내 역시 심한 좌절감을 겪고 있어 서로 대화조차 나누지 않고 썰렁하게 지내는 지경이다. 그동안 애 교육을 어떻게 시켰냐는 아내에 대한 원망도 왜 더 최선을 다해 공부하지 않았냐는 아이에 대한 질책도 모두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부부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가도 자식이 명문대에 합격한 것을 계기로 관계를 회복한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으니, 자녀의 입시 결과가 부부 사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세태다.

장은진 리포터 jkumeu@yahoo.co.kr




우울한 수험생 부모들에 대한 분석 & 조언

1. 상실감에서 비롯된 우울
우울의 정신역동적 원인은 바로 상실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것을 잃어버렸을 때 나타나는 심리적 반응이다. 공부에 욕심이 많아 상위권이었던 아이들이 대입에 실패한 경우 엄마가 상실한 것은 자신이 그리던 자녀의 이상형이다. 우리 아이는 좋은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믿음이 상실되면서 우울감이 생긴다. 또한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지면서 불안감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일단 아이들 스스로 재도전하겠다고 하는 한 엄마의 이상형이 깨졌다고 해서 지나치게 마음 상해하는 것은 금물이다.

2. ‘심리적 탯줄’을 끊어라
엄마는 어디까지나 코치로서의 역할을 했어야 하는데 아이들과 같은 플레이어로 생활해 왔기 때문에 입시 실패 앞에서 지치고 자책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적 탯줄’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아직 이것이 이어져 있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이제부터라도 아이들의 삶은 아이들 자신의 것이라는 인식을 절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아이들이 겪을 모든 역경에 엄마가 함께 플레이어로 있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3. 부성이 풍부한 아버지는 자녀의 실패에 우울해하지 않아
믿었던 아이가 입시에 실패해 우울한 아버지들, 그 마음을 냉정하게 돌아보면 자녀를 자신의 아파트 평수나 자동차 배기량과 비슷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나 정체성을 구성하는 페르소나처럼 여기는 것으로 이것은 자녀에 대한 사랑과는 다르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아버지에게 주었던 기쁨과 감동을 생각하고 자녀 스스로 살아가는 인생에서 그러한 휴식처가 돼 주는 것이 진짜 아버지의 역할이다. 다른 사람의 자녀가 부럽다면 그것은 자신이 그 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면이 그만큼 있다는 뜻일 수 있다. 진정으로 부성이 풍부한 아버지는 자녀의 입시 실패 때문에 기가 죽거나 우울해하지 않는다.

4. 서로 탓하며 다투는 부모 모습이 아이에겐 가장 큰 상처 돼
자녀의 입시 실패로 인해 부부문제가 흔히 발생하곤 한다. 주로 과거에 대한 회한으로 시작해 ‘~하게 할걸’로 이어지고 ‘내가 ~하자고 했잖아’하면서 서로 탓을 하다가 결국 싸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운동경기에서 우승을 하지 못한 팀의 감독과 코치가 서로 싸우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경기는 선수가 했는데 말이다. 아버지는 아이와 함께 입시의 일선에 있었던 엄마의 상실감을 다독여주고 더 도와주지 못한 부분에 미안해하는 대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아울러 엄마는 아무리 속이 상하더라도 자신의 실망감을 자녀에게 드러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의 문제로 인해 부부가 다투는 것이 자녀에게 심리적으로 가장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도움말 연세휴클리닉 노규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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