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진천군 두메산골에 살던 소녀는 오빠들처럼 사십 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산길을 넘어 학교에 다니는 일이 딸에게는 위험하다며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아이들 낳아 키우며 공부와 담을 쌓고 살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환갑을 훌쩍 넘긴 2010년 가을, 일산종합사회복지관의 문을 두드렸다. 글사랑교실 목련반 늦깎이 학생 조순남 씨 이야기다.
글사랑교실 만나 배움의 한을 풀다
“지금은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어요. 딸을 밖에 내보내기 쉽지 않잖아요.”
중학교에 가려면 살림살이를 챙겨서 읍으로 나가 자취를 해야 할 만큼 외진 동네였다. 뒤늦게 가까이에 초등학교 분교가 생겼지만 이미 15살, 배움을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았지만 아쉬움은 환갑이 넘도록 사그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한글교실을 찾고 나서야 마음속에 꽁꽁 뭉쳐 있던 배움의 한을 풀었다.
“배움에 굶주려 있던 터라 고마웠죠. 같이 공부하는 분들 분위기 좋고요. 어르신들이 더 열정적이라 힘입어 배울 수 있었어요.”
늦게라도 시작할 수 있었던 데는 남편의 도움이 컸다.
“부모 원망 하지 말고 늦게라도 배워라, 당신은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어요.”
신문 사설을 챙겨 아내에게 보여주고 공부하는 방법도 일러 주었다.
“남편은 교육도 받았고 나는 배움이 짧은데 못 배운 것 탓하지 않았어요. 항상 고맙죠.”
글사랑교실에 다닌 지 2년 째, 교복을 입고 소풍도 다녀왔다. 숙제도 혼자서 척척 해내는 자신이 자랑스럽다. 가장 기쁜 것은 남 앞에서도 떳떳하게 글씨를 쓰는 일이다. 주소 하나를 쓰려 해도 움츠러들던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배움으로 이끌어준 남편에게 고마워
매년 가을이면 일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글사랑교실 수강생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연다. 올해에는 한글날을 맞아 지난달 6일 중산동 안곡습지공원에서 진행했다.
조순남 씨는 남편에게 편지글을 썼다. 읊조리듯 써내려간 글에 찬찬한 마음씨가 비친다.
‘내가 복지관 글사랑교실에서 공부한다고 했을 때 열심히 하라고 책과 학용품을 많이도 사왔지요. 늦지 않게 가라고 도와주어서 항상 고마웠답니다. 당신은 이런 기분은 모를 거예요. 이렇게 배울 수 있어서 감사해요. 말로는 표현 못했는데 글로 몇 자 적어 봅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남은여생도 서로 도와주며 즐겁게 삽시다. 건강하세요.’ -글사랑교실 백일장 출품작 ‘사랑하는 남편에게’ 본문 중에서
구구절절 남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묻어나는 이 글은 60여개 출품작 가운데 장원으로 뽑혔다.
조순남 씨에게는 작은 바람이 있다. 일주일에 두 번 배우는 수업이 세 번으로 늘었으면 하는 것이다.
“화 목 이틀만 하는데 하루 더 늘렸으면 좋겠어요.”
소박한 그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배움에 진지한 이 어르신 앞에서 배움의 참된 의미를 되짚어 본다.
ㄱㄴㄷ부터 긴 문장 글쓰기까지 초등과정 배우는 글사랑교실일산종합사회복지관은 9년 째 글사랑교실을 열고 있다. 여자로 태어나 혹은 가난 때문에, 삶의 굴곡 앞에서 좌절당한 성인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사회나 직업에 적응하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생활과 밀접한 교육을 진행한다. 초급부터 상급까지 다섯 개 반으로 나누어 초등교과과정을 가르친다. ㄱㄴㄷ부터 시작해서 홀받침, 쌍받침, 문장 읽고 쓰기를 배운다. 생활에서 사용되는 간단한 서류 익히기와 글쓰기도 진행한다. 주2회 2시간씩 진행하며 강사들은 대부분 전직 교사들이다. 상급반인 목련반을 지도하는 안영자 씨는 “옛날에 못 배운 할머니들이 허리 아프고 다리 아파도 하루도 빠짐없이 나와 주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백지권 사회복지사는 “한글 수업 이외에도 입학식, 봄 소풍, 백일장, 수료식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학창시절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한다.
우리지역 성인대상 한글강좌 여는 곳
복지관 / 강좌 / 위치 / 문의전화 (031)
일산종합사회복지관 / 글사랑교실 / 일산서구 일산동 / 975-3322
문촌7종합사회복지관 / 은빛새롬학교 / 일산서구 주엽2동 / 916-4071
흰돌종합사회복지관 / 청춘노트학교 / 일산동구 백석동 / 905-3400
문촌9종합사회복지관/ 한글배움터 / 일산서구 주엽2동 / 917-0202
원당종합사회복지관 / 은빛학교 / 덕양구 성사동 / 966-4007
덕양노인종합복지관 / 배움대학 한글반 / 덕양구 화정동 / 969-7781
일산노인종합복지관 / 국어반 / 일산동구 장항2동 / 919-8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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