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고등학교의 조건 II - 참된 멘토의 길

지역내일 2011-12-17

강현석
우리들학교 대표교사
031.912.1237


“힘들지 않으세요?”
<행복한 고등학교의 조건>이라는 제목의 지난 칼럼(본보 10월 13일자)을 접한 분들께서 가장 많이 해주시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질문은 똑같으나 풍기는 뉘앙스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수능, 논술 등 수험생 지도와 각종 교양강의, 진로상담, 생활지도, 학습태도 관리 등 아이들 하나하나의 모든 면을 세밀하고 주의 깊게 챙기고 있음을 아는 재학생 학부모들의 말씀에는 대체로 진심어린 걱정이 담겨있고(‘건강 돌보세요.’), 아직 우리들학교와 직접 연을 맺고 있지 않거나 관심만 갖고 계신 분들의 말씀에는 때때로 약간의 의구심이 묻어나기도 하죠(‘에이, 그 모든 걸 어떻게 챙겨?’).
그에 대한 대답도 쉽지는 않습니다. “아뇨,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라고 하자니 거짓말이 되고, “대신 보람이 있으니까요.”라고 하자니 너무 상투적입니다. 지난 칼럼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들학교에서는 사실 “힘든 만큼 행복합니다.”가 정답이지만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분들에게는 입에 올리기가 진짓 낯간지럽죠.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 문장가인 유한준 선생의 말로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된다.’는 뜻이라네요. 유홍준 교수께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문)라는 말로 멋드러지게 각색하기도 하셨죠.
청소년기의 모든 아이들은 아픕니다. 아니, 아프지 않으면 청소년이 아니죠. 이른바 성장통!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시기니까요. 이때의 아이들은 부모와의 관계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입시 경쟁 때문에 배가 아프고,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에 졸음이 옵니다. 좋지 못한 습관을 버리지 못해 가출을 하고, 노력에 비해 성적이 오르지 않아 무기력해 하고, 일관되지 않은 어른들의 모습에 반항을 하죠.
참모습을 알지 못해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해 보지 못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두통약을 주고, 배가 아프다고 하면 집이나 병원에 보내고, 조는 아이는 그냥 재웁니다. 보이는 것이 그것뿐이기에 해줄 수 있는 것 또한 그것뿐이고, 그러다보면 본의 아니게 교사로서의 본분보다는 아이들의 환심과 인기에 얽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알기에 사랑하고, 사랑하기에 더 많은 것을 다르게 보는 선생님(이런 선생님을 저는 멘토라고 부릅니다)은 다를 수 있습니다.
부모와의 갈등이 있는 아이에게는 이모, 삼촌이 되고, 입시 경쟁에 지쳐 있는 아이에게는 함께 뛰는 동료가 되죠.
아이들 사이의 미묘한 갈등을 보이지 않게 조정하는 여우 같은 책사일 때도 있고, 핵가족 시대의 왕자 공주님들을 다스리는 사자 같은 제왕일 때도 있습니다. 좋지 못한 습관을 고쳐 놓기로 마음먹으면 냉혹한 악마가 되고, 노력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아 의기소침한 아이 앞에서는 갖은 재롱을 마다않는 철없는 천사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멘토의 길, 매일 매일의 일상은 종행무진, 변화무쌍한 만큼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종국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합니다.
수능 대비 9회말 전력투구에 체력이 떨어진다 싶을 때쯤이면, 한 녀석이 슬그머니 다가와 영혼의 비타민을 안깁니다. “선생님 근데, 나 이제 시험 볼 때도 배가 안 아파.”(예전의 학교에서 내신경쟁, 입시경쟁 때문에 신경성 배앓이로 고생하던 이 녀석, ‘선생님한테 밉지 않게 반말하기’가 특깁니다.)
월요일 멘토링 시간에 짐짓 악마로 변신해서 눈물이 쏙 빠지도록 열변을 토한 후, 쉬는 시간 연구실에 앉아 부르튼 입술에 입술 보호제를 바르고 있자니 다른 녀석이 빼꼼 문을 엽니다. “샘, 이거 드세요.” 녀석의 손에 들려져 있는 건 ‘진짜’ 비타민 약. 이런 걸 줄 때면, 주는 걸로 끝내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먹는지 집요하게 감시 감독까지 하는 무시무시한(?) 원칙주의자입니다. (약 먹는 걸 그리 즐기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겐 특히 그렇죠.)
아이들 역시 선생님들을 알고 사랑하고 참 모습을 보기에, 이처럼 아이들이 선생님들의 멘토가 되기도 합니다. 멘토와 멘티가 서로 자리를 바꾸는 셈이죠. 아이들은 선생님들을 멘토 삼아 스스로 성장하고, 선생님들은 그렇게 성장하는 아이들을 멘토 삼아 스스로를 가다듬습니다.
“어? 호랑이다.” (가끔 불같이 호통을 치다보니 무의식중에 이런 표현도 등장합니다.)
“지금 선생님한테 반말하는 거임?”
“응? 그럴 리가. 혼잣말인데…요.”
멘토와 멘티가 자유 교섭하는 사이에서는 이런 식의 위아래를 알듯 모를 듯한 대화는 일상이고 진지한 대화도 쿨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지난 번 상담 때, 속 많이 상했냐?”
“에이, 뭐…. 나도 사실 울었지만 샘도 좀 너무 하긴(!) 하셨죠.”
“어? 그랬어? 일부러(!) 그런 거야. 미안해~.”
“켁~. 괜찮아요~.”
격의 없는 대화 속에서도 선생님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는, ‘내가 너 미워서 그랬겠냐? 다 너 잘 되라고 그런 거지.’ 같은 촌스런 군더더기 말이 필요치 않은 센스쟁이 아이들. 분명 선생님들의 스승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몇몇 아이들이 연구실 문에 붙어 인사를 하네요. “안녕히 계세요~.” “샘~ 빠이~.” 배꼽 인사를 하는 녀석, 가열차게 두 손을 흔드는 녀석, 다양도 합니다.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휴일임에도 나는 글도 쓸 겸 학교 블로그도 꾸밀 겸 나와 있었고, 아이들은 휴일 자습을 하러 나와 있었죠. 일요일까지 출근해서 일하려니 힘들지 않냐구요? 오히려 행복합니다. 아이들도 행복해 보이네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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