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렬한 순간의 몰입에 빠지다!!
일산2동주민센터 크로키반 ‘한뫼 크로키’
30초, 1분, 혹은 1분 30초마다 포즈를 바꿔가는 모델의 특징과 느낌을 재빠르게 잡아내 스케치북으로 옮기는 크로키(croquis)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일산2동주민센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인체의 특징과 움직임을 그리는 누드크로키를 함께 작업하는 ‘한뫼크로키’ 회원들이다. 빠르고 단순한 선으로 그려내는 크로키에 푹 빠진 이들 회원은 20여명. 매주 크로키 수업엔 10여명이 참석한다.
사실 이들 회원들 대부분은 아마추어가 아니다. 유현숙, 유윤식, 천융자 씨 등 회원들은 10여 년 전부터 함께 해온 크로키 동호인들. 이들이 주축이 되어 일산2동주민센터에서 매주 금요일 오후 크로키를 함께 그리면서 ‘한뫼 크로키’로 다시 시작했다.
크로키는 영어로 퀵 스케치(quick sketch), 즉 단시간 내에 빠르게 그리는 그림을 말하는데 피부색과 곡선이 모두 다른 인체를 그리는 데는 고도의 테크닉과 순발력, 집중력이 요구된다. “크로키는 짧은 순간에 끝내야 하는 그림이죠. 단시간에 작업이 이뤄지지만 짧지만 강렬한 몰입의 매력이 있는 작업입니다.” 한뫼 크로키의 회원이자 신입회원들의 크로키를 지도하고 있는 유현숙 씨의 크로키 예찬이다.
그래서 매주 금요일 오후, 30초에서 2분 사이 정해진 시간 안에 끊임없이 다른 동작을 취하는 모델 주위를 둥글게 자리잡은 회원들이 캔버스에 수십 장의 스케치를 하는 동안은 세상이 멈춘 듯 정적이 흐른다. 포즈를 취한 모델을 바라보고 이내 스케치북에 몰입하는 순간 ‘삭삭’ 연필 움직이는 소리만 오가는 긴장된 분위기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 속 모델의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를 생생하게 표현했을 때의 묘미가 대단하다는 회원들. 유현숙, 유윤식 회원을 비롯해 김미옥 소미경 유윤식 김희숙 이헌영 조영임 주난숙 천융자 한영숙 등 10여 명의 회원들은 지난 5월 15일~21일 고양아람누리 갤러리누리에서 열린 ‘한뫼 크로키’전을 통해 10여 년 내공이 쌓인 크로키 실력을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버릴수록 얻어지는 크로키의 매력
올 3월 개인전을 가진 바 있는 한뫼 크로키의 청일점 유윤식 씨는 크로키의 매력에 대해 “2시간 여 동안 스케치북 한권 분량의 인체 그림을 그리지만 같은 모습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어려서부터 인상 깊은 사물, 관찰한 것, 착상 등을 즉시 스케치했던 것이 그의 천재적인 재능의 근간이 됐다고 하죠. 또 죽을 때까지 수만 장의 크로키 작품을 남겼고요. 그만큼 크로키는 모든 미술작업의 기초이자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현숙 씨는 “회화에서 초안이나 스케치, 밑그림 등의 뜻을 지닌 기법상의 용어로 쓰이는 크로키(croquis)는 짧은 시간 안에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화면에 옮기는 작업으로 모든 미술작업의 기초이자 꼭 필요한 공부”라며 “미술의 가장 기초공부인 동시에 또 대상의 특징과 동세를 순간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작품은 단순화되고 요약된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작가의 감성이나 감동이 솔직하게 발현된다는 점에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큰 작업”이라고 덧붙인다.
“크로키는 손을 늘 굳지 않게 하고 감각을 익히는 그림의 기본 작업이지요. 그래서 초보자부터 전문가들 모두 크로키를 그리기 때문에 입문하기도 쉽고 또 반면 숙련된 작품을 내기도 어렵다고 할 수 있어요.” 천융자 씨의 말에 김희숙 씨는 “빠른 시간 안에 작품을 완성하는데 어려움도 있지만 절제되고 단순한 선들을 통해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묘미가 있어요. 주어진 시간은 단 3분. 이 짧은 시간 안에 눈앞에 있는 대상의 감정을 읽어내고, 종이 위에 빠른 손놀림으로 그려내는 즐거움이 대단한 작업”이라고 한다.
학창시절부터 서예, 데생, 유화 등 20여 년 동안 다양한 미술작업을 했다는 이헌영 씨는 “크로키는 한뫼 크로키를 통해 처음 접했는데 짧은 시간 안에 그릴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재료도 많이 필요치 않아 손쉽게 그릴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죠”라고 말한다. 한영숙 씨도 크로키 예찬론을 편다.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는데 할수록 빠져들게 됩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움직이는 육체의 동선을 파악하고 그 느낌을 바로 종이 위에 그려내야 되기 때문에 작업 하는 동안 모든 신경을 한 곳에 쏟아내다 보면 세상걱정도 다 잊게 되고요.”
크로키 경력은 짧지만 이번 전시회에 함께 참여했다는 김미옥 씨는 우연히 주민자치센터의 크로키 전시를 보고 배우게 됐다고. 초보라도 연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준 회원들 덕분에 부족한 실력이지만 전시회까지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사실 때로 누드라는 어휘에 호기심을 갖고 일회성 이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는 대상이 누드모델이라는 사실이 흥미를 유발하기 쉽지만 누드커로키는 미술에 대한, 또는 인체에 대한 보다 진지하고 아카데믹한 작업이다.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어떻게 시작해야하는지 접근하기 쉽지 않은 소재라고 하지만 꼭 이렇게 그려야 한다는 특정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회원들은 “다만 크로키라는 그림이 사물의 특징과 움직임에 중점을 두어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그리는 기본개념을 이해하면 조금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 그런 만큼 미술을 처음 접하는 초보회원들도 이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단다. 한뫼 크로키 회원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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