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에 대화 나누는 여유로운 스포츠
남녀노소 누구나 빠져드는 포켓볼
포켓볼은 근사하다. 긴 큐를 잡고 집중된 에너지로 공을 치는 순간의 포즈도 아름답다. 천천히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게임을 하는 동안 차 한 잔을 곁들일 수 있는 흔치 않은 레저 스포츠다. 국내에는 1993년에 도입됐고, 90년대 중후반에는 부흥기라 할 만큼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일단 한 번 빠지면 그 매력에서 쉽게 헤어 나오기 어렵다는 포켓볼에 푹 빠진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살면서 가장 잘한 일, 포켓볼
장항동 라페스타에 위치한 포켓볼장 ‘컬러오브머니’를 찾아갔다. ‘포켓볼 얼짱’ 차유림 선수를 배출한 조필현 선수(대한당구연맹 소속)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연포켓볼장이라 연인들의 데이트장소로도 유명하다. 꾸려진 지 십년 이상 된 주부 모임에서 제2의 차유림이 되고 싶은 꿈나무까지 포켓볼에 푹 빠져 있었다. 이들이 말하는 포켓볼의 매력은 뭘까.
“수영 테니스 스케이트 육상 검도 다 해봤지만 70대 넘어서도 할 수 있는 건 포켓볼뿐이더라고요. 노인 분들이 하는 게이트볼 스틱보다 가벼워요. 관절에도 좋고 스트레칭 적당히 되고 걸으면서 운동하니 이만한 게 없어요. 체머리 흔들리기 전까지 하자고 우리끼리는 말하죠.”
조필현 선수와 함께 포켓볼장을 운영하고 있는 구승미 씨의 말이다. 그는 자녀들이 초등학교 3학년, 5학년일 때 포켓볼을 가르쳐서 성인이 된 지금도 함께 즐기고 있다.
양진경 씨는 여행을 갔다가 해변에서 20대 여성들이 포켓볼을 즐기는 모습에 우연히 접하게 된 경우다.
“너무 재밌었어요. 바로 스포츠센터에서 엄마들이 하는 포켓볼 강좌에 등록했어요.”
강좌는 없어졌지만 모임은 남았다. 당시 함께 포켓볼을 가르쳐 준 선생님이 조필현 선수였다.
“승부욕을 느끼면서 엔도르핀이 생겨요. 엄마들이 일상에서 그런 기분을 느낄 새가 없잖아요.”
십년 동안 함께 포켓볼을 해온 주부들의 모임에는 백발이 성성한 70대 회원도 있다.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이 종교를 가진 일과 포켓볼을 배운 것”이라고 말하는 60대의 회원도 있다. 포켓볼은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공으로 그리는 한 폭의 그림
고도의 집중력, 치밀한 두뇌 계산, 복잡한 판을 끌어가는 구상력, 그리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한 방의 큐. 딱! 시원하게 맞고 들어가는 공 소리에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잘 풀리지 않던 경기라도 그 소리 하나면 가슴까지 뻥 뚫린다. 그것이 포켓볼의 묘미다.
조필현 선수는 포켓볼을 그림에 비유했다.
“화폭에 그림을 그리듯이 집중해서 밑그림부터 구도 잡고 집중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재밌어요. 테이블 안에 나만의 세계가 있는 거죠. 공하고 대화를 나누는.”
십대 시절 철학이 있는 예술가를 꿈꾸던 그는 폴뉴먼과 톰크루즈가 출연한 영화 ‘컬러오브머니’를 보고 포켓볼에 반했다. 그러나 때는 1987년, 우리나라에는 포켓볼을 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당구를 먼저 배워 천 점까지 오를 만큼 빠져들었다. 1993년 서울 압구정부터 번지기 시작한 포켓볼에 입문, 2년 뒤 프로 선수가 되었다. 포켓볼에 대한 인식도 낮고 지원도 받기 어렵던 시절, 그는 자비를 털어 미국 유피에이(UPA) 투어에 참가했다. 한 번 나갈 때마다 몇 천 만원 넘는 돈이 들었지만 포켓볼을 향한 꿈을 접을 수는 없었다.
“현실이 만만치 않잖아요. 클럽을 운영하다 포기하고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할 때도 있었어요. 가장 무서운 건 시합에서 질 때보다 꿈과 흥미를 잃었을 때예요.”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스포츠
이러한 포켓볼 1세대들의 노력 덕분일까. 사람들의 인식은 더디지만 점차 나아지고 있다. 김가영, 차유람 선수 등 연예인 못지않은 주목을 받는 선수들이 배출되기도 한다. 18살 송채연 양도 그들의 뒤를 잇겠다는 포부로 가득 찬 꿈나무다. 송 양의 어머니는 티브이에 나온 차유람 선수의 모습을 보고 딸에게 포켓볼을 권유했다. 송 양은 “해보니 어깨가 아팠지만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포켓볼을 위해 학교를 자퇴했다. 공부는 방송통신고등학교에서 배우고, 나머지 시간은 포켓볼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송 양의 꿈은 세계 최고의 포켓볼 선수가 되는 것이다. 남다른 진로 선택이 불안할 법도 한데 ‘친구가 없어 가끔 외롭다’는 것 외에 편안해 보였다.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자살하는 아이들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많은 길이 있으니까 굳이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안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 점에서는 조필현 선수도 같은 생각이다. 그가 어느 순간 포켓볼에 빠져 평생의 진로를 결정했듯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컬러오브머니 포켓볼장에는 포켓볼 공만큼이나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의 공통된 바람은 ‘건전한 포켓볼 문화가 뿌리내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가족이 함께 할 만 한 게 없는데 포켓볼은 온 가족이 함께 와서 게임을 할 수 있어요. 아이들도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면 충분히 할 수 있죠.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이 한 팀이 돼서 게임도 하고 건전하게 가족 중심으로 즐길 수 있어요.”
조필현 선수의 말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20대에 포켓볼 부흥기를 누렸던 이들이 40대 부모가 되어 자녀들을 데리고 포켓볼장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많이 찾는 이들은 20대 연인이지만, 예전에 비해 저변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 조필현 선수의 말이다. 금연으로 쾌적한 공간에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는 카페 분위기의 포켓볼장 컬러오브머니는 체인점을 모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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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031-907-3579, 010-9702-2838(조필현)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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