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에 야구하는 사람들, ‘일산미다스’ 사회인야구단
우리들의 야구는 ‘즐거움’이다
지난달 30일 밤, 문봉동 찾았다. 사회인야구단 ‘일산미다스’를 만나기 위해서다. 깜깜한 야구장, 하루 일과를 마친 이들이 배트와 글러브가 든 가방을 들고 하나 둘 모여 들었다. 이 시간 그들은 누군가의 아버지나 아들, 직장 동료가 아닌 한 사람의 아마추어 야구인이다. 관객 하나 없는 구장, 그들을 지켜보는 것이 휘영청 뜬 달 뿐이어도 마음은 어린아이처럼 즐겁기만 하다.
야구는 평일에, 주말은 가족과
‘일산미다스’는 2006년에 창단했다. 최창엽 씨가 감독으로 야구가 좋아 모인 직장인들의 팀이다. 사회인야구는 1, 2, 3부로 나뉜다. 선수 출신이 많을수록 1부에 가깝다. 미다스는 선수 출신이 없어 3부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야구를 함께 하는 즐거움을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여기는 팀이다. 동호회 취지에 걸맞게 주말이 아닌 평일 리그를 뛴다. 주말은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다.
일산미다스의 실력은 썩 훌륭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훈훈한 분위기만은 다른 팀에 밀리지 않는다.
“승부에 집착하는 팀들은 경기할 때 안 좋은 플레이 하면 고함도 치고 바로 선수 교체하는 일도 있어요. 우리 팀은 이런 것이 없어요. 이기는 것도 좋아하지만 즐겁게 다치지 않고 하는 거, 야구를 즐기는 분위기로 하고 있어요.”
이상규 씨의 말이다. 친구를 따라 동호회 구경하러 온 그는 팀원이 부족하다는 말에 트레이닝복 차림 그대로 경기를 뛰었다. 얼떨결에 합류했지만 지금은 야구에 푹 빠졌다. “당구를 처음 배울 때처럼 야구를 배울 때면 야구 생각만 났다”는 그는 어서 아이가 자라 함께 야구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야구는 즐거움이다
“야구는 할수록 기분 좋아요. 재미보다 즐거움을 주죠.”
창단멤버 박한필 씨의 말이다. 재미와 즐거움의 차이를 묻자 그는 “끝나고 허무한 건 재미, 여운이 남는 건 즐거움”이라고 했다. 한 편으로 야구는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경기가 안 풀릴 때, 실수를 했을 때는 한동안은 후회로 마음을 뒤척거리기 때문이다.
“며칠 여운이 남죠. 좀 더 잘했으면 멋진 플레이가 나올 수 있었을 텐데 하고요.”
사회인야구단은 한 번 모이기가 쉽지 않다. 일산미다스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가량 게임을 뛴다. 야외 구장이라 비라도 내리면 2주일을 꼬박 기다려야 한다. 팀원들은 개인적인 기량을 각자 쌓으면서 게임하는 날을 기다린다. 박한필 씨도 이미지트레이닝이나 개인 레슨을 받으면서 실력을 키운다. 직장 생활을 하니 잘 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야구를 한다는 것,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뛴다는 것만으로 일주일의 남은 날들을 활기차게 보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야구는 기다림이다
최태원 씨는 두산베어스의 오랜 팬이다. 어릴 때는 테니스 선수 생활을 했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했고 겨울에는 스키를, 여름에는 수상스키를 가르치는 강사로 일했다. 4년 전 결혼을 하면서 자영업으로 직종을 바꿨지만 야구사랑 만큼은 시들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야구장에 찾아가며, 홈경기가 열릴 때는 거의 다 챙겨봤다. 그러다 일산미다스 최창엽 감독을 알게 됐다.
“오늘이 네 번째 나오는 날인데 실력이 월등하지는 않지만 팀 분위기가 좋아요. 같이 오랫동안 해온 멤버들이 많아서 가족적이에요.”
가입한 지 한 달째, 최태원 씨는 야구하고 싶은 마음으로 일주일을 기다린다. 공을 잡을 기회도, 칠 기회도 몇 번 안 돼 늘 아쉽게 돌아가지만, 앞으로도 유니폼 입고 게임은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다.
“직접 해보니 생각보다 마음이 앞서네요. 유니폼 입고 기분은 너무 좋은데 몸은 안 따라가요. 야구는 잘 알지만 실제로 해보는 것과 달라요. 그래서 낮 시간에는 자전거도 타고 헬스 하면서 몸만들기를 시작하고 있어요.”
야구는 설렘이다
일산미다스 감독 최창엽 씨는 우리나라 사회인야구 일 세대다. “십오 년 전만 해도 야구 복 입고 있으면 애들이 사인 해달라고 할 정도였어요. 그만큼 야구하는 사람이 드물었죠.”
지금은 매년 새로운 팀이 생겨날 정도로 야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경기북부 지역은 특히 야구장도 야구인구도 많다. 공터만 있으면 공을 찰 수 있는 축구와 달리 야구는 전용 구장이 있어야 한다. 야구장이 생기면 신생 야구팀들이 모인다. 최창엽 씨는 바로 그 점을 조심하라고 말했다. 새로 경기장을 만든다며 야구팀들을 모아 돈만 받고 사라지는 일들이 간간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300개 팀에게 250만원 씩 받아서 사라진 사건이 있었어요. 팀원으로 보면 6천 명이 사기를 당한 거죠.”
일산미다스는 두 번 연속으로 사기를 당한 후 리그 가입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임대하기로 한 야구장이 군 훈련장이라 돈을 다 내고도 책임자가 바뀌어 두말 못하고 쫓겨난 일도 있었다. 그래도 최창엽 씨는 야구를 생각하면 설렌다.
“사회인야구에 30대 중후반에서 40대가 많아요. 초중고 다닐 때 프로야구가 생긴 나잇대죠. 15년 됐지만 지금도 게임하기 전날에 설렐 때가 많아요. 치고 싶은 거죠. 멋진 수비 하고 싶은 거고. 그런 것이 즐거움이죠.”
철없던 시절에 하던 공놀이가 다 큰 어른들에게 일주일을 살아갈 힘을 준다.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고 좌절하고 곱씹으며 일산미다스 사람들은 드라마보다 더 재밌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문의 최창엽 감독 017-266-3177 일산미다스 다음카페 http://cafe.daum.net/midasilsan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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