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대화동의 한 아파트에서 초등생 여아 납치미수사건이 일어났다. 안양에서 두 초등생이 살해된 지 넉 달 만에 벌어진 일이라 충격이 더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다음달 30일 경기지역 전 경찰서에서 아동범죄 예방을 위해 1124개교 2만8500여명의 어머니폴리스를 꾸리고 발대식을 가졌다. 일산경찰서도 같은 날 킨텍스에서 일산어머니폴리스연합단 발대식을 가졌다. 초등학교별로 모집된 학부모 1천500명이 참석했다. 만 5년이 흐른 지금 어머니폴리스 활동이 유명무실해진 곳도 있지만 경기북부지역, 그 중에서도 일산만큼은 더 탄탄한 활동을 자랑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학교 47개 회원 5천216명, 덕양구를 포함하면 9천여 명에 이른다. 일산지역의 어머니폴리스가 활발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창단 초기부터 의욕 있게 참여해 온 임원진을 만났다.
귀가길 안전지도 봉사로 시작
“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보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시간 할애를 많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이렇게 좋은 단체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마음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일산경찰서 어머니폴리스연합단(이하 일산어머니폴리스) 신광이 단장의 말이다. 일산어머니폴리스는 매년 초 학교 가정통신문으로 회원을 모집한다. 어머니들은 2인 1조가 되어 초등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오후 12시 30분부터 4시까지 안전지도를 맡는다.
최근 어린이 대상 범죄는 등하교 시간대에 자주 발생하고 있다. 어머니폴리스는 사람들 통행이 적은 골목길, 학교주변 공원이나 주차장 등 아동들의 안전에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지역을 찾아 경찰과 연계한 순찰활동을 펼친다.
학교 앞과 놀이터, 으슥한 골목, 주차장 등 동네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며 순찰하고, 문제 상황이 벌어지면 경찰에 신고하기도 한다. 5년 동안 꾸준히 활동한 덕분에 일산 지역 하교 길 아동 범죄율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일산어머니폴리스의 자랑거리다.
동네를 지켜보는 세심한 눈
날마다 같은 시간대에 누군가 동네 곳곳을 돌아다닌다는 것, 마을을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것은 안전 문제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어린이들에게는 안전한 느낌을 주고 잠재적인 범죄 발생을 막아준다.
얼마 전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에게 훈계를 하던 30대가 맞아 숨진 사건이 있었다. ‘감히’ 청소년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하는 어른이 사라진 세상. 그래서 노란 조끼의 존재감은 크다.
“조그만 놀이터 한 군데만 모여 있는 애들이 있었거든요. 전에는 뭐라고 하질 못했는데 노란 조끼를 입고 나오면서 거기 모여 있던 아이들이 서서히 없어졌죠.” (신광이 단장)
일산어머니폴리스가 열심히 활동하는 동네는 갈수록 깨끗하고 안전해졌다.
공원 화장실 안에서 일어나는 폭행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여름에는 문을 떼고, CCTV를 일자가 아닌 회전되는 것으로 바꿔달고, 경찰관이 순찰차가 아닌 걸어서 방범 활동을 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것은 동네 구석구석을 걸어서 다니는 ‘노란 조끼 엄마’들의 세심한 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찰보다 어머니폴리스
사나운 매한테서 아기 병아리를 지키듯, 어머니폴리스는 동네의 아이들을 엄마 닭처럼 품어 안전하게 지킨다. 노란 조끼를 입고 학교 근처를 순찰하다보면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다가와 도움을 청한다.
“동네에서 애들끼리 싸우는 일이 있으면 저희들한테 와서 얘기 할 정도로 엄마처럼 생각을 해요. 경찰이 왔다 갔다 하면 부담스럽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거든요.” (문만정 일산어머니폴리스연합단 일산서구 사무국장)
길에 떨어진 지갑을 주워 갖다 주기도 하고, 이상한 아저씨가 지나간다고 신고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뿐이 아니다. 경찰서와 연계한 활동을 하는 것을 알고 동네 주민들이 민원을 요청하기도 한다. 문만정 사무국장은 “동네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공원에 몰려 있는 청소년을 볼 때 저희한테 전화를 건다”며 웃었다.
내 아이에서 지역의 아이로
일산어머니폴리스 활동은 시간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귀가길 안전지도 만들기도 그 중 하나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그냥 공원이지만 아이들이 보기에는 형들이 모여 있어 무서운 곳일 수 있다. 올해에는 시범적으로 일산동구와 서구 지역의 슬럼화 된 6개 지역 학교를 정해 일산어머니폴리스연합단이 찾아갔다. 해당 학교 아이들과 학부모, 교사가 함께 안전지도를 만들었다. 내년에는 30개 학교를 추가하고 3년에 걸쳐 고양시 초등학교 안전지도를 완성할 계획이다.
내 아이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노란 조끼를 입게 했고, 활동하면서 만나는 아이들을 보며 지역의 안전을 생각하는 마음이 커졌다. 학교와 가정과 경찰의 중간에서, 엄마의 마음으로 경찰의 자세로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이 바로 어머니폴리스다. 일산어머니폴리스는 우리 지역에서 아동 관련 행사가 벌어질 때면 팔 걷어 부치고 나서 자원봉사 활동을 펼친다. 어린이날 행사장에 찾아가 미아방지 활동을 벌였고, 수능 후 안전 귀가 지도를 벌였다. 지난 6월에는 일일찻집을 열어 그 수익금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교복 마련을 위해 장학금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곧 졸업 시즌이 다가오면 또 노란 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갈 것이다.
진화하는 어머니폴리스
내 아이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어머니폴리스 활동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회원 어머니들을 위한 혜택도 늘고 있다. 동국대병원, 백병원, 그레이스병원과 제휴를 맺어 회원들에게 10% 할인 혜택을 주고 자궁경부암백신 접종 할인 혜택도 주고 있다. 지난여름에는 일산어머니폴리스 회원 어머니와 자녀들이 함께 어머니경찰박물관과 청와대를 견학해 회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부모교육도 함께 받는다. 김남곤 일산어머니폴리스 일산동구 사무국장은 “학교 폭력에 대한 교육을 받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사소한 말 한마디로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언어폭력의 심각성에 대해서 자녀들과 함께 상황을 극을 통해 배우기도 했다.
신광이 단장은 “일산에는 어머니폴리스가 있어 너무 행복하고 참여해주는 어머니들이 있어 정말 감사하다. 단체가 끈끈하게 이어갈 수 있도록 더 많은 어머니들이 참여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녹색어머니회처럼 많은 어머니들이 가입해 누구나 한번 씩은 마을을 둘러보는 지킴이가 되는 것, 우리 아이들을 위해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노란 조끼 엄마들의 바람이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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