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7일~13일 고양국제꽃박람회장 전관에서 열린 제11회 고양국제아트페어에서 관람객들의 관심을 모았던 부스가 있었다. 한 쪽 벽면을 채운 머그잔들, 멋 부린 것 같지 않은데 볼수록 은은한 멋이 풍기는 그릇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그릇들을 만든 이는 한영주 작가. 그의 작품들은 화려하지 않아도 품위가 있고, 투박함 속에 섬세함이 느껴지며, 비어있지만 그 안에 많은 것이 담겨있는 듯 느껴졌다. 그 매력에 빠져 한참을 들여다보다 더 많은 그의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전날 저녁 내린 눈에 세상이 오랜만에 느림의 미학에 빠진 날, 느릿느릿 걸어서 그의 공방을 찾아 나섰다.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도예작업’에 매력 느껴
한영주 작가는 2011년과 2012년 ‘101인 사발전’에서 입상했으며, 행신동에 위치한 공방 ‘풍경’에서 개인작업과 수강생 지도를 겸하고 있다. 공방 문을 연 지는 3년 째, 처음부터 수강생을 받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알음알음 그를 찾는 수강생이 현재 50여 명에 이른다.
“원래 전공은 사진이에요. 개인 암실도 갖고 있었고, 지금도 사진작업에 필요한 기자재가 집에 꽤 있어요. 전공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사진작업에 꽤 몰두했었지요.” 그러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사진작업이 점점 어려워지더라고. “사진작업이 그렇잖아요. 원하는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새벽부터 기다려야 하는 작업도 있고, 또 출사도 자주 나가야 하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어릴 때는 주부로서 엄마로서 충실하게 작업을 할 수 없는 문제가 있어요.”
사진은 잠시 접었지만 예술적인 끼가 다분했던 그는 그림, 규방공예, 금속공예, 유리공예 등을 배우기도 했다. “이것저것 배운 것 같지만 예술작업이 하다보면 다 연계성이 있어요. 지금 공방 수강생 중에도 금속공예나 목공예를 하는 분들이 오시거든요. 예를 들면 금속공예로 주전자를 만드는데 주전자 꼭지는 금속 대신 도자기로 빚어 붙인다든지 하는 식으로 하다보면 작품을 더 잘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죠. 그래서 저도 여러 분야를 시도하고 배웠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그가 천착하게 된 것이 도예. 감상만 하는 미술작품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즐기면서 예술적 가치도 향유할 수 있는 매력에 끌렸다.
마침 남편의 지인이 단국대 도예과 교수로 있어 사사받을 기회가 있었고, 15년을 열심히 도예에 빠져 살았다고. 그러다 집에서 작업하기엔 한계가 있었고, 개인 작업실로 문을 연 것이 공방 풍경이다.
-도예, 시간이 갈수록 깊이감이 더해지는 작업
“학창시절 전공인 사진도 꽤 매력 있는 작업이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고 할까. 살면서 이거 정말 하고 싶다 해서 배운 것은 깊이감이 더해지는 것 같아요. 스무 살 언저리에 선택한 전공과 나이 들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것과는 차이가 있죠.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정규과정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까닭에 그는 전시에 참여할 때도 프로필에 굳이 학교와 전공을 올리지 않는단다. 자칫 학교와 전공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소탈한 그의 성향은 그의 그릇 속에 여실하게 담겨져 있다. 멋 부린 것 하나 없는데도 당당한 멋, 주로 물레작업으로 만든 그의 작품들은 단순하면서도 남다른 고집과 감각이 배어 나온다.
개인 작업만 하다 수강생을 받게 된 것도 우연하게 이뤄졌다. “보시다시피 공방이 좁은 편이 아니에요. 전기 가마와 가스 가마도 1개씩 있으니 개인작업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편이고. 아이들이 이제 손 갈 일도 없고, 이제 마음껏 개인 작업을 해보자 했었는데 그게 뜻대로 안됐어요.(웃음) 공방 문을 열고 작업을 하는데 한 두 사람 씩 들어와서 수강을 하느냐고 물어요. 공방이 여러 곳인데 굳이 배우고 싶다고 하기에 마음이 약해져서(?) 시작한 것이 판이 커져버렸네요.” 현재 수강을 하는 이들은 주부들이 대부분이지만 교사나 다른 미술 분야의 작가, 외국인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공방을 찾는다. 3년 째 계속 배우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지난 9월 열린 고양국제아트페어에서 열린 전시에서는 수강생 작품들도 함께 전시해 성황을 이루었다.
“그 때 전시된 제 작품들도 대다수 판매됐지만, 수강생 작품들도 다 판매될 정도로 인기였어요. 그 김에 평소 작품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부들이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그것으로 경제적인 이득도 얻을 수 있도록 구상하던 일에 더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렇지만 수강을 하는 주부들 대부분이 살다가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그런지 작업에 임하는 진지함이나 열정이 대단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창의성으로 기발한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각자의 개성이 담긴 작품들은 그냥 전시용으로 집안에 쌓아두기에는 아까운 것들이 많다고.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것이 있는데 제 그릇들과 수강생들의 그릇을 판매하는 매장을 구상하고 있어요. 빚는 사람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공간, 그리 멀지 않은 시간 내에 그런 공간이 마련될 것 같습니다.”
공방 풍경에 미처 담지 못한 그의 그릇들은 또 어떤 모습일지, 그의 새로운 공간이 기대된다. 풍경 공방은 월~금요일 오전 9시 30분~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문의 010-4586-8385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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