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와인 문화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탱글탱글하게 익어 한창 먹음직스러운 포도송이처럼 와인에 대한 상식도 풍부해졌는데요. 이런 와인 문화는 술자리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놨습니다. 빨리 마시고 취하는 폭탄주보다 가볍게 마시고, 즐기는 와인을 선호하게 됐지요. 모임이 많은 연말, ‘세상을 바꾸는 블로거’에서는 와인 초보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 줄 수 있는 와인 블로거를 소개합니다. 그는 ‘18홀에 65타 치기’라는 스토리텔링으로 ‘1865’ 와인을 유행시킨 소믈리에 이재술씨입니다. 수많은 와인을 마셨지만, 좋아하는 이들과 마시는 와인이 최고라 말하는 그. 그가 말하는 와인 블로거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와인에 스토리를 입히다
블로그 ‘와인 스토리’의 주인장 이재술씨는 와인 소믈리에다. 대학에서 관광과를 전공하고, 호텔 신라에 입사해 처음으로 와인을 접했다. 감성적인 그에게 와인의 첫인상은 강하게 다가왔다. “금세 와인의 매력에 빠졌어요. 친구들과 자주 와인을 즐기며,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죠.”
그는 호텔신라에서 10년, 삼성에버랜드에서 15년, 식음료 파트에서만 25년을 일했다. 항상 재미있고, 재치가 넘쳐 동료에게 엔터테이너로 불렸다. 특히 그는 와인에 재미있는 스토리를 입히는 소믈리에로 유명했다. 2004년 안양 베네스트 골프클럽에서는 ‘18홀에 65타 치기’라는 스토리텔링으로 칠레산 ‘1865’ 와인을 크게 유행시키기도 했다. “그 당시 삼성석유화학 허태학 사장님께서 미리 디캔딩을 해 놓으라고 하셨어요. 그 때 와인과 골프장과의 관계를 떠올려 ‘18홀에 65타 치기’라는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 덕에 시선을 집중시켰죠.” 국빈들에게 와인을 따를 때는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알리는 민간 외교원 역할도 자청했다. “그룹 회장님이나 사장님, 그리고 유명 연예인이 방문했을 때 와인의 우수성에 대해 꾸준히 말했어요. 와인은 고급 비즈니스에서는 필수인데다 문화를 이끌어가는 분들이기 때문에 와인 문화를 성숙시키는데, 중심 역할을 했죠.”
와인을 알리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자연스럽게 인터넷으로 이어졌다.
친절한 와인 전도사, 이재술
그가 와인 블로그를 만든 건 2001년이다. 그저 와인이 좋아서, 와인을 알리고 싶어 시작했다. 블로그에는 와인을 왜 마셔야 하는지,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차곡차곡 써 왔다. 간혹 그가 만난 와인 애호가들, 와인으로 맺어진 인연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중앙대학교 소믈리에 과정을 이수하면서 방문한 프랑스, 이태리, 칠레, 아르헨티나 등 와인 생산국의 여행기도 담았다.
“와인은 생산국가와 생산회사와 생산자, 품종과 제조방법 등에 따라 종류가 너무나 방대합니다. 몇 개의 이름으로 정리되는 소주나 맥주, 위스키와는 달리 다양한 출신 성분과 구성요소에 따라 각각 다른 이름을 가지죠. 그래서 와인은 공부하면서 마시는 유일한 술입니다.” 그는 와인 상식을 쌓으려고 초조하게 공부하기보다 와인 한잔을 천천히 마시는 기분으로 와인을 알아가라고 조언한다. 즐기다 보면 알게 된다고.
또, 그의 블로그에는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이 가득하다. 1975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반해 LP판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1만장이 넘는다.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와인과 그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LP판은 은근히 닮았어요. 스티브잡스도 집에서는 LP를 들으며, 감성충전을 했다고 해요. 디지털 문명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이럴 때일수록 조금 느리게, 천천히, 더불어 살아갈 필요가 있어요.”
친밀함과 진솔함으로
그의 블로그에는 친밀한 문체와 소신 있는 목소리가 있다. 처음부터 와인을 알리고 싶었지, 블로그를 알리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와인을 좋아하지만 컴퓨터는 힘들었어요. 시간투자도 많이 해야 하고, 귀찮을 때도 있었죠. 왠지 매일 포스팅해야 될 거 같은 강박관념이 있었던 적도 있어요. 지금은 이야기가 있을 때만 올리고 있어요.”
현재 와인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 지난해 LP 와인바 ‘와인&아날로그’를 열면서부터는 더욱 블로그에 소홀해졌다고 고백한다.
“있는 그대로 바쁘면 바쁜 대로 솔직하게 쓰고 있어요. 블로그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함이라고 생각해요. 객관적인 정보 전달도 좋지만, 다른 곳에는 없는 제 느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고 합니다. 블로그의 노예가 되지 말고, 자체를 즐겨보세요.”
블로그를 운영하는 보람은 신뢰받는 느낌이 들 때다. 특히 블로그를 보고 와인을 배우러 오는 이를 볼 때면 더욱 그렇다. “현직 국어 선생님께서 삶에 대한 회의가 들어, 와인을 배우러 오셨어요. 와인을 배우며 삶의 활력을 찾았다고 말할 때 정말 보람 있었죠.”
지금껏 그의 블로그를 찾은 이는 18만 명이 넘는다. 블로그의 시작은 다음(daum)에서 했지만, 지금은 네이버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꾸준히 평생 즐겨라
와인을 즐기면 늙지 않는다. 와인은 다른 술과 달리 약알칼리성이기 때문에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프렌치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어요. 프랑스 사람들은 고기를 많이 먹기 때문에 심장병 환자가 많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미국의 1/3밖에 안 된다는 통계가 있어요. 프랑스 사람들이 레드와인을 즐겨 마시기 때문이라고 밝혀지자, 미국인의 식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마트에서 레드와인이 동이 났죠.”
그는 와인을 ‘대화의 술’이라 부른다. 무조건 비싼 와인보다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사람들과 마시는 와인을 최고로 꼽았다. “In Vino Veritas(한잔의 와인에 진실이 있노라), 와인을 한잔 하면, 가면을 벗고, 서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그래서 와인을 즐기는 사람은 우울증에 빠져 자살하지 않아요. 힘이 들 때도 항상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들이 있지요.” 또, 와인은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어, 불어, 스페인어, 독일어, 이태리어 등 다양한 외국어와 역사, 지리, 경제, 예술도 두루 거쳐야 한다.
“와인은 잠자기 전보다 식사와 곁들여 꾸준히 마시는 게 좋아요. 남자는 하루 2~3잔, 여자는 하루 1~2잔이 적당합니다.”
그는 연말 분위기에 어울리는 와인으로 KEDALL JACKSON, FARMER''S LEAP, 1865를 추천했다. “칠레산 1865는 만년설이 녹아 강줄기를 이루고 있는 포도밭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그곳을 상상하며 마시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와인과 음악이 있는 펜션을 만드는 게 꿈이라는 그는 “앞으로 동영상 자료를 블로그에 올려 와인의 대중화에 힘 쓰겠다”고 약속했다.
이남숙 리포터 nabis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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