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3대 명주로 꼽히던 ‘감홍로’의 대를 잇다 -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 제43호 이기숙 씨

지역내일 2013-02-03

스러져가는 전통주의 맥을 잇기 위해 10여 년의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지난 해 10월 농립수산식품부로부터 감홍로 제조 기능 보유자로 공식 인정을 받은 이기숙 씨.
명인. 이 짧은 두 음절의 단어를 얻기까지 어떻게 그 오랜 시간 강팍한 현실과 맞닥뜨려 왔을까 싶을 정도로 가녀린 몸매, 하지만 단아함 속에 은근한 근기가 느껴진다. 어쩌면 그에게 명인이란 칭호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감홍로가 익어가는 동안 그 곁에서 쪽잠을 주무시며 관찰하고 통찰하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대를 잇는 일이 더 절실했던 것은 아닐까. 


고려시대부터 관서지방에서 내려오던 전통주, 감홍로(甘紅露)

달콤하고 불그레한 빛을 띤 이슬 같은 술 ‘감홍로’는 전주의 이강고(梨薑膏), 정읍의 죽력고(竹瀝膏)와 함께 조선 3대 명주로 꼽힌다. ‘춘향전’ ‘별주부전’ 등 옛 문헌에도 등장할 정도로 명성이 높았고,  19세기 유학자 이규경은 “중국에 오향로주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평양부의 감홍로가 있다”고 이 술을 소개했다.
감홍로는 누룩과 쌀, 좁쌀로 빚은 술을 증류해 소주를 만들어 숙성시킨다. 일반 소주는 여기 1차 증류에서 끝나지만 감홍로는 한 번 더 증류해 지초 방풍 감초 계피 정향 용안육 생강 진피 등 8가지 한약재를 침출시켜 다시 숙성시킨다.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까지, 숙성기간이 길수록 목 안을 타고 넘어가는 맛이 깊어진다. 도수도 꽤 높아 40도에 이르지만
은은한 붉은 빛깔과 깊은 맛에 평양의 주당과 기생들은 이 술을 최고의 술로 쳤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감홍로가 귀한 것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근거해서 일반 소주보다 한 번 더 증류를 해서 이것을 더 맑고 순수하게 하기 위해 8가지 약재를 넣어 숙성시켰다는 것이죠. 약재 중에 용안육은 아열대지방에서 나는 과일인데 지금이야 구하기 쉽지만 조선시대에는 얼마나 귀했겠어요. 정향도 중국에서 들여와야 했던 것이고. 감홍로는 그래서 예부터 약용소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감홍로는 평안도에서 9대를 살아온 고조할아버지의 부인인 박 씨 할머니가 이 술을 잘 빚으셨고, 그의 부친 이경찬 선생(1993년 작고)이 평양에 작은 양조공장을 지어 사업을 번창시켰다고 한다. 그러다 6·25가 발발하고 1·4후퇴 때 가족이 모두 월남을 했다. 월남 후 사업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지만 1950년 ‘양곡관리법’이 제정되면서 부친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렇게 이강고, 죽력고가 각각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상업화에 성공하는 사이 감홍로는 잊혀져 갔다.
부친은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 조금씩 감홍로주와 평양 특산주 문배주를 담갔다. 1986년 정부는 부친 이경찬 선생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했다. 최초의 술 관련 인간문화재였다. 부친은 큰아들 이기춘 씨에게는 문배술을, 작은아들 이기양 씨(2000년 사망)에게는 감홍로 제조 기법을 전수했다. 부친이 1993년 사망하자 큰 오빠 이기춘 씨는 무형문화재가 됐고, 작은 오빠 이기양 씨도 정부가 지정하는 ‘식품명인’이 됐다. 문배주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오를 정도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감홍로주의 운명은 달랐다. 이기양 씨가 당뇨로 2000년 사망하자 만들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



한 사람을 대접하기 위해 술을 빚는 마음으로 ‘감홍로’를 이어가고파

아버지는 유독 딸을 좋아했지만 술은 “오빠들이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그는 아버지를 따라 술을 빚는 것을 지켜보았고 어깨 너머로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대대로 이어져오던 전통주의 명맥은 오빠들의 몫이었고, 그는 1988년 결혼을 하면서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았다. 작은 오빠를 잃고, 감홍로가 사라질 위기에 빠지자 그때부터 이기숙 씨는 김홍로 재현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감홍로의 맥을 잇고 명인이 되기까지 수많은 어려움과 부딪혀야 했다. 명인이 되기 위해서는 100년 이상 3대째 이어져왔는지, 제대로 배웠는지, 전수능력이 있는지,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 전수자가 있는지 등 조건에 맞아야 하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그에게 증빙할 것이 있을 리 없었다. “북한 술을 왜 우리가 공인해야 합니까?” “진짜 감홍로주인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요?” 2001년 가을 정부로부터 명인지정에서 탈락됐다는 최종 통보를 받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남편 이민형 씨였다. 경영학 박사인 남편의 협조로 가산을 털어 파주시 파주읍 부곡리에 (주)감홍로를 세우고 부친 생전에 전수받은 비법대로 제품을 생산 판매함으로써 명맥을 유지·발전시켜 온 이기숙 씨, 그는 드디어 정부로부터 그 공을 인정받아 지난 해 대한민국 43번째 식품명인으로 선정됐다.

“사실 감홍로의 ‘로’가 술을 의미하기 때문에 감홍로주라는 말은 좀 어폐가 있죠. 그런데 사람들이 감홍로라고 하니까 감식초랑 비슷한 지 혼동된다고들 해서 ‘주’자를 붙이게 됐어요.아버지가 감홍로 옆에서 쪽잠을 주무셨던 것은 할아버지께 잘 만들었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닐까요. 저도 아버지처럼 한 사람을 대접하기 위해 술을 빚는 그 마음 잃지 않고 감홍로를 이어가고 싶어요.” 그는 앞으로 “공장을 넓혀서 주조공정을 자동화하고, 생산과정을 학습으로 체험하여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홍보에 치중할 계획”이라고 한다. 술도 음식으로 여겼던 조상들의 지혜를 우리 생활에 재현할 수 있도록 좋은 쌀로 누룩을 빚어 만든 술을 집에서도 즐길 수 있는 식문화를 보급하는 것, 그것이 그의 또 다른 꿈이다. 감홍로는 400ml 한 병에 2만5000원, 700ml는 4만원이며 택배 주문가능(400ml는 2병 1세트로 택배 가능)하다. 

문의 010-3328-6233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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