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살았던 집은 도시 한 복판에 있었지만 작은 마당이 있었다. 그 마당에 있었던 몇 그루 나무들은 지금도 유년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리워지는 풍경이다. 그런데 추억 속 그 나무가 우리 동네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니. 그런 놀라움과 반가움을 함께 공감한 주부들 셋이서 책을 펴냈다. 그들은 한 동네에서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둔 학부모로 만난 김인숙, 전지영, 차경숙 씨. 이들은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함께 현장학습을 다니면서 경험한 체험담을 엮어 ‘우리 동네에는 어떤 나무들이 살고 있을까’(파라주니어 간)를 펴냈다.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 저작물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5년 동안 한 동네에 살면서 품앗이 교육을 함께 한 인연
김인숙, 전지영, 차경숙 씨는 15년을 한 동네에서 살았던 이웃사촌. 이들이 유별난(?) 친분을 갖게 된데는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세 사람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김인숙 씨는 전라도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단국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과학교육학을 전공했으며, 전지영 씨는 경상도 대도시에서 나고 자라 경북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또 차경숙 씨는 서울 근교의 농촌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일본 메이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이렇게 고향도 살아온 환경도 전공도 다르지만 아이들을 바르게 자라게 하고, 환경에 영향을 주는 행동은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고, 또 늘 공부하고 배우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같았다. 이런 생각 때문에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함께 품앗이 교육을 했고,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체험학습을 다녔다.
“전지영 씨가 글쓰기를 맡고, 어학과 사회분야는 차경숙 씨가, 저는 과학을 맡아 품앗이교육을 했어요. 품앗이를 하면서 책에서 얻지 못하는 산지식을 얻기 위해 체험학습도 열심히 다니게 됐고요. 체험학습을 나가면 반드시 얻고 돌아오겠다는 마음으로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사전조사도 열심히 했어요. 혼자일 때보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른 아이들이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훨씬 더 알찬 계획을 세울 수 있었지요.” 김인숙 씨의 말에 전지영 씨도 전적으로 동감한단다.
“김인숙 씨만 아이가 둘이고, 저나 차경숙 씨는 외동이를 뒀어요. 예전에는 형제들이 북적거리다보니 자연히 사회성이 길러지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이 함께 품앗이를 하고 체험학습을 다니다 보니 형제자매 많은 아이들이 갖는 양보심 배려심 이런 인성이 길러지는 덕도 많이 봤어요. 또 아이들을 위해 현장학습을 함께 다녔지만 우리들도 아이들과 함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또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고...그런 좋은 점 때문에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차경숙 씨도 “함께 하는 체험학습은 엄마와 아이 단독으로 하는 것보다 얻고자 하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또 알지 못했던 것까지 더 얻을 수 있어 학습에도 몇 배의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아이들이 모두 우등생으로 자라준 것도 그 덕분인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데리고 체험학습을 다니다 보면 힘들 때도 있었고, 때론 하루 일정으로 어려운 코스도 있었다. 이들 세 사람은 그럴 때마다 아빠들의 도움도 컸다고 입을 모은다. “아빠들은 직장 때문에 함께 하기가 어려웠지만 퇴근 후 차로 픽업해주기도 하고, 주말엔 가족이 함께 체험여행을 떠나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형제자매 많은 대가족 사이에서 배울 수 있는 사회성을 키워줄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수확이라고 생각해요.” 이들은 교과서에 수록된 곳들을 찾아다니며 얻은 자료들을 모아 지난 2008년 『움직이는 역사 교과서』, 『움직이는 사회 교과서』, 『움직이는 과학 교과서』를 집필해 출간하기도 했다.
-추억 속 ‘나무’ 한 그루 갖지 못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픈 나무 이야기
‘움직이는 교과서’ 시리즈가 보다 더 알찬 체험을 위한 도움서였다면 ‘우리동네에는 어떤 나무들이 살고 있을까’는 추억 속 ‘나무’ 한 그루 갖지 못한 아이들에게 전해주고픈 나무이야기를 담았다.
“체험을 다니다보면 자연 나무들을 만나게 되지요. 그러다 예전 어릴 적 동네 어귀나 마당에 있던 나무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들었어요. 아이들에게 아는 만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또 더 자세한 것을 알기 위해 도감을 찾아보기도 하고...그러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도 예전 그 나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 나무들을 발견할 때마다 세 사람은 저마다 갖고 있는 어린 시절 추억들을 쏟아냈다. 마당을 둘러싸고 있던 싸리나무 울타리, 구수한 도토리묵을 만들어주던 도토리나무, 가을이면 알차게 열매가 열리던 감나무며 대추나무 등. 그러다 문득 깨달았단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처럼 추억 속 나무 한 그루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측은하게 생각되더라고요. 그래서 나무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지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나무이야기는 그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완성됐다. 처음부터 책을 만들자고 마음먹은 것이 아니어서 이전 아이들과 함께 배운 나무들을 떠올리고 또 동네에서 만난 나무들을 계절별로 촬영하고 관찰하는 일이 쉽게 끝나지 않은 까닭이다. 꽃이 피는 시기를 놓치면 다음 해를 기약해야 하고,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과정이 녹록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는 이들. 나무도감은 많지만 종류나 생태특징을 짧게 실은 나무사전 성격이라면 ‘우리 동네에는 어떤 나무들이 살고 있을까’에는 사람과 함께 사는 67가지 나무이야기에 감성을 보탰다. 그래서 이들의 나무이야기는 나무 하나하나를 알아보고 추억을 갖게 만들고, 결국에는 그 나무들을 사랑하게 만든다.
나무가 자라듯 세 사람의 아이들도 이제 고등학생, 대학생이 됐다. 함께 공부하고 열심히 현장학습을 데리고 다닌 덕분에 영재고, 예고, 과학고로 진학했고 또 서울대생이 됐다. 아이들이 잘 자라준 것처럼 세 사람도 주부, 엄마라는 이름 외에 책을 낸 저자로 알찬 열매를 거두었다. 세 사람은 앞으로 이야기를 전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풀과 나무에 대해 직접 체험활동지를 기록할 수 있는 워크북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고. 이들의 아름다운 동행이 만들어낼 워크북, 어떤 모습일지 벌써 기대가 된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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