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취미 뜨개질로 엮어가는 조성진·김지아 씨 부부
“실을 사랑하는 내 남편은 뜨개쟁이”
“저는 낯을 좀 가려요.”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하지만 표정과 인상은 영락없는 개구쟁이였다. 남편과 아내가 어쩜 그리 닮았을까. 귀여운 인상의 조성진, 김지아 씨 부부. 블로그 ‘내 남편은 뜨개쟁이’를 운영하며 케이블TV에 취미를 같이 즐기는 부부로 출연하기도 했다는 이들 부부의 사연을 들어본다.
실을 알아야 실을 판다
뜨개쟁이 남편의 작품이 궁금했다. “아직 초보 수준”이라며 내놓은 작품은 목도리였다. 주황 빨강색의 파프리카 모양 수세미는 요즘 아크릴 수세미계의 트렌드란다. 앙증맞은 아기 조끼와 핸드폰 고리로 만든 앵그리버드 인형도 작품 목록에 들어 있었다.
조성진 씨가 처음부터 뜨개질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20대 후반부터 뜨개실 관련 업종에서 일하면서도 ‘취미로 뜨개질을 시작하면 실을 제품이 아닌 니터(뜨개질 하는 사람)의 관점으로 보게 된다’는 생각에 짐짓 외면해왔다. 전문가로 살려면 오히려 뜨개질을 몰라야 좋다는 묘한 고집 때문이었다. 그러다 7년 전, 뜨개실을 직접 수입 생산하고 유통하는 회사를 차렸다. “뜨개질을 안 하고 일하겠다는 건 못하는 사람들의 합리화였죠. 오히려 뜨개질을 해야 실의 정확한 특성을 알 수 있어요. 사람들하고 소통하려면 실의 질감을 알아야 하니까요. 대답을 해주려면 직접 느낌을 아는 것이 좋아요.”
실을 모르는 뜨개질 회사 대표는, 요리를 모르는 음식점 주인과도 같았다. 주인이 주방 사정을 알지 못하면 식당이 제대로 굴러가기 힘든 것처럼, 실에 대한 감각이 없으면 사람 관리부터 어려웠다.
뜨개질로 부부사이도 좋아져
바쁜 회사일 때문에 집안일은 거들어주지 못했던 남편, 마트에서 장을 보고 운전해서 물건 나르는 일과 사내아이 두 명을 키우는 일까지 혼자서 감당하는 아내. 조성진, 김지아 씨 부부의 생활이었다.
하지만 일 때문에 시작한 뜨개질이 부부 사이를 바꿔 놓았다.
“저는 남편으로서 다정다감한 성격이 아니에요. 집에서도 낯을 많이 가려서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 뜨개질을 하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된 거죠. 취미가 같으니까 소재거리가 같아지잖아요. 한마디라도 더 대화를 하고 이해를 하게 되니까 좋아요.” (조성진 씨)
엄마아빠가 뜨개질을 하니 아이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창 장난감을 좋아하는 6살, 8살 남자아이들이라 “닌자랑 로봇 태권브이도 뜨개질로 만들어 주세요”하고 귀여운 투정을 부린다.
“놀이터나 문화센터에 갔을 때 벤치에 앉으면 당연한 것처럼 스마트폰을 하게 돼요. 엄마인 나는 애들이 놀고 있으니까 하는 거지만, 아이들은 놀면서 엄마를 주시하잖아요. 스마트폰을 만지는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까 생각해요.”
스마트폰을 보면 아이들이 불러도 건성으로 대답하고 손안의 인터넷 세상 속으로 푹 빠져들게 됐다. 그래서 김지아 씨는 아이들을 기다리며 뜨개질을 하고는 한다.
엄마를 위한 따뜻한 취미 뜨개질
“놀이터에서 뜨개질을 시작하니까 아이들도 바뀌더라고요. 자기도 가르쳐달라고 졸라서 알려줬더니 큰 아이는 강아지한테 줄 목도리도 뜨더라고요.”
이처럼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김지아 씨는 뜨개질을 권했다. 자신보다 아이에게 정성을 쏟아야 하는 육아는 몸도 마음도 지치게 만든다. 하루는 길지만 정작 엄마인 나를 위해 쓸 시간은 없다. 그럴 때 좋은 것이 뜨개질이다.
“엄마들이 시간이 남을 때 뭔가를 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 지 잘 몰라요. 그래서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요.”
뜨개질은 엄마가 즐기는 취미이면서도 아이와 가족을 위해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아이를 생각하면서 만드니 엄마뿐 아니라 사용하는 아이의 정서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김지아 씨는 직접 경험한 뜨개질의 장점을 나누고 싶어서 남편이 운영하는 쇼핑몰 ‘니트러브’에 공지 글을 올렸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매월 둘째 주 일요일을 ‘니트러브데이’로 정해 모임을 꾸준히 갖고 있다.
새로운 뜨개문화 만들고파
“여자들 손 놀이 중에 남자한테 선물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뜨개질이 아닐까 생각해요. 알면 알수록 예쁘고 세련된 게 많아요.”
이들 부부의 뜨개질 자랑은 끝날 줄 몰랐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작품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남자애들 둘을 2년 터울로 키우다 보니 집에 있으면 전쟁 난 것 같거든요. 뜨개질로 집 소품을 만들어서 예쁘게 꾸며보고 싶어요. 싱크대 그릇 받침으로 모티프로 떠서 컬러풀하게 해놓으면 어떨까 싶어요.” (김지아 씨)
“남자들이 하기 힘든 카펫이나 대작들을 한 번 떠서 침대 시트를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어요.” (조성진 씨)
실 값만 받고 레슨비는 받지 않는 형태의 기존 뜨개방은 운영의 어려움으로 문을 닫게 될 거라는 것이 조성진 씨의 생각이다. 그는 “평생을 배워도 모자랄 만큼 깊이 있는 기술인 뜨개질이 폄하되고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했다. 배우는 사람도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가르치는 사람도 떳떳한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이들 부부. 일과 취미생활을 뜨개실로 조화롭게 엮어가는 이들의 삶이 아름다웠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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