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취미생활 즐기는 아빠들의 이야기
“아빠 어디가?”
어느 날 아빠들이 TV에 아이 손을 잡고 등장했습니다. 문화방송 주말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아빠 어디가?’ 입니다. 방송용으로 촬영되는 여행이기는 하지만, 엄마 없이 아빠들이 아이를 데리고 떠난다는 설정은 신선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 이웃에도 아이와 함께 취미를 공유하며 알콩달콩 살아가는 아빠들이 있습니다. 일상의 여백을, 못다 한 일이나 술 담배도 아닌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으로 채워가는 아빠들. 그들은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 떠나는 걸까요?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새 탐조 함께 하는 지덕현 씨와 아들 성혁 군
“아들은 새 보고 아빠는 사진 찍고”
관심사가 빨리 바뀌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한 번 빠진 일에 깊게 몰입하는 아이도 있다. 성혁이는 후자에 속한다. 어릴 때부터 만화 속 캐릭터를 모으며 몰입하는 기질이 있다는 걸 보여준 아이였다. 그런 성혁이에게 어느 날 새가 나타났다. 지난해, 『도시소년이 사랑한 우리 새 이야기』(김어진 지음)를 읽고 그야말로 새에 ‘꽂혔다’.
“새를 좋아하는 게 남다르더라고요. 새를 보면 어떤 새인지 집에 와서 도감을 계속 보고 기억했다가 나중에도 어떤 새인지 이름을 말하는 거예요. 진짠가 싶어 찾아보면 맞더라고요.”
성혁이 아빠 지덕현 씨의 말이다. 지 씨의 취미는 사진 찍기다. 아들은 새를 보고, 아빠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일반 렌즈로 새를 찍으면 작아서 잘 안 찍히기 때문에 작년 겨울에는 망원렌즈까지 구비했다. 성혁이도 용돈을 모아 줌이 되는 카메라를 장만했다. 블로그를 만들어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다.
새에 빠진 아들 응원하는 아빠
다행히 우리 지역은 새를 보기에 좋은 곳이 많다. 공릉천, 안곡습지, 돌곶이 습지 등 멀리 가지 않고서도 새를 만날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성혁이는 새의 매력에 깊이 빠져 들었다. 처음에는 가까운 곳에서 보는 새들도 반가워하더니 요즘은 보기 힘든 맹금류를 보고 싶어 한다. 말똥가리, 매, 부엉이 종류와 올빼미도 좋아하지만 자주 보기는 힘들다. 전문적인 탐조 영역으로 들어가 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13살인 성혁이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 아빠는 일찌감치 함께 다닐 마음을 먹고 있다.
“내 관심이 아니더라도 아이와 함께 해주고 싶었어요. 같이 다니다 보니까 나도 좋아하게 됐어요.”
지덕현 씨는 성혁이와 함께 새를 보러 다니면서 철새들이 살아가는 환경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개발로 인해 철새들이 쉬어가야 할 땅이 사라지면 갑작스럽게 멸종이 된다는 사실도 새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알았다.
아들과 아빠 사이도 한결 돈독해졌다. 탐조를 떠나면 서로에게 더 의지가 되기 때문이다.
“아빠로서 뒷받침 해주는 게 아니고 같이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놀아주는 거하고 같이 노는 게 다른 것처럼. 성혁이가 새를 보러 다니는 데 끌려 다녔으면 아마 싸움이 더 많았을 거예요. 같이 좋아하고 발전해 가니까 둘이 공유하는 뭔가 생겼어요. 성혁이도 내 도움이 필요하고 나도 진심으로 좋아해서 같이 하니까 관계를 유지해가는 데도 좋은 것 같아요.”
학교에서 새 박사로 통한다는 성혁이의 바람은 좋아하는 새를 더 많이 보는 것이다.
“철원에 갔을 때 기러기 수만 마리가 저수지에서 아침 먹으려고 들판을 찾아서 쫙 날아가던 모습이 생각나요. 어떤 새든 상관없지만 맹금류를 특히 더 많이 보고 싶어요. 커서는 새를 연구하는 조류학자나 동물을 구해주는 구조대원이 되고 싶기도 해요.”
성혁이의 새를 향한 사랑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이의 호기심으로 시작한 새 탐조 여행이 아빠와 아들을 더욱 단단한 끈으로 연결 시켜 준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성혁이네가 추천하는 우리 지역 새 탐조 장소
▲공릉천 “백로와 흰뺨검둥오리, 왜가리와 가마우지를 볼 수 있어요.”
위치: 덕양구 선유동에서 파주시 조리읍을 지나 교하읍 오도리 북쪽에서 서쪽을 향해 흘러 한강으로 합류한다.
▲안곡습지 “텃새들을 비롯해 딱따구리, 쇠물닭, 꾀꼬리를 볼 수 있어요.”
위치: 일산동구 중산동 161-3 안곡초등학교 뒤
▲돌곶이 습지 “저어새를 비롯한 여름 철새, 기러기 등 겨울 철새가 찾아 와요.”
위치: 파주시 문발동 498-11 보리출판사 옆
캠핑 떠나는 우병진 씨와 준영, 주영 군
“자연 속에서 아이 키우는 캠핑 떠나요”
우병진 씨는 12살인 준영이가 6살이었을 때부터 캠핑을 시작했다. 둘째 주영이는 3살, 아직 말도 잘 못하는 나이였다. 두 아이는 전국의 캠핑장을 줄줄이 읊는다. 한 달에 네 번 갈 때도 있었다니 그럴 만도 했다.
“주말에 아이들이랑 같이 할 게 없잖아요. 제가 캠핑을 좋아해서, 같이 가면 좋겠다고 생각해 시작하게 된 거죠.”
아이들과 친구처럼 어울리길 좋아하는 아빠는 캠핑을 좋아하기 때문에 힘들기보다는 즐긴다는 생각으로 다녔다. 물론 짐 싸고 풀고 설치하는 일은 힘들었다.
“중간은 참 좋은데 텐트 치고 걷고 할 때 가장 힘들어요. 처음에는 토요일에 갔는데 텐트 치는 데 시간이 다 가니까.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무리가 되더라도 출발해서 일요일에 오는 걸로 이박 삼일을 다녀요.”
자연 속 불편함이 교육의 양분으로
아이 둘과 함께 떠나는 캠핑 장소는 주로 주변에 체험꺼리가 있는 곳이다. 아이들이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캠핑장에 가서도 놀이를 할 수 있게 스피드게임이나 보드게임, 전통놀이를 준비해 간다. 먼 곳은 가족끼리, 가까운 데 갈 때는 친구들을 부른다. 고정으로 참여하는 네다섯 팀은 우병진 씨가 ‘꼬드겨서’ 캠퍼로 만든 사람들이다.
“펠렛 난로 갖고 동계 캠핑을 갔던 게 생각나요. 영하 18도였고 체감 온도는 훨씬 더 낮았어요. 자고 일어났는데 눈이 많이 쌓인 거예요. 함께 간 아이들 어른들 다 같이 눈싸움을 했는데 참 재미있었어요.”
춥고 더운 계절의 변화, 때로는 지저분한 환경을 온 몸으로 겪으며 다니는 동안 아이들도 달라졌다.
“집 밖에 나가 낯선 환경에서 자거나 먹고 씻는 것을 별로 가리지 않게 됐어요. 추운 날 캠핑 가서 찬물만 나와도 되도록 샤워를 시켜요. 신발 벗어놓을 곳 없는 곳에서도 씻어보고 그러니까 까다롭게 가리는 게 덜해지는 것 같아요. 눈에 보이게 좋아졌어요.”
2박 3일 떠나는 캠핑장은 아이들에게 해방구와 같은 공간이다. 일상에서 완전히 떠나 있는 그 시간만큼은 공부하라는 말이나 잔소리에서도 자유롭다. 아빠와 아이는 그만큼 가까워졌다. 아빠가 텐트를 치는 동안 아이들은 옆에서 돕기도 하고 2박 3일 중 한 끼는 설거지를 한다. 밤에 불을 피우기 위해 산에 가서 땔감을 주워 온다.
“캠핑을 가면 아빠가 더 자상해 보이는 것 같아요. 혼자서 텐트 치고 고기 굽고 아빠의 힘이 절대적인 것 같아요. 아빠가 안하면 아예 못 가죠. 굉장히 많은 희생을 해서 가는 거예요.”
속 깊은 준영이의 말에 아빠의 눈이 동그래졌다. 마냥 놀기만 좋아하는 어린애인 줄 알았는데, 자연 속에서 아이는 마음까지 한 뼘 더 자라 있었다.
“당연히 있는 것들이 없는 환경이에요. 텐트에 전기장판을 안 쓰는 건 그런 불편함을 알려주고 싶어서예요.”
준영이네 가족의 바람은 캠핑하면서 제주도를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이다. 호텔이 아닌 텐트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두 아들과 아빠는 모래알처럼 많은 이야기들을 속달거릴 것이다.
*준영·주영이네가 추천하는 캠핑장
▲우산청소년야영장 “청소년 캠핑장으로 아이들 극기 훈련 체험 코스가 있어요. 남자애들은 모험을 할 수 있어 좋아해요. 잔디도 넓고 관리도 잘 돼있고 가을 겨울에도 좋아요.”
위치: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388-3
문의: 031-763-9140
▲단양소선암캠핑장 “단양에는 볼거리도 많고 소선암캠핑장은 나무가 크고 그늘이 져서 좋아요.”
위치: 충북 단양군 단성면 상방리 290
문의: 043-423-0599
등산 함께 하는 노태군 씨와 아들 어진 군
“산 위에서 바라본 구름이 좋아요”
노어진 군의 아빠 노태군 씨는 2006년부터 식구들이랑 캠핑을 다녔다. 놀 거리에 한계가 있다고 느낄 즈음 등산을 시작했다.
“캠핑장 주변에 산이 있어서 한 번 가보자고 했죠. 다니다 보니 괜찮았어요.”
산에 다녀오면 몸이 피곤하면서도 다른 운동할 때보다 몸이 가벼워져서 좋았다. 시간 날 때마다 등산을 했는데 혼자 다니자니 심심했다. 그래서 아들을 데리고 가자고 마음먹었다. 어릴 적 몸이 약했던 어진이한테도 산이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북한산하고 집이 가까워서 어진이도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죠. 곧잘 올라가던데요.”
아빠와 아들 둘만의 일요일 산행
산에 가서는 좋아하면서도 막상 가자고 하면 싫다고 말하는 아들. 그래서 아빠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바로 엄마가 평소에 잘 먹이지 않는 치즈, 햄, 컵라면 같은 간식이다.
6학년이 된 어진이는 이제 등산을 즐기는 아이가 됐다. 어릴 때는 간식이 계기가 됐다면 이제는 산에서 만나는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단다.
“처음에는 별로였는데 지금은 재밌어요. 북한산이랑 치악산, 지리산, 한라산 다 좋았는데 제일 좋았던 데는 오대산이에요. 정상에서 구름이 바로 머리 위에 있어서 좋았고 다람쥐도 많이 봤어요. 이제는 아빠가 산에 가자고 하는 게 좋아졌어요.”
아빠와 아들이 산에 가는 것을 더 반기는 사람, 바로 어진이의 어머니 유성희 씨다.
“어진아빠가 일요일 아침밥을 차리거든요. 주중에는 저도 일하니까 주말에는 좀 늦게까지 자고 싶은데 자기가 밥 차린다고 자꾸 일찍 일어나라고 잔소리를 해요. 산에 가는 날은 아빠가 아이 데리고 나가면 자유 시간이니까 좋아요.”
어진이네는 엄부자모 대신 엄모자부인 것 같다고 말하는 유성희 씨. 그래도 형제 없이 혼자 자라는 어진이에게 살갑게 대해주는 남편이 있어 다행이라고 한다.
“산에 갔다 오면 둘이 괜히 내 앞에서 귓속말 하고 그래요. 약 오를 때도 있긴 하지만 나 모르는 부자간의 뭔가 있는 것도 좋잖아요. 대부분은 불량식품이나 만화책일테지만.(웃음)”
일이 바빠 빠트릴 때도 있고 겨울에는 또 자주 못가지만 한 달에 2번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 1번은 아들과 둘만의 시간을 위해 노태군 씨는 꾸준히 산에 오르고 있다. 형제가 없어서 외로울까, 몸이 약해서 탈날까, 부모와 사이가 멀어질까 걱정하는 대신 산을 택한 것이다.
“요새는 사춘기에 가까워오고 있으니까 잘 안 가려고 하는 사춘기 특유의 모습들이 보여요. 어쨌든 아빠와 아들은 엄마하고는 다른 점이 많이 있다고 하잖아요. 좀 힘들더라도 계속 같이 가서 뭔가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어진이네가 추천하는 등산코스
북한산: “고양시에서 가까우니까 자주 가요. 북한산은 전국적인 명산인데 이렇게 가깝게 있다는 건 어쩌면 많은 혜택을 받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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