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북 / <카페 제리코> 펴낸 백지혜 씨
“카페 제리코, 그 곳을 추억하는 이들이 있다면 영원할 것”
<카페 제리코>의 저자 백지혜 씨는 자칭 타칭 ‘백마담’이라 불린다. ‘품격 있는 살롱을 지키는 우아한 마담 포스의 여주인’. 그녀가 카페 제리코에서 추구하는 자신만의 콘셉이었다. 책으로 그녀를 먼저 접했을 땐 별명처럼 ‘마담’의 카리스마가 물씬 풍기는, 소위 기가 센(?) 여자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있던 날,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탱글탱글한 펌 머리를 하고 나타난 백마담은 ‘마담’이라기보다 ’소녀‘에 가까운 여자였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여전히 ''맘껏 상상하고, 자유롭게 놀기를 좋아한다’고 평하는 이 여자. 뭔가 특별해 보였다. 그런 그녀가 한때 함께했던 카페 ‘제리코’가 궁금해졌다.
카페 제리코의 문을 열다...그리고 959일
2007년. 카페 제리코의 문이 열렸다. 20대 때, 영국에서 자주 들렸던 작은 카페를 늘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백지혜 씨. 슬리퍼에 추리닝 차림으로도 편히 들릴 수 있는 조그만 카페를 언젠간 열고 싶었다는 그녀는 서른 셋 나이에 카페 제리코의 안방마님이 됐다. 통상 여자 나이 서른셋이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직장에 결혼생활을 시작했을 나이. 하지만 그녀는 뻔한 길을 가기보다 그녀가 꿈꾸는 대로, 자유롭게 살기가 더 좋았단다.
“20대가 조금은 경직돼 있던 시절이었다면, 30대 때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어요.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시작된 카페 제리코에서의 생활. 그렇게 959일 지났다. 책 <카페 제리코>는 그녀가 카페를 시작한 이후, 매일 매일 써간 그날의 소소한 일상들을 모았다. 그래서 마치 그녀의 일기를 보는 것처럼 소박하고, 극히 평범하기도 하다.
“현재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과연 누가 읽어줄까 하는 마음에, 책 발간을 주저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죠. 특히 제리코를 거쳐 간 이들에겐 말이죠 ”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절대 선사할 수 없는 ‘동네 카페’가 주는 안락함. 책은 그 안락함을 그대로 담아 카페 제리코를 이야기한다.
카페 제리코는 ‘소통의 공간’
몇 평밖에 안 되는 작은 카페 제리코였지만, 959일 동안 함께 웃고 울고 간 이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제리코의 벽화를 그려줬던 아티스트 ‘이랑’, 일산에서 영어 강사로 지냈던 ‘바른생활 청년 드류’, 제리코를 출근하듯이 드나들며 마감녀란 별명을 지녔던 두 여인, 백마담과 함께 일산의 유흥문화를 맘껏 즐겼다던 ‘로니카’.
백마담 백지혜 씨는 이들이야말로 카페 제리코의 진정한 ‘주인공’들이라고 한다. 책 또한 그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와 다름없다.
“솔직히 전 사회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워낙 제 스타일이 있고, 남에게 비춰지는 모습이 도도하고 까칠하게 보이니까요(웃음). 하지만 그런 제가 운영하는 카페 제리코엔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찾아오더라고요. 그리고 친구들이 됐죠”
이런저런 사연을 지닌 사람들과 애견 ‘미니’, 떠돌이 개에서 우연찮게 제리코의 식구가 된 ‘구름이’까지. 카페 제리코는 이들이 이야기들을 담아내며 삼 년여를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2009년 10월, 카페 제리코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제리코를 운영하며 알게 됐어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스타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제리코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저의 새로운 면도 발견하게 됐죠. 마치 모난 네모가 둥그런 모양으로 다듬어진 것처럼 말이죠. 제리코는 제가 아니라 그들이 주인공인 셈이에요”
그녀의 무한 빈티지 사랑
그녀는 카페 제리코를 접고, 한 때 정발산동에 작은 옷 가게를 운영했다. 빈티지를 테마로 한 ‘제리코 스트리트’였다. 옷장에 수십 벌의 꽃무늬 원피스가 있다는 그녀는 빈티지 마니아다. 최신 트레드만을 쫓는 요즘 사람들에게 백마담 백지혜 씨의 스타일은 한 마디로 튄다. 하지만 그녀는 빈티지야말로 자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한다. 얼리 어댑터는 아니지만, 남들과 똑같은 스타일을 싫어했다는 그녀.
“빈티지라고 하면 흔히들 ‘구제’라고 생각해, 낡은 것, 오래된 것이라고만 받아들이죠. 하지만 저에게 빈티지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스타일을 완성시켜주죠. 길들여진 옷이 저에게로 와서 새로운 스타일로 다시 살아난다고 생각하면 의미가 있어요”
그녀의 패션에 관한 이야기를 따로 풀어도 한 보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백마담의 키친, 제2의 제리코로 만들고파
이제 그녀의 인생은 어느 새 삼십대 막바지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십대 청춘처럼 자유롭다. 그리고 그 자유로움은 그녀를 새로운 길로 이끌고 있다. 인터뷰 요청을 하기 며칠 전, 그녀는 이십여 년 동안 생활했던 일산을 떠나 서울 연희동으로 이사를 갔다. 근황을 물었다. 그녀가 만든 차와 음식을 벗 삼아, 사람들이 행복해했던 제리코에서의 추억 때문일까. 요새 경복궁 근처 작은 스페니시 카페에서 매주 ‘백마담의 키친’이라는 시간을 갖고 있단다. 백마담의 키친이 시작된 지도 어느 덧 4개월. 본격적인 시작을 위해 이사도 결심했다. 백지혜 씨는 “백마담의 키친은 음식이 메인인 공간이에요. 제가 만든 음식을 선보이는 자리이자, 카페 제리코에서의 부족한 점을 한 층 보완한 공간이라고 설명하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한다. 그 곳에서도 조금은 도도해 보이긴 하지만, 한때 별명 ‘동치미’라 불릴 정도로 약간은 허술한 면도 있는 ‘백마담’으로 불리며 사람들을 맞이할 것이다.
백마담 백지혜 씨 트위터 cafejericho@nate.com
남지연리포터 lamanu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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