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다 더 힘든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이 많아요. 병상에서 직접 환자를 돕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행정업무를 돕는 일을 하는 것뿐 이예요. 봉사시간이 길다고 내세울 만한 것도 아닌데...”
11년 째 1300시간에 이르는 자원봉사를 이어오면서 2009년부터는 단 한 주도 봉사를 거른 적이 없는 이찬희 씨(50세). 국립암센터 암예방검진센터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10년이란 세월만 길지 크게 힘들여 한 일이 없어요”라고 겸손해한다. 하지만 그는 칭찬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 2004년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뒤 지금까지 완치판정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암 수치를 낮추기 위한 치료와 약물을 계속 복용하고 있는 암 환자다. 더구나 지난 2월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받은 상태다. 암세포의 추이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하는 고위험군 환자지만 그에게서 그런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집에 있으면 몸이 꺼지는 것처럼 아프고 기분도 가라앉아요. 그런데 신기하게 나오면 또 견딜 만해요. 만약 봉사를 하지 않았으면 지금보다 더 상황이 안 좋아졌을 것 같아요. 제게 봉사는 누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제 자신이 힘을 얻는 일이죠. 다른 분들처럼 병상에서 직접 환자를 돕는 봉사를 못하는 것이 죄송하긴 하지만, 제 작은 힘이라도 병원업무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제게 큰 힘이 됩니다.”
홀트작업장에서의 봉사,
장애인들에게 작은 도움 줄 수 있다는 것에 보람 커
갑상선은 완치율이 높은 암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경우는 달랐다. 12년 전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였고 또 수술 후 2000명 중 1명꼴로 온다는 쇼크로 온몸이 잠시 마비됐다. 1년여를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그는 2004년 12월, 건강이 차츰 좋아지자 병상에서의 다짐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12년 전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자원봉사의 필요성을 느낀 그는 자원봉사교육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 당시엔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던 상태였고 1년 후 자신이 암환자가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자신의 다짐대로 자원봉사를 하기로 맘먹은 그는 처음 6년간은 목요일마다 국립암센터 내 중앙공급실에서 암 환자들이 쓸 수건과 환자복 등을 정리했다. 2010년부터는 암예방검진센터에서 암 환자들에게 검진 통지서와 함께 암 예방 관련 홍보물과 약을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고양경찰서에서 안내봉사를 하기도 했다는 이찬희 씨. 그가 요즘 가장 보람을 느끼는 봉사는 한 달에 3번 탄현 홀트작업장을 찾아 장애인들의 작업을 돕는 일이다. “작업장에서 쇼핑백을 만드는 일을 하는데 장애인들보다 제가 더 손이 빠를 수밖에 없잖아요.(웃음) 작업 수익금이 매월 장애인들의 통장으로 입금되는데 제가 봉사한 만큼 장애인들의 통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아요. 작지만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잖아요.”
성치 않은 건강으로 봉사를 다닐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는 ‘가족’이라고 답한다. “아이들이 이제 다 컸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엄마가 아픈 모습만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 제일 미안해요. 제가 기운 없이 쳐져 있으면 아이들도 상심이 클 것 같아 활기찬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또 집에 있으면 우울해지기 쉽고...봉사를 나오는 날은 화장도 하게 되고 거울 속의 나를 한 번 더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또 나와서 사람들과 어우러지다보면 아픔도 잊게 되고 웃게 되고 활기가 생겨요. 그래서 봉사는 제가 누군가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봉사를 통해 위로를 얻고 힘을 얻는 활력소지요.” 2012년에는 ‘1000시간 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찬희 씨, 그의 아름다운 봉사가 앞으로도 계속 현재진행형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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