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밤, 조용하기만한 행신도서관에 난데없이(?) 구슬프게 곡조를 뽑는 노래 소리가 들렸습니다. ‘홍도야아~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아아~♬♪♪’ 아코디언과 색소폰 반주에 맞춘 노래가 끝나자 변사의 구성진 해설이 이어지고 무대 위 주부들이 각자의 배역 속으로 빠져듭니다. 1936년 초연 이후 광복 전 한국 연극사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는 바로 그 악극, 눈물 없인 볼 수 없다는 ‘홍도야 울지마라’ 연습 삼매경에 빠진 이들은 주부연극동아리 ‘행주바람’입니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행신도서관 특성화프로그램으로 시작된 ‘행주바람’
‘행주바람’은 지난 해 4월~7월 행신도서관 특성화프로그램인 ‘엄마 연극으로 놀다’란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이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주부연극동아리다. ‘엄마, 연극으로 놀다’는 고양시도서관에서 인형극과 어린이 연극놀이 지도를 하고 있던 최영록 씨가 주부연극 프로그램을 개설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마침 행신도서관에서 주부를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고 해 개설하게 된 강좌. 최영록 씨는 “청주에서 주부연극단을 지도하고 있는 이익주 선생님의 첫 번째 공연을 보고 와서 제가 살고 있는 고양시에도 주부연극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부로 살면서 자신의 끼를 모르고 살거나, 끼를 발산하고 분출할 통로가 없어서 또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찾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주부가 아닌 ‘나’로서 표현하고 발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었지요. 그런데 마침 행신도서관에서 주부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찾고 있다 해서 2013년 봄 이익주 선생님을 초빙해 강좌를 열게 됐습니다”라고 한다.
처음엔 그저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고 직접 제작해보는 공부를 해보자 했던 것이 ‘행주바람’이란 이름으로 본격적인 모임이 시작된 것은 수업이 끝나고 졸업 작품인 ‘우리읍내’ 공연을 마친 후. 행주바람 단원 김세아 씨는 “졸업 공연은 11명이 함께 했어요. 그런데 공연만으로 끝내기엔 너무 아쉽더군요. 그래서 우리 계속 연극 한번 해볼까 하고 의기투합한 6명이 동아리를 결성하게 됐지요”라고 한다. ‘행주바람’은 고양시의 명소인 ‘행주산성’의 ‘행주’ 와 행신도서관에서 활동하는 주부를 줄여서 ‘행주’ 라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단다. 회원들은 또 ‘연극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싶다’ ‘연극으로 바람 난 주부’ 라는 의미로 ‘바람’을 합쳐서 ‘행주바람’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고.
-연극은 나조차 몰랐던 나를 찾아가는 즐거운 경험~
초기 6명으로 시작된 ‘행주바람’은 현재 최영록, 이경자, 김민아, 김복애, 이경완, 연규선, 김연선, 박정려, 김세아, 양혜영, 박미화, 김세연, 원영숙 씨 등 13명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지난 해 8월 첫 번째 연극 ‘우리읍내’가 큰 호응을 얻자 초기 6명의 멤버들은 매주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연습에 매진해 지난 해 12월에는 안톤 체호프의 단편을 공연하기도 했다. 최영록 씨는 “행주바람 동아리로서는 안톤 체호프가 첫 번째 공연인 셈이지요. 이번에 공연 올릴 예정인 <홍도야 울지마라>는 2014년 행신도서관에서 ‘엄마들의 연극여행’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모집한 주부들의 졸업 공연인거구요. 기수라는 걸 굳이 따지자면 ‘엄마, 연극으로 놀다’가 1기라면 ‘엄마들의 연극여행’은 2기가 되는 셈이고 그러면서 회원도 6명에서 13명으로 늘어나게 됐지요.” 특히 이번 ‘홍도야 울지마라’ 공연에는 단원의 지인인 양명주 선생이 애절한 스토리에 어울리는 섹소폰과 아코디언 찬조연주를 해줘 모두 분위기 업 되어 있다고.
회원들은 30~5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전업주부부터 유치원교사, 회사원, 성악 강사, 포크아트강사, 도서관 자원활동가 등 직업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들은 상황에 맞는 즉흥극도 해보고, 두 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동안 처음엔 어색했던 사이가 지금은 친동기간처럼 가까워졌다고 입을 모은다. 또 서로 웃고 호흡을 맞추는 사이 연극배우로 한 발자국 더 다가선 느낌이라고. 아직은 대사를 자연스럽게 읊는 것도 서툴고 무대 위에서 동선을 잃고 허둥대기도 하지만 연극에 대한 열정은 프로 못지않은 그들의 연습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그래도 아쉬운 듯 작별인사가 길었던 단원들은 “연극 속에서는 수다쟁이 아줌마도, 수줍은 소녀도 될 수 있잖아요. 연극은 나조차 몰랐던 나를 찾아가는 즐거운 경험입니다. 앞으로 더 매진해서 공연 봉사도 열심히 다니고 싶어요”라고 포부를 밝힌다.
행신도서관에서는 매년 봄 주부연극강좌(15회차)를 진행하며 강좌 후 공연에 참여한 이들에 한해 행주바람 동아리 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http://cafe.daum.net/hsplay 단원모집문의 031-8075-9231
>>> 미니인터뷰
- 연출가 이익주 씨
“연극은 무대 위에서 살아보는 자신의 행위와 감정을 분석 연구함을 통해 실제 삶 속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지요. 그럼으로써 좋은 습관과 인관관계 또한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우리들이 운명을 쉽게 바꿀 순 없지만 무대 위에서 좋은 행동습관을 거듭하다보면 보다 나은 자신, 운명도 좋은 쪽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주부들은 무대 위의 자신을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게 느끼기도 하지만 배우고 연습하다보면 숨겨진 끼가 표출이 돼 자신도 놀라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한 편씩 연극을 올릴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이 큰 작업이지요.”
- 홍도 오빠 동혁, 홍도 시아버지 역 김복애 씨(49세)
“작년에 아버지를 잃고 상심하던 차에 행신도서관에서 연극모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호기심에 나오게 되었는데 새로운 사람을 넓게 품어주는 가슴과 뜨거운 열정을 뿜어내는 모습에 반해서 연극연습이 있는 날을 매일 기다리게 됐답니다. 우연히도 이번 공연에서 맡은 역이 다 남자역이예요. 홍도의 오빠인 ‘동혁’ 그리고 홍도의 ‘시아버지’. 돌아가신 아버지의 젊은 날과 그리고 우리 곁을 떠나시던 모습을 기억하며 연기하고 있습니다. 저에겐 이 연극이 새로운 사람들과의 첫 연극이자 아버지와의 이별연극이니 최선을 다해 멋진 공연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홍도 역 김민아 씨(40세)
“저는 온라인 카페활동을 하던 중에 행신도서관에서 주부연극 강좌를 연다는 소식을 접하고 주저 없이 신청을 했답니다. 연기자가 제 꿈이었거든요. 하고 싶었던 연극을 배우고 또 이번에 주인공 홍도 역을 맡게 돼 얼떨떨하면서도 좋아요. (웃음) 그래서 직장이 끝난 후 저녁 8시에 연습이 시작되는데도 피곤한 줄 모르고 재미있고 신이 납니다. 행주바람 단원들 모두 저와 같은 분들이 대부분이죠. 처음엔 행신도서관에서 주관을 하니 가까이 사는 분들이려니 했는데 행신 화정 뿐 아니라 일산 파주 분들도 많아요. 저도 파주 탄현에서 달려온답니다. 전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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