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밥 그 이상이다. 속이 헛헛할 때 누군가 함께 먹자고 내미는 따신 밥 한 그릇은 마음을 채워준다.
여기 밥 한 끼 함께 먹자고 초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셰프는 한 사람, 테이블도 하나. 소박하지만 이야기는 넘치는 원테이블 레스토랑이다. 두 곳 모두 소통과 나눔이 있는 정겨운 공간이다.
요리가 있어 행복한 그녀의 공간
정발산동 양지미식당
떡 하니 차려진 ‘만원의 행복’을 상상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아무런 기대감 없이 골목길을 걷다가 ‘어, 이런 식당이 있었어?’ 하며 들른다면 틀림없이 만족스러울 그런 식당. 정발산동 불고기브라더스 뒷골목, 문을 연 지 막 한 달이 넘은 양지미식당이다.
상호는 주인장 양지미(25)씨의 이름을 땄지만 간판은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프랑스 작은 마을 부엌쯤으로 공간이동 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열 평 남짓한 공간에 8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손님들은 테이블 하나를 더 놓자고 성화다. 하지만 양지미씨는 원테이블을 고집한다.
“집에서 초대받은 느낌을 드리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서로 부딪힐 정도로 좁은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먹는 거요. 옆 사람이 다른 메뉴를 시키면 가끔은 ‘한 입 먹어봐도 돼요?’ 하며 나눠먹고 말도 같이 하고. 그런 게 너무 재미있어요.”
호떡 맛보다 레시피가 궁금했던 아이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식당을 열었다면 어디 요리학교라도 졸업했을까 생각하겠지만 양지미씨의 공식 이력은 요리와 거리가 있다. 국악예고 연기과를 졸업하고 예대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하지만 그가 꿈꾸었던 건 어릴 때부터 쭉 요리였다.
“어릴 땐 할머니네 집에 가서 전 부칠 때 다들 그냥 나가라고 하는데 저는 재밌어서 끝까지 설거지를 했어요. 또 호떡집에 가면 애들은 호떡만 기다리는데 저는 아줌마 손을 봤어요. 만드는 법이 재밌어 보여서.”
용돈을 받으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예쁜 식당 구경하러 다니는 데 썼다. 아르바이트는 언제나 음식점이었다. 설거지만 하고 하루가 끝나도 행복했다. 스물두 살에는 우연히 이탈리안 식당 하나를 맡게 됐다. 한가하던 식당이 나중에는 손님이 제법 찾아올 만큼 열심히 요리를 연구하고 만들었다. 적은 시급에 설거지부터 음식까지 도맡아 하는 고단한 생활이지만 그저 주방을 내주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개발한 메뉴는 요리에 관심 있는 이들과 공유했다. 특히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원테이블 레스토랑 장진우식당을 운영하는 장진우씨에게 많은 영감을 얻었다.
요리할 수 있는 것으로 행복한 사람
“노래 부르고 연기할 때는 가끔 숨 막혔어요. 카메라 앞에 서면 왜 저 사람 앞에서 통곡하면서 연기를 해야 되지. 이런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사람을 평가하고 누군 떨어트리고 예쁜 사람 좋아하고 그런 문화가 싫었어요. 하지만 요리는 재밌었어요.”
뚝딱뚝딱 오픈주방에서 만들어 내는 그녀의 요리는 따뜻하다. 이탈리안 또는 프랑스식 가정식을 표방하고 있지만 양지미씨의 취향으로 다시 만든 퓨전요리라고 쓰는 것이 맞겠다. 최근의 메뉴는 데리야끼소스에 비벼 먹는 살치살덮밥, 깻잎페스토로 버무린 채소구이와 목살 스테이크, 오징어 먹물 리조또, 콩크림에 곁들인 로스트치킨, 그리고 인기메뉴 시금치 커리 등이다.
날마다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Oneulyori) 페이지에 그날의 요리를 공지한다. 단품 요리를 내기 때문에 스프나 샐러드 후식 등은 없으며 5인 이상 대관할 경우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다.
위치: 일산동구 일산로 372번길 8
영업시간: 화~금 12:30~3:30, 주말은 저녁도 가능 18:00~21:00
휴무일: 매주 월요일
문의: 070-4133-5315
나와 이웃을 위한 선물 같은 요리
동패동 책향기마을 파주키친
채식이 몸에 좋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요리하자면 쉽지 않다. 그럴 때 파주키친에 방문해보면 어떨까. 파주키친은 임경호(38)씨가 운영하는 원테이블 홈다이닝 채식 레스토랑이다. 1명의 셰프가 1테이블에서 1팀의 손님만을 위해 음식을 만든다. 무농약 이상 유기농 재료를 사용한 채식 위주 샐러드와 퓨전 파스타를 요리한다.
독특한 것은 음식 값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대신 후원이나 모금을 받는다. 메뉴에 가격표를 쓰긴 했지만 후원을 위한 기준일 뿐, 계산은 자유롭게 한다. 때로는 물물교환도 받는다.
독특한 건 또 있다. 만성신부전증으로 몸이 좋지 않은 셰프가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손님들은 서빙과 설거지를 도와야 한다.
이런 형태의 나눔을 하게 된 것은 ‘적게 벌고 행복하게 살기’를 실천하고 싶다는 셰프의 철학 때문이다.
적게 벌고 행복하게 살기
임경호씨의 본업은 대학 강사로 모교인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미디어아트를 강의하고 있었다. 그러다 2012년 초 몸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눈이 잘 안보이고 혈압도 높아지고 피곤함이 가시지 않던 나날이었다. 진단 결과는 만성신부전증이었다.
일을 접고 쉬다가 파주로 이사하고 지난해 11월부터 파주키친을 열었다. 시작은 지인들에게 요리를 대접하는 것이었다. 워낙 파스타를 좋아하던 그였다. 정통 이탈리안 요리보다는 우리나라에서 나는 재료를 이용해 채식 샐러드와 파스타를 혼자서 개발했다. 지인들에게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하니 다들 만족했다.
넓은 집을 혼자 쓰기에는 아깝고, 그렇다고 식당을 차리기는 규정에 맞지 않아 비영리 목적으로 운영하게 된 것이 파주키친이다.
임경호씨는 파주로 이사 후 지역에서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 동네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며 익혔다. 동네 도서관에는 사서보조로 일하고 한살림 조합원으로 가입해 소모임 활동을 했다. 그 무렵 후지무라 야스유키의 ‘적게 벌고 행복하게 살기-3만엔 비즈니스’라는 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것이 파주키친 운영에 대한 생각을 다듬어 주었다.
“파주키친은 무한경쟁, 승자독식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적인 방식이 아닌 대안적인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 달에 꼭 필요한 만큼만 적게 벌면서도 나와 이웃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지구와 환경이 더 나아질 수 있는 일을 실천하자고 생각했어요.”
이웃이 있어 행복한 요리사
파주키친의 요리는 현미야채스프와 제철샐러드 퓨전파스타 또띠아피자가 나오는 파스타풀코스메뉴와 현미밥&토마토스튜세트와 현미토마토리조또세트 등이다. 식재료의 대부분은 유기농 매장에서 구입하며 때로 무농약이나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이웃들에게 물품 후원을 받기도 한다.
여름에는 토마토와 가지 등 제철 채소를 십분 활용한다. 토마토 철이 지나면 두유를 넣은 들깨파스타를 요리한다. 대학 강의가 없는 7~8월에는 쿠킹클래스도 진행한다. 그의 레시피 중 현미야채스프와 채식드링크 시리즈 음식들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6시간마다 투석을 해야 하는 힘겨운 나날이지만 임씨는 제2의 재능인 요리를 찾아 이웃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또 틈틈이 원주에 있는 노숙자 후원 단체 ‘행복한 밥상’에 가서 자원봉사도 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아무리 고통 속에 있어도 외롭지만은 않다는 것, 파주키친 임경호씨가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
위치: 파주 동패동 책향기마을 우남퍼스트빌 1406-701
영업시간: 화~일요일 점심과 저녁. 블로그 (http://blog.naver.com/kh_7777) 예약제
휴무일: 매주 월요일
문의: 010-2802-8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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