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엽동 대우레시티에 위치한 ‘오래된 미래옷’. 공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잠시 유년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엄마의 옷장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모본단이며 양단 공단 치마와 얌전하게 누빈 저고리. 오래된 그 옷들이 이곳 공방 지킴이 정은 대표(54세)의 손길이 닿으면 전통적인 아름다움에 현대적 감각을 지닌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의 손만 닿으면 엄마의 공단 저고리는 우리 전통의 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짧은 재킷으로 되살아나고, 유똥치마는 길이를 자르고 허릿단에 자수를 놓으면 멋쟁이 롱스커트로 변신합니다. “세상에 버릴 옷은 하나도 없다”는 정 은 대표. 그는 ‘친환경의 편안하고 아름다운 복식철학’을 실천하는 슬로패션디자이너입니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누비장인 김혜자 선생의 작품에 매료 돼 우리 전통 옷에 눈떠
슬로패션(Slow Fashion)에 대한 일반적 정의는 ‘환경 파괴 없이 지속 가능한 또는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패션 스타일을 말한다.
문화공예상품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정 은 대표가 슬로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 이뤄졌다. “오랫동안 스텐실, 패션페인팅 등 문화상품과 관련된 다양한 공예를 했어요. 그러면서 문화상품 디자인과 관련된 전시회를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어느 날 누비장인 김혜자 선생의 누비작품을 보게 됐지요. 보는 순간 혼이 흔들렸다고 해야 할까. 아 우리 옷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구나~하는 강렬한 인상, 문화적 충격이었죠.” 이후 그는 우리전통문화 특히 우리 옷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됐다고.
“우리 역사를 이어가고 알려야 한다고 이야기들을 하면서도 정작 우리 옷은 잘 안 입더라고요.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우리 후배들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전통은 살리되 생활 속에서 불편하지 않은, 옷장 속에 숨어있는 옷들을 다시 리폼해 다시 입는 슬로패션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오래된 미래옷’에서 친환경의 편안하고 아름다운 복식철학을 나누다
그에게 물었다. 슬로패션디자이너? 아직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거의 개척자라 할 정도로 낯선 분야에 매진하면서 쉽지만은 않았을 터. 왜 슬로패션 운동을 하고, 또 왜 ‘오래된 미래옷’을 만들게 됐는지.
“슬로패션은 나름의 복식의 미학과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슬로패션이 단순히 입지 않는 옷, 버려진 옷을 리사이클링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것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할 근본적인 권리라고 생각해요. 슬로패션 운동은 이러한 복식의 미학을 가능하게 하는 천연소재 자원과 생태환경, 오래된 미래문화와 전통을 보호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복식생활을 해야 한다는 ‘친환경의 편안하고 아름다운 복식철학’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죠. 슬로패션은 환경 파괴, 노동력 착취, 패션계의 획일화, 획일적인 유행에 사로잡혀 자신만의 개성과 다양성을 잃게 할 수 도 있는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이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정 은 대표는 또 “슬로패션이라는 외래어, 저도 우리말을 놔두고 이름만 들어서는 알 듯 모를 듯 뜻 전달이 안 되는 영어를 쓰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슬로패션이란 말보다는 우리말인 ‘오래된 미래옷’이라는 말을 쓰고 공방이름도 그렇게 지었답니다”라고 덧붙인다.
핸드메이드와 업사이클링이 결합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싶어
오래된 옷의 문화원형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하고 옷을 지을 때,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정 은 대표. 그의 옷은 지난 2013년 킨텍스에서 열린 경기국제관광박람회 주최 ‘세계의상페스티벌’에서 선보여 50여 개국의 외교관들을 매료시켰고 특히 코티부아르 대사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이란 찬사를 받기도 했다.
“왜 슬로패션을 고집하느냐? 경제적인 이득을 떠나서 제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아요. <오래된 미래> 라는 말이 좀 맞지 않는 말이죠? 미래라는 단어의 시제가 언제나 미래여서 오래될 수가 없잖아요? 그 의미는 미래의 대안으로 전통을 선택한다, 즉 현대적 삶이 전통적 삶보다 나은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이겠지요. 마구 버려져서 생태환경을 오염시키고 훼손시키는 옷이며 물건들을 다시 재창조해 오래 쓰고 나누는 일 이런 작업을 통해 참살이 노동, 나눔과 공익, 생태계보존, 물신주의 과욕의 절제, 전통문화의 되살림을 실천한다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요?(웃음)”
최근 그는 ‘오래된 미래옷’ 공방과 이웃인 두레협동조합 아나바다매장 ‘함께하는 가게’와 함께 지구를 지키며 물건의 수명을 늘려주는 업사이클링(Up-cycling)작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또 다니는 교회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슬로패션 강습도 열고 있다는 그는 “바느질만큼 어르신들과 친숙한 작업이 있을까요? 또 아끼고 재활용하는 것이 어르신들 세대엔 익숙한 일이고요. 그래서 그분들에게 슬로패션이 노후에 안성맞춤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생각입니다.” 앞으로 슬로패션에 대한 구상들을 더 전문적이고 구체적으로 발전시키고 싶어 올해 박사과정을 시작할 계획이라는 정 은 대표. 그의 옹골진 꿈이 더 크게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오래된 미래옷’ 슬로패션 강습(모시옷, 무명옷, 명주옷, 누비옷/손누비 및 머신누비, 한지옷, 재활용) 문의는 070-7535-5595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