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오전, 대화동 고양도시공사에 들어서자 구슬픈 듯 애잔한 아코디언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좁아졌다가 넓어지는가 하면 작아지는 듯 다시 커지는 그 소리를 따라 간 곳은 고양시 실버아코디언연주단(이하 실버아코디언연주단) 단원들이 연습실로 사용하는 공간, 십여 명의 어르신들이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평균 나이 77세, 1950년~60년대를 지나온 그들에게 아코디언은 추억을 떠올리는 악기일 것이다. 어려웠던 그 시절 어쩌다 동네에 들어온 악극단이나 장터의 약장수들이 들려주던 아코디언 소리. 실버아코디언연주단 단원들은 월요일과 수요일 오전 한자리에 모여 직접 아코디언을 연주하면서 그 향수를 풀어내고 있다. 그뿐 아니라 갈고 닦은 연주 실력으로 지금까지 500여 회에 이르는 봉사연주를 펼친 자타공인 고양시 대표 봉사단이기도 하다. “일흔이 넘어 드디어 나를 위한 시간을 찾은 요즘이 우리들의 황금시대”라는 실버아코디언연주단. 나이를 잊고 사는 그들을 만나보았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2006년, 일산노인종합복지관 아코디언 수강생들이 의기투합
실버아코디언연주단의 시작은 일산노인종합복지관 아코디언 부. 지난 2006년 2월 악기를 함께 배우던 공길남, 김성애, 김주만, 박용준, 신현분, 윤영일, 이상길, 이순중, 황병화, 홍성수 씨 등 10여 명이 뜻을 모았다. 실버아코디언연주단 공길남 단장은 “아코디언을 배우고 나서 이왕이면 우리가 배운 재능으로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의미 있는 일을 하자는 의견이 있었지요. 그래서 30명 수강생 중 10명이 의견을 같이 하게 됐고 그해 3월 명지병원 연주를 시작으로 단체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라고 한다.
그때도 단원들이 모두 일흔이 넘은 나이였지만 정기적인 연습을 통해 쌓은 실력이 소문나면서 요양원, 병원 등에서 많은 초청을 받았고 각종 매체에 소개가 됐다. 그러면서 전국실버경연대회 우수상, 자원봉사 활성화 유공 표창 등 많은 수상도 뒤따랐다. 공길남 단장은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지만 특히 전국에서 1,000여 명 이상 모인 전국 경로당 자원봉사 클럽 경진대회에서는 참석한 이들이 일어나 춤을 출 정도로 인기를 끌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라고 말한다.
10명으로 시작한 실버아코디언연주단원은 현재 14명, 대학교수로 정년퇴임한 최고참 이상길 씨를 비롯해 공직자, 교장, 기업체 중역 등 단원들의 이력도 다양하다. 단원들은 “은퇴 전 이력은 다양하지만 아코디언과 봉사라는 공통분모로 10여 년 마음 맞추고 소리 맞추다보니 지금은 호형호제하면서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라고 자랑한다.
병원이나 양로원 실버들에겐 인기스타, 찾는 곳 많으니 즐거워
“젊을 땐 가정을 갖고 애들 키우고 가족들 책임지느라 정신없이 뛰었죠.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고 은퇴하고 나니까 이제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구나 싶었죠.”
처음에는 음계도 모르고 악기를 다뤄본 적도 없던 단원들이지만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일, 배우는 속도는 느렸지만 이제 그들은 ‘홀로아리랑’, ‘청춘을 돌려다오’, ‘고장 난 벽시계’, ‘찔레꽃’ 등 60여 곡의 레퍼토리를 분위기에 따라 흥겹게 연주할 수 있게 됐다고. 월요일과 수요일 오전 정기연습을 마치고 오후엔 어김없이 병원이나 양로원, 요양시설 등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친단다.
“우리도 나이가 먹었지만 봉사를 나가면 요즘 정말 장수시대라는 걸 실감해요. 아흔 넘은 이들이 이젠 드물지 않거든요. 그곳에 가서 연주봉사를 펼치다보면 이렇게 건강하게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오히려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고 돌아옵니다.”
실버아코디언연주단에게 앞으로 어떤 봉사활동을 펼치고 싶은지 묻는 것은 우문이다. “지금처럼 건강하게, 덜도 더도 말고 딱 지금처럼 우리를 찾는 곳이 있다면 달려가 잠시나마 위로가 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바람입니다.”
***미니인터뷰
“몸을 못 쓰는 노인들도 처음엔 반응이 없다가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어깨를 들썩이기도 합니다. 또 요즘은 경로당이나 시설에 아흔 살 넘은 노인들도 많아요. 그 어른들이 그 나이까지 평생 악기연주를 처음 들었다 하면서 눈물을 흘릴 때 짠하기도 하고 우리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공길남 단장, 80세)
“대학에서 정년퇴임 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다가 아코디언이 떠올랐어요. 50년 전 대학입학선물로 아버지가 사주신 아코디언을 창고에서 꺼내 들었죠. 이젠 아코디언이 아버지의 유품이자 나의 인생 2막 동반자입니다. 봉사를 다니면서 오히려 건강해지고 정신적으로도 느끼고 배우는 것이 많아 만족스럽습니다”
(이상길 씨, 83세)
“무엇보다 연주할 때 뿌듯함을 느끼지요. 단원들 모두 아코디언의 생 초보들로 시작해서 이 나이에 이렇게 연주할 수 있다는 것도 좋고,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봉사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10여 년을 함께 한 단원들이다보니 호흡도 척척, 이젠 식구나 다름없는 사이지요.”
(김주만 총무, 78세)
“아코디언이 무겁지 않느냐고요? 무겁죠.(웃음) 하지만 연주할 때는 그 무게를 잊어버리게 된답니다. 전 나중에 합류한 단원이라 실력은 아직 많이 닦아야 하지만 고양시 실버아코디언연주단 단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죠. 봉사활동을 나가서 오히려 배우는 것도 많고 도리어 위안을 받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김봄의 씨, 72세)
“창단 멤버로 시작해 10여 년 동안 함께 연주봉사를 다니다보니 이젠 단원들이 형제나 다름없습니다. 호형호제하면서 실력이 나은 단원이 나중에 들어온 단원들을 지도해주고 이끌어주면서 지금까지 500여 회의 연주활동을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죠. 2월에도 우리를 불러주고 찾는 곳이 많다니 신이 납니다.”
(이순중 씨, 7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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