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밤 9시가 조금 안 된 시각, 후곡 학원가 육교 밑 컨테이너에 나이 지긋한 여성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비가 온 후 약간 으슬으슬한 날씨. 서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따뜻한 차 한 잔씩 나누고는 연두색 조끼를 덧입는다. 빨간 색 경광봉도 하나씩 챙겨든다. 이들은 일산3동 어머니 자율 방범대원들. 일산3동 밤거리 안전 지킴이들이다.
문소라 리포터 neighbor123@naver.com
청소년들에겐 엄마처럼 할머니처럼~!
밤 10시가 가까운 시각. 희미한 가로등 아래 쉼터에서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학생 셋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머니 자율 방범대원이 조용히 다가가 곧 집에 들어갈 거냐고 부드럽게 묻는다. 학생들 역시 미소로 답한다. “네~ 곧 들어갈 거예요. 늦게까지 고생이 정말 많으시네요~ (웃음)” 학생들은 귀가를 권하는 대원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답하며 감사인사까지 덧붙였다.
일산3동 어머니 자율 방범대장 이영희(66)씨는 “늦게까지 귀가하지 않고 모여 있는 청소년들에게 어서 귀가하라고 말해도 불쾌해 하거나 불손한 행동을 하는 청소년이 없다. 엄마처럼, 할머니처럼 타이르고 보듬어 주면 오히려 고마워하더라”고 말했다.
대원들은 또 밤늦게 귀가하는 여성이나 여학생들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타는 모습을 지켜봐 주기도 한다. 혹 위험한 상황이 있지는 않은지 공중화장실도 꼭 점검한다. 거리를 돌며 인도가 꺼져 있거나 가로등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방범일지에 기록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건강과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들
일산3동 어머니 자율 방범대(이하 방범대)는 매주 월, 화, 목요일 밤에 일산3동 일대를 돌며 방범활동을 하고 있다. 나머지 요일에는 남성 대원들이 경광봉을 넘겨받는다. 총 12명의 대원들이 참가하는 방범활동에는 각 요일마다 7~8명의 대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각자 일주일에 2~3번씩은 꼬박꼬박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네댓 명이 두 팀으로 나눠 밤 9시부터 두 시간 동안 일산3동 전 지역을 돌아본다. 밤 11시에는 다시 컨테이너로 돌아와 그날의 활동을 다함께 정리한 후 귀가한다.
50대부터 70대까지, 방범활동 경력 1년부터 20년까지, 퇴직자 주부 자영업자 등 어머니 자율 방범대원들은 나이도 경력도 직업도 다양하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다. 모두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얼굴에다 두 시간을 지치지 않고 활보할 수 있는 건강을 지녔다는 것, 그리고 안전한 동네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들이라는 것이다.
가장 연장자인 정효섭(75)씨에게 동안 비결을 묻자 “방범활동을 해서 젊은가 봐요”라며 까르르 웃는다. 그는 “2년째 활동을 하고 있는데 건강이 더 좋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주민 센터 인근에서 옷 수선 집을 운영하는 전정임(62)씨는 일주일에 한 번 방범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그는 “다들 문 꼭꼭 닫고 사는 세상에서 이렇게 동네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그래도 가게에서 바로 오는 거라 쉽지만 집에서 쉬다 나오시는 분들은 참 대단하다. 특히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귀찮은 생각이 들기도 할 텐데 말이다”라며 다른 대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즐거움 속에 자연스레 형성된 단결이 활동 지속의 비결
일산3동의 자율 방범대는 20여 년 전 함께 모일 컨테이너 사무실도 없이 남녀 합해 4명이 활동을 시작했다. 정순종(66)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을 해온 방범대 터줏대감이다. “20여 년 전 희망퇴직을 하면서 우울증 증세가 오고 몸도 아프기 시작했다. 그때 방범활동을 시작했는데 사람들과 어울리며 봉사활동을 하니 지금은 아픈 데 하나 없이 건강하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이영희 대장은 “대원들이 다들 스스로 즐기면서 하고 있다. 그룹 봉사는 무엇보다 단결이 잘 돼야 지속 가능한데 그러기 위해선 재미가 있어야 한다. 우린 항상 즐겁게 활동하기 때문에 단결이 잘 된다”고 전했다.
>>>미니 인터뷰
이영희씨(일산3동 어머니 자율 방범대장)
봉사를 하면서 체력도 단련하고 지역의 안전도 도모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에요. 거기다 마을 분들과 더욱 친숙해질 수도 있고요. 밤에 거리를 돌며 방범 활동을 하는 저희들에게 주민 분들이 항상 고맙다고 하고 격려해 주셔서 기분이 좋습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시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정말 행복하고 뿌듯해요.
정순종씨
희망퇴직을 하면서 몸이 아프기 시작해 봉사활동을 시작했어요. 그후 몸이 차츰 좋아지더니 지금은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어요. 당시 중고등학생이던 딸들도 엄마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건강해지자 참 좋아했어요. 남편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주고요. 사회에 나와서 이렇게 봉사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앞으로도 꾸준히, 계속 할 겁니다.(웃음)
윤기남씨
1년 전 교직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방범대 활동을 시작했어요. 제가 가장 나중에 들어온 막내 대원인데 모두들 잘 도와주시고 재미있게 해주신답니다. 남편도 좋은 일 한다며 방범활동 하는 날엔 적극적으로 챙겨줘요. 추운 날은 목도리도 꼭 하고 가라고 하고요.(웃음) 방범대 활동은 제 삶의 엔돌핀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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