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 라가치상 픽션 부문 수상한 지경애 작가

엄마와 아이의 마음 <담>에 담다

지역내일 2015-06-12

해마다 이탈리아 볼로냐에서는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이 열린다. 전 세계에서 한 해 동안 만들어진 어린이 책 가운데 예술성, 창의성, 교육적 가치가 높은 작품에 수여하는 라가치상은 어린이 책 관련 상 가운데서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사라져가는 골목과 담의 모습을 수묵으로 그려 낸 지경애 작가의 첫 번째 그림책 <담>이 2015년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았다. 일산서구 가좌마을의 주민이기도 한 지경애 작가는 “운이 좋아 큰 상을 받았다”며 수줍어했다.







담에서 놀며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
“아주 어릴 때 아빠가 돌아가셔서 엄마가 저희 4남매를 혼자 키우셨어요. 엄마가 일 나가시고 언니오빠들도 다 학교 가면 혼자 집 밖에 나가 담벼락에서 놀았어요.”
멜빵바지 주머니에 열쇠를 넣고 혼자 놀다 지겨워지면 담벼락에 쭈그리고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가 이 책을 보면 눈물이 나신대요. 그렇게 고생하면서 키우셨던 게 생각나는지.”
그림책 <담>은 글이 적지만 많은 이야기를 걸어온다.
‘책의 커다란 판형을 활용한 그림들은 풍부한 감수성을 담아낸, 차분하면서도 압도할만한 시적공간을 창출해냈다’는 심사평에서 보듯 절제된 가운데 감성을 자극하는 그림책이다.
담벼락에서 혼자 놀며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시선을 따라 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어린 시절 그때로 돌아가 있다.
담 위로 살금살금 걸어가는 고양이는 어린 시절 늘 보던 그 녀석 같고 혼자 숨바꼭질하고 담에 낙서하며 노는 아이는 친구의 뒷모습 같다.
아파트 놀이터가 아닌 동네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놀던 시절, 그때의 풍경을 그림책 <담>은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다.







담을 지나 세상으로
지경애 작가의 어릴 적 꿈은 서예가였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두 달 다니고 그만 두었지만 서예학원에 다니면서 붓글씨 쓰기를 좋아하게 됐고 곧잘 상을 받기도 했다. 글씨 잘 쓰는 아이라는 게 알려져 학교에 붙이는 알림판 글씨를 쓰라고 불려 다니곤 했다. 복도에 붙이던 ‘복도에서 뛰지 맙시다’ 같은 글씨를 쓰는 일도 어린 경애의 몫이었다.
먹과 화선지가 좋아 들어간 성균관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공부했다. 아이들도 가르쳤다. 한창 붐이 일어난 방과후교실 강사, 미술학원 강사 등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동양화 그룹 전에 참여했다.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자라나던 중 때마침 그림책 작가 양성 기관이 생겨났고 지경애 작가도 SI그림책학교를 찾아가 작가 정신과 그림책에 대해 공부했다.
일산에 이사 온 것은 2009년, 큰 아이가 다섯 살 때였다. <담>을 마무리할 무렵 태어난 둘째는 이제 20개월, 아직 한창 엄마 손이 필요할 때다. 
담이 있던 서울의 어느 마을 골목에서 일산의 아파트까지 먼 길을 온 것 같지만 결국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의 이야기를 그려낸 그림책. <담>에는 엄마가 등장하지 않지만 결국 엄마와 아이의 이야기다. 엄마는 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따뜻한 이야기다.







세대를 이어주는 그림책 <담>


담에 대해 모르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들려주게 된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이야기로 바뀐다.
지경애 작가는 얼마 전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한 마을 도서관을 찾아 초등학생 20여 명과 독후활동을 진행했다. 네모난 담처럼 이어 붙인 종이에 아이들의 상상력을 담아 그림을 그려보는 작업이었다. 처음에 어떤 아이는 표지에 그려진 고양이를 보고 “담이 고양이 이름이에요?”라고 묻기도 했다.
작가는 아이들에게 ‘담을 통해 이어지는 세상에 무엇이 있나 상상해 보라’고 주문했다. 아이들은 특유의 상상력으로 아이스크림 세상, 괴물 나라, 산 아래 마을 초가집 등을 그려냈다.
한 시간 가까운 작업 후 아이들은 지경애 작가 팔에 매달려 “또 만나자”고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마음 속 담을 그려 보여준 사이라 그런지 스스럼없어 보였다.
이처럼 <담>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기에도 적절한 그림책이다.
5년을 걸려 첫 그림책 <담>을 작업할 때처럼 지경애 작가는 날마다 반복되는 그림책 작업을 묵묵히 하고 있다. 작가의 다음 책은 <담> 못지않게 조용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담는다고 한다. “교육적인 목적보다 예술로 그림책을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당부대로 하나의 작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의 두 번째 이야기를 맞으려 한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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