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문산 두포리에 있는 ‘평화를 품은 집’은 명연파·황수경씨 부부와 양은영씨가 15년 가까이 준비해 만든 곳이다. 살림집 두 채에 ‘평화도서관’과 ‘소라 빵집’에 학살의 역사를 기록한 ‘제노사이드 역사 자료관’, ‘다락갤러리’, ‘평품소극장’까지 품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평화를 품은 집은 짓는데 걸린 시간만큼 어려움도 많았지만 지난해 문을 열고 지금까지 벌써 4천 여 명이 다녀간 우리 지역 명소가 됐다.
15년 전 시작한 마을 만들기
시작은 파주 출판도시 내에서 어린이 도서관 ‘꿈꾸는 교실’을 운영하던 황수경씨 둘레의 사람들이 앞날의 고민을 나누는데서 출발했다. 일곱 가정이 모여 우리의 전통문화를 깊이 있게 체험하는 마을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천연염색과 한지공예, 매듭공예와 도자기, 목공까지 하나씩 특기를 익혀 평생을 어린이들과 함께 의미 있게 살자는 마음에서였다.
마을을 준비하면서 전국의 체험마을을 답사했다. 십 년 동안 여러 가족이 뭉쳐 가족여행을 다닌 셈이다. 어른들은 있는 정 없는 정 다 들었고 아이들도 또래끼리 노는 추억거리가 생기는 과정이었다.
“문화마을을 만들 거라고 꿈에 부풀어 설계를 하러 장봉도로 가족 엠티를 갔어요. 아이들에게 미래의 우리 마을을 설계해보라고 하니 재밌는 아이디어가 쏟아졌죠.” (황수경씨)
집과 집을 이어주는 통로를 만들자, 모든 집을 커다란 회전판 위에 짓자, 마을 가운데 마을회관을 짓고 카페를 차리자는 의견은 아이들이어서 낼 수 있는 신선한 기획이었다.
어른들은 지하에 와이너리를 만들어 수도꼭지를 틀면 와인을 마실 수 있게 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함께 하는 이웃이 있어 행복했어
큰 꿈을 품고 두포리에 땅을 구입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서 어려움에 부딪혔다. 가정마다 사정도 달라졌다. 결국은 양은영씨와 명연파·황수경씨네 두 집만이 남아 한 필지에 집 두 채를 짓고 나머지 한 필지에 도서관을 만들었다. 어려움이 많았만 지나온 세월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일곱 가정이 꿈을 꿨다는 것 자체가 소중해요. 포기해야만 했던 가족들이 섭섭한 시간도 있었지만 되돌아 생각하면 그 기간이 너무 즐거웠어요. 저의 40대 전부를 문화마을 준비에 쏟았는데 손 뻗으면 가까이에서 친구와 동생, 언니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했고 울적할 틈이 없었어요.”
황수경씨의 말이다.
역사를 아는 것이 평화의 시작
평화를 품은 집은 평화도서관과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이라는 두 개의 큰 축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을 만드는 데는 명연파씨의 몫이 컸다. 마을을 구상하던 어느 날 명씨는 제주에 있는 4·3기념관에 들르게 됐다.
“제주 4·3기념관에 대량학살을 뜻하는 제노사이드의 역사를 안내판에 적어 둔 게 있었어요. 지구상에 근 백 년 동안 엄청난 학살사건이 일어난 것을 보면서 평상시 무관심하게 지내온 것에 대한 충격이 컸어요. 평화에 대한 도서관과 함께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도 만들어 사람들에게 평화를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명연파씨)
명연파씨는 보다 생생한 자료를 구하기 위해 대량학살이 일어난 나라들을 방문해 생존자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관련 동영상과 책을 모았다.
제노사이드라는 말을 낯설어 하던 방문객들도 자료관을 둘러보면서 인류의 아픈 역사를 알고 평화에 대한 뜻을 품게 된단다.
“미리 아는 게 중요해요. 병균이 오면 미리 맞고 대비하는 것처럼 아픈 과거를 알고 어떻게 판단할지 생각하는 평화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 이곳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양은영씨)
평화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
평화도서관은 산을 평평하게 깎아내는 대신 비탈진 모양을 살려 지었다. 덕분에 층과 층 사이에 다락같은 여분의 공간이 생겼다. 층과 층 사이는 열린 구조로 탁 트여 있으며, 벽을 따라 비스듬히 자리한 책장에는 시대별 사건별로 평화 관련 도서들이 꽂혀 있다.
다락갤러리에는 ‘일본군 위안부’의 아픈 역사를 기록한 한지 공예가 황미영씨의 작품이 전시돼있다.
한 달에 한 번 여는 평품소극장은 도란도란 모여 평화 관련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기에 좋다.
문화마을을 준비할 때 초등학생이던 양은영씨의 아들 동렬씨는 스물한 살 군인아저씨가 됐다. 황수경씨의 아들은 디자인을 전공해 소식지를 만들고, 딸 소라씨는 유기농 천연발효 빵을 만들어 평화도서관 한켠에 둥지를 틀었다. 그야말로 숲 속 빵집이다.
“나중에 우리가 없을 때 아이들이 꾸려가거나 뜻있는 후배들이 이끌어 갔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개인 재산으로 소유하기보다 이 자리에 계속 남아 있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평화를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평화로운 세상이 올 때까지 오래오래 존재하기를 바라요.” (황수경씨)
위치 파주시 파평산로 389번길 42-19 (파평면 두포리 127-19)
문의 031-953-1625 http://www.nestofpeace.com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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