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없어 보이는 인문학자 움베르토 에코에게도 손 떨리고 진땀 흐르는 질문이 있었답니다. 책으로 가득한 자신의 집 현관에서 손님이 이렇게 묻는 거죠. “세상에…. 이 많은 책을 다 읽으셨어요?” 제 입장에선 이 질문이 그런 부류입니다. “여보세요. 학교죠? 거긴 어떤 학교인가요?”
어이쿠 이런…. “어…. 그냥 학교인데요.” 하자니 성의가 없고 “자세한 내용은 학교 블로그를 참조하십시오.” 하자니 ARS 응답기 같습니다. 그래서 대략의 컨셉을 들려준 다음 이렇게 되묻는 편입니다. “자녀분에 대해서 말씀을 주시면 구체적으로 도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최근에는 또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더군요. 어릴 적에 피아노 선생님께 이렇게 물었더니…. “선생님, 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악보에 있는 첫 마디 있지? 그걸 잘 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 그런 다음, 그 다음 마디를 잘 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하는 거지. 그 과정을 끝까지 하면 그 곡 전체를 잘 칠 수 있을 거야.”
아하, 그 분이 내린 결론은 한 마디 한 마디를 빼먹지 않고 연습하도록 숙제 검사를 통해 ‘쪼아주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접하고 조금은 서글퍼진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럼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학교에서, 또 그 이후에는 학원에서 하루 종일 숙제 검사를 받고 있는 거구나. 그럼 숙제는 언제 하지?’
가벼운 대화였고 이야기를 들려준 분의 진의는 다른 데 있었기 때문에 대화를 길게 이어가지는 않았지만, 제 생각은 꼬리를 물어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했던 이야기에 닿았습니다.
“물건을 ‘손’으로 만드는 사람은 일꾼이고, ‘손과 머리’로 만드는 사람은 장인이며, ‘손과 머리와 마음’으로 만드는 사람은 예술가다.”
몸이 좋은 아이가 있고, 머리가 좋은 아이가 있고, 마음이 좋은 아이가 있습니다. 몸을 잘 가르치는 선생님도 있고, 머리를 잘 가르치는 선생님도 있고, 마음을 잘 가르치는 선생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야기에 비추어, 그렇게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인 학교는 그 모든 것을 나누고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어야 합니다.
“거긴 어떤 학교인가요?” 언젠가 또 이런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대답해볼 작정입니다. “제 생각에 삶은 예술이고 학교는 그 예술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우리 학교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녀분은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만들고 싶어 할까요?”
강현석 우리들학교 대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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