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중학교(교장 오인수) 도서관에서 학부모 책모임 ‘책사랑한빛사랑’ 회원들을 만났다. 책사랑한빛사랑은 신기석 수석교사의 제안으로 2012년에 꾸려져 매주 2회씩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다. 주로 학교 도서관에서 모이지만 때로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시를 낭독하기도 하고, 책 속에 나오는 역사 유적지를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이들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삶에 깊이가 더해졌다”고 말했다. 책사랑한빛사랑은 올해에도 비문학과 문학을 넘나드는 독서를 하려고 한다. 도서 목록은 회원들 각자가 추천한 책들로 꾸릴 예정이다.
치맛바람 말고 책바람
부모들이 학교 활동에 참여한다고 하면 금방 떠오르는 단어는 ‘치맛바람’이다. 하지만 책사랑한빛사랑 회원들한테는 책에 대한 깊은 애정 뿐, 치맛바람의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큰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며 독서모임을 알게 됐어요. 신기석 선생님이 학부모들한테 초대편지를 보내주셔서 더 가깝게 느껴졌고요. 책 읽는 엄마들에게는 배울 점도 많고 좋은 사람들일 거라 생각해 참여했어요.”
김미숙 회원의 말이다. 그는 평소 베스트셀러 위주로 읽는 등 편식이 심한 편이었는데 책사랑한빛사랑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책을 접하게 됐다. 이를 두고 김미숙씨는 “하나의 반찬이 아닌 여러 명이 준비한 반찬을 먹으면서 영양이 풍성해진 것과 같다”고 말했다. 자녀교육은 덤으로 따라왔다. 그는 “아이가 저를 책 읽는 엄마, 항상 책을 손에 든 엄마로 자랑스러워하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책 읽는 엄마로서 교육하면 그 아이는 어긋나지는 않을 거라는 게 김미숙씨의 생각이다.
아이 앞에 당당한 엄마로
‘공부하라’는 말은 많이 하지만 ‘공부하는 모습’은 보여주기 힘든 것이 엄마들이다. 김지현씨는 “책모임에 참여하면 아이 앞에서 당당해지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지현씨도 원래 책을 좋아했다. 다만 마음먹고 읽기 힘들 뿐이었다.
“이렇게 책을 읽어 본 적이 없어요. 모임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기대하면서 얻어가는 것이 많아요.”
두 딸을 키우는 정현숙 씨도 책을 통해 자녀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찾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같은 책을 두 권씩 빌려서 함께 읽던 그였지만 중고생이 되면서 여유를 내지 못했다. “아이들이 중고생이 되니까 내 마음이 조급해서 책을 읽지 않고 아이들과 단절됐던 거죠.”
‘엄마랑은 말이 안 통해’라는 말에 자신이 퇴행하는 듯 답답함을 느꼈다는 정현숙 씨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읽고 펑펑 울면서 엄마가 아니라 독자로 자녀와 공감하는 경험을 했다. 주부이며 엄마라는 것을 내려놓고 자신에 대해 생각하면서 마음의 여유도 되찾았다.
굳이 학교까지 가서 책 읽는 이유
양수희 씨는 “책을 읽으려는 목적보다는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중학교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웃었다. 그는 “지금은 사람이 좋고 분위기가 좋아 오게 된다. 서로 배려하는 것인지 성적 얘기보다는 자식에 대한 하소연과 탄식을 듣다 보니 우리 애는 괜찮구나 위로받기도 한다”며 웃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다보니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기는 고민도 나눈다. 김소라 씨는 “뭔가 특수한 부모들만 모이는 게 아닐까, 우등생의 부모들만 모인 건 아닐까 고민했지만 치맛바람이 아닌 책을 읽고 공유하는 모임”이라고 말했다. 중3 자녀를 키우는 김소라 씨는 “지난해 아이의 중2를 지나면서 선배 어머니들에게 많이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공감하는 독서라야 진짜배기
박현정 씨도 “책 읽는 걸 좋아하지만 굳이 학교라는 어색한 자리에 갈 필요가 있을까. 의무감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돼 망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도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있으면 독서가 아니고 공감하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에 용기를 냈다. 평소 소설 위주로 읽던 그는 지금 “오기를 잘했다. 생각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각자의 사연을 나누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이혜경 씨도 “소감을 말하면서 눈물 흘리는 회원을 보면서 더 친근해진 느낌이 들었다. 순수하고 좋은 사람들 만나 차 마시고 얘기하는 것도 좋고 그런 기쁨이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 치유되는 모임”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는 사람들
조미경 씨는 자녀와 함께 독서모임에 참여한다. 신기석 수석교사가 주관하는 인문학아침독서에 자녀가 참여하면서 부모자녀 사이가 아닌 같은 스승의 제자들이라는 느낌이라고. 그는 “서술형 평가 설명회에 왔다가 신기석 선생님의 권유로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지금은 답안에 대한 욕심보다는 많이 읽는 게 중요한 시기라는 걸 알게 됐다. 아이들이 책 읽는 즐거움을 몸에 베어가는 것 같고 나이가 더 들면 꽃이 필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기석 수석교사는 “기대 밖의 어머니들”이라는 말로 책사랑한빛사랑을 평했다. 신 교사는 “노트 검사를 안 해서 그렇지 어머니들이 쓴 내용을 보면 그냥 읽는 게 아니라 열정들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읽었던 책 중 회원들의 공감이 컸던 책은 고 신영복 선생의 ‘담론’이었다. ‘더불어 숲’을 강조했던 선생의 말처럼 책사랑한빛사랑 회원들도 한빛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작은 숲을 하나 가꾸고 있었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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