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얼굴의 동네 주민이 DJ가 되고 어제도 들렀던 단골가게의 사장님이 초대 손님으로 참석해 이야깃거리를 풀어놓는다. ‘양천골짜기’는 ‘양천구 골목의 작은 이야기’를 줄인 말로 동네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라디오 방송이다. ‘양천골짜기’를 통해 소소한 골목길 소식을 전해온 네 남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동네주민들이 주인공, 감동과 웃음이 있는 삶의 이야기
‘양천골짜기’는 헬로TV 양천/은평방송 지역채널 3번에서 매주 금요일 저녁 6시에 방영되는 보이는 라디오방송이다. 마을기업인 ‘동네발전소 협동조합’의 미디어 프로젝트 ‘골짜기’와 지역 케이블방송인 CJ헬로비전이 협업해 만든 것으로 지역주민들이 DJ가 되는‘헬로TV 라디오스타 서울 FM’을 통해 지난 2월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신정동에서 소극장 ‘스페이스 내안’을 운영하고 있는 홍성헌 예술 감독이 동네 DJ를 맡았고 동네발전소 협동조합의 사무국장 김하석씨는 작가로 데뷔했다. 회사원이자 동네발전소 협동조합의 소장으로 일하는 방수준씨와 같은 회사 동료인 김동욱씨 또한 DJ로 활약하고 있다.
방송에는 양천구의 골목길 상인들과 시장사람들, 청년들, 교복 입은 청소년, 아이 키우는 주부, 프리랜서 강사, 동아리 사람들 등 두 살배기 반려견 쪼코까지 포함해 총 48명의 출연자가 참석했다. 유명연예인은 아니지만 나와 다르지 않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에 더 솔깃하고 더 깊이 공감하게 된다. 방송말미에는 ‘속풀이 송’이라고 해 참가자 누구나 노래를 불러야 끝이 난다. 노래를 잘하건 음치건 예외 없이 진행돼 무척 재미있단다.
방수준씨는 “출연자들이 처음에는 잠시 긴장하는 듯해도 곧 익숙하게 말씀하신다”며 “아무래도 DJ부터 흔히 볼 수 있는 이웃들이라 편안해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어디에도 없을 편안한 시간, 방송사고는 예기치 못한 즐거움
‘양천골짜기’는 48분 동안 편집 없이 진행된다. 이 시간을 위해 네 남자들은 섭외와 기획, 대본작성 등을 준비하며 성실히 각자의 역할을 맡았고 풍성한 내용과 전문가 못지않은 진행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편집이 없다보니 예측불허의 방송사고도 그대로 송출된다.
긴장 탓인지 저도 모르게 볼펜을 딱딱거리다가 오디오를 끈 적도 있단다. 다른 방송이라면 시말서를 쓰고도 남을 일이지만 양천골짜기의 방송은 이 또한 하나의 즐거움으로 여긴다. 홍성헌씨는 “웃음이 워낙 많은데 김하석 작가 때문에 웃음이 멈추질 않아 진행을 이어가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김동욱씨는 3년 정도 돌잔치 전문 MC로 일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떨리는 마음이야 똑같지만 출연자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신경을 쓰게 되지요.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방송한 것 같습니다.”
이웃들과 함께 성장해온 방송, 앞으로도 계속하고파
지난 2월부터 시작된 방송은 총 22회 차로 1월 6일에 방송되는 녹화방송을 마지막으로 올해를 마무리했다. 양천골짜기 사람들은 방송을 위해 쏟은 열정과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이웃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던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하석씨는 이 일을 시작하기 전 설렘과 기대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많았단다.
“방송 분야는 문외한이라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어요. 글을 쓰는 것보다 오히려 요리를 더 좋아하지요.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점점 몰입이 되면서 더 재미있고 알찬 소재를 발굴하기 위해 뛰어다니게 되더라고요.”
홍성헌씨는 “그동안 방송이라는 색다른 형태로 지역 활동을 할 수 있었다”며 “마을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연결시키는 일들이 보람된다. 방송을 이어가기 위한 모임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올해 마지막 방송을 마무리하면서 아쉬움이 크다고 말하는 이들은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 양천골짜기 시즌2를 위해 다시 머리를 맞댈 계획이다. 방송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을 주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들은 양천구 마을기업 동네발전소 협동조합으로 연락하면 된다.
동네발전소 협동조합 위치: 양천구 목동로 173 지하1층
문의: 방수준 소장 010-7151-5762
홍성헌 DJ(47세)
양천골짜기는 마을미디어라는 것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만 방송을 진행하다보니 좋은 방송에 대한 욕심도 많아졌습니다. 주민들을 출연시키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지역채널에도 감사하고 있어요. 마을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이런 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방수준 DJ(35세)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흥미로웠답니다. 워낙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방송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연습을 많이 하게 됐지요. 보이는 라디오라 제가 말할 때의 모습과 표정 등을 자연스럽게 살피게 되는데 미묘한 감정이 들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김동욱 DJ(28세)
늘 방송에 대한 꿈을 꿨었어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묻어두고 있었는데 양천골짜기를 통해 그 꿈에 한 발짝 다가간 것 같습니다. 제 안에 있던 열정과 끼를 이 시간을 통해 발산할 수 있게 됐지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는 방송이 아니지만 DJ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답니다. 언젠가는 ‘진짜’ 필드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김하석 작가(28세)
일을 시작하기 전 기존에 있던 라디오스타 서울FM 프로그램을 미리 훑어보고 PD가 준 샘플을 탐독하면서 기획과 멘트를 준비했어요. 시청자와 출연진 모두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었고 좋은 만남의 기회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 컸지요. 이런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선숙 리포터 choung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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