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Sophia) 중고등부 강사
두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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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자녀의 현실을 얼마나 아시나요?
안녕하세요? 과외부터 대형학원, 대치동과 비학군지, 전 학년 전 레벨, 입시개편의 역사를 겪어온, 여전한 정보 격차의 목격자로서 쓰는 글입니다. 훈계나 위로, 기승전광고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SNS와 마케팅이 보여주는 화려하고 편리한 가짜들을 분별하고, 힘들고 불편한 현실에 충실하며, 방법을 알려드리며 함께 애쓰고 싶습니다.
우선, 現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영어는 어느 수준일까요? 부모님 세대와 달라진 건 당연, 라떼(대치키드, 90년대생)와도 너무 다릅니다. 시험이 단지 어려운 걸 떠나 '해도 너무하다, 이게 합법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친숙한 우리말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타지역 고교 한국사 내신입니다. 배경지식 없어도 무관합니다. 문제에서 문제를 찾으셨나요? 네, (나),(가) 순서가 문제입니다. 계약서도 저렇게 쓰면 기망입니다. 다음은 인근 한 중학교의 최근 영어 내신입니다.
가장 쉬운 1번 문제, 아실만 한 영단어들로, 우리 아이들에게도 쉬운 문제입니다. 그런데, ② abroad(해외로) 영영풀이도 적절해 보이는데요? 잘 보세요. 쌩뚱맞은 'aboard(탑승한)'였습니다. 이런 문제는 꽤나 흔합니다. 심지어 ‘message’와 ‘massage’를 바꿔 쓰고 장문 독해 속 어법 문제로 내기도 합니다.
소위 ‘갓반고’라 칭하는 고등학교들은 내신이 수능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수능은 100% 객관식이죠. 빈칸 추론? 요약문 완성? 어렵지만 보기 중 1개를 고를 수 있어요. 하지만 내신엔 ‘모두’ 고르시오, 그리고 서술형 영작이 있죠. 빈칸 2, 3개 채우기면 다행이고 7, 8 단어면 큰일입니다. 요약문? 직접 써야 돼요. 한글 뜻 주면 다행이고 그나마도 안 줍니다. 다음은 인근 모 고등학교 문제입니다.
이 학교의 특이점인 '듣기평가'가 보이네요. 문제는 시험 범위가 따로 없다는 겁니다. 그냥 'CNN 전체'가 범위입니다. 준비할 방법이 없습니다. 시험 당일 듣고 풀어야 하고, 당연히 수능 듣기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게다가, 들은 내용으로 서술형도 써야 하죠. 문제 조건을 보시면 최대한 자세하게, 완전한 문장으로 쓰라고 합니다. 대치동에서도 저 수준에 도달하는 아이들은 몇 안됩니다.
범위가 많으니 학교에서 진도를 다 못 나갑니다. 1/3만 수업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합니다. 학원들도 다 못 다룹니다. 최근 인근의 모 고등학교 시험 범위가 200쪽, 시험지가 15쪽이었습니다. 가장 우수한 학생들조차 문제를 다 읽지도 못하고 시험 시간 50분이 끝나버리는 일이 생깁니다.
어떻게든 등급 가르고 동점자 방지해야하는 학교 교사분들의 고충도 이해합니다. Nevertheless! 그래도 이건 너무합니다. 아이들에게 공부할 의지와 계기를 제공하는 시험이 아니니까요.
최근 수능 문항입니다. 아시다시피 수능 영어는 절대평가로, 90점부터 1등급입니다. 이 절대평가 체제 아래 1등급 비율이 작년 수능 4%대, 올해 6%대였습니다. 작년 4%대는 '불수능+학력 저하'의 콜라보였으며, 이걸 한 번 당해본 N수생들이 영어에 힘을 많이 줘서 올해는 그나마 6%대가 나왔다-라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해가 갈수록 아이들 학력은 하락하고 양극화는 심화되지만, 시험은 쉬워지지 않습니다. 절대평가라고 영어를 만만하게 보면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그래도 비교적 편한 과목인 건 맞지 않냐고요? 우리 아이가 중등까지 '밑천'이 없다면 수능 1등급은커녕, 2등급의 문턱도 높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대부분 아이들은 이걸 고등 때 깨닫습니다. 학부모님들도 "수학도, 국어도 아니고 영어 때문에 대학에 못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십니다.
*수능 영어 1, 2등급의 장벽 (25 수능 응시 N수생이 35%)
수능 역사 전체를 볼 때, 영어 난이도는 계속 우상향해왔습니다. 킬러‘지문’을 없앤다 해도 킬러‘선지’로 변별을 주기에 더 지저분하고 힘듭니다. 수능의 내신화입니다. 렉사일지수(Lexile Score), 즉 아이들이 외워야 하는 단어 분량과 수준도 부모님 때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우리나라 교과과정 자체가 그렇습니다. 지금도 '중등'까지는 실제로 영어가 쉬워요. 렉사일 기준 최대, 한국의 중1은 미국의 G3, 한국의 중3은 미국의 G6 수준을 넘지 않습니다. 중등까지는 암만 어려워 봤자 미국 초등학교 수준인 거예요. 그러나 고등 영어에서 연계성이 급격히 사라지고 결국 한국의 고3은 미국의 12학년과 수준이 같아집니다.
*렉사일 지수 1200(영단어 12000개)이면 해리포터 원서로 읽기가 가능합니다.
우리나라 중학교 영어 교과서 본문 내용은 <일상, 음식, 문화, 환경, 직업, 스포츠> 정도니다. 중학생들에게도 쉬워요. 주제도 기껏해야 '친구와 잘 지내자', '가진 것에 감사해라' 정도입니다. 어느 날 고등학생이 되어버리고 갑자기 ‘뇌 가소성', '자아와 탈자아', '대뇌피질의 기제' 따위가 등장합니다. 단어와 문장, 그리고 소재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글 자체도 너무나 형이상학적, 추상적이며 복잡미묘해서 문장 해석이 다 되어도 아이들은 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글 해석본을 읽어도요. 저는 이걸 '수능식 문체'라 부르며, 중등 졸업 전 아이들을 이 소재와 문체에 적응시키는 데에만 6개월 이상, 유형별 적응에도 6개월 이상 잡습니다. 고등 가서 하면 된다고요?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한국말로도 어려운 글을 영어로 읽어야 하는 동시에, 학교 수행평가만 챙겨도 시간에 쫓기고 밤을 새우는 우리 k-고딩들입니다. 학습의 특성인 기초성, 적기성으로 인해 중등 시기까지 가능한 양적, 질적 학습은 고등 이후 사실상 거의 불가능합니다.
내 말귀도 못 알아듣는 우리 아이가 저런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을까? 싶으시죠.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능합니다. 자신감으로 되는 일은 아니고 준비가 필요합니다. 어렵고 긴 글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과 인내, 이걸 저는 제 아이들에게 '밑천'이라 표현합니다. 평범한 아이들, 평범 이하인 아이들, 절대 안 될 것으로 보였던 아이들도 종국에는 되더라고요. 일찍이 올바른 방식과 전략으로 준비했다면요. 즉, 중학교 때 ‘밑천’이 있는 아이들이요.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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