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정보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필요한 ‘느림의 사고력’

지역내일 2025-11-07


요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는 “◯◯문제 3초 풀이”, “대치동 어둠의 수학 스킬” 같은 제목의 짧은 수학 숏폼 콘텐츠가 넘쳐난다. 짧은 시간 안에 복잡한 문제를 단숨에 풀어내는 화려한 기술은 보는 사람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하지만 수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현상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풀이의 과정과 논리적 사고의 흐름은 생략된 채, 자극적인 ‘결과’만 소비되는 수학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의 학생들은 '읽고 이해하는 법'보다 '빠르게 정답 찾는 법'에 익숙해진다. 부작용은 여실히 드러난다. 문제의 문장을 끝까지 읽지 않거나 결정적인 조건을 놓친다. 예를 들어, ‘이차함수의 최솟값’이란 단어만 보고 ‘x값의 범위’라는 핵심 조건은 읽지 않은 채 반사적으로 표준형 변형을 시작한다. 학생은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문제의 뜻을 다시 읽어보자’고 말하면 오히려 답답해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이건 이 공식으로 푸는 문제야”라는 수많은 패턴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구조와 논리적 설계를 읽어내기보다, 눈에 익은 숫자나 표현을 통해 즉시 공식을 떠올리는 식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늘 비슷하다. 빠르지만 틀린 풀이, 또는 풀이 과정이 증발해버린 답안이다.

숏폼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빠름’에 있다. 빠르게 이해하고, 빠르게 소비하고, 빠르게 반응한다. 그러나 수학은 그 정반대편에 서 있는 학문이다. 수학은 느리게 읽고, 차근차근 논리를 쌓아 올려야 하는 과목이다. 수학의 문장은 극도로 함축적이다. ‘x가 y일 때 z를 구하라’는 간단한 문장에도 조건(x가 y)과 전제, 구해야 할 결론(z)이 촘촘히 들어 있다.


수학의 언어는 법률 조문과도 같아서, 단어 하나, 조사 하나의 차이가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모든 x’와 ‘어떤 x’는 다르며, ‘A이면 B이다’와 ‘B이면 A이다’는 완전히 다른 명제다. 이 논리적 정밀함을 이해하고 문장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수학의 첫걸음이지만, 숏폼의 속도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이 과정은 견디기 힘든 ‘지루함’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문제풀이 수업에서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보다 ‘문제를 어떻게 읽어나가야 하느냐’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풀이 기술은 반복 연습으로 익힐 수 있지만, 문제를 읽는 태도와 힘은 의식적인 훈련 없이는 절대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문제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게 하고, 조건과 결론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스스로 설명하게 한다.

“이 문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무엇일까?”, “출제자는 왜 하필 이 조건을 맨 앞에 썼을까?”, “만약 이 조건이 빠진다면 답이 어떻게 달라질까?”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처음엔 버벅거리던 아이들도 점차 문장의 구조를 의식하며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 과정을 통해 학생은 비로소 ‘수학적 사고의 흐름’을 체득하게 된다.

이런 수업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답답해하던 학생들이 어느 순간 ‘문제를 읽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쳐다보기도 싫었던 긴 서술형 문제가, 이제는 단서를 하나씩 찾아 해결하는 ‘논리 퍼즐’처럼 보이는 것이다. 문제의 맥락을 읽는 힘이 길러지면, 학생들은 단순한 계산 실수를 넘어 “아, 이 조건 때문에 함정에 빠졌구나”라며 스스로의 논리적 오류를 잡아내기도 한다. 그때 비로소 수학은 지겨운 암기가 아니라 명쾌한 ‘사고의 언어’가 된다.

문제의 맥락을 읽는 훈련은 수학 성적 향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긴 글의 핵심을 파악하고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는 힘은 모든 학문의 바탕이 되며, 국어 비문학 지문을 독파하는 힘이나 과학 탐구 실험의 변인을 해석하는 힘과도 다르지 않다.


짧은 영상에 익숙한 시대일수록, 깊은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훈련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정답을 빠르게 맞히는 ‘스킬’이 아니라, 한 문장을 통해 의미를 구성하고 논리를 완성하는 ‘힘’이다. 학습의 본질은 여전히 ‘깊이’에 있으며, 수학 교육은 그 깊이를 함께 탐색하는 일이다.

숏폼 세대의 수학 교육은 결국 ‘속도’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빠르게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통해 사고의 흐름을 복원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교실에서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진정한 맥락이다.

김재호 

칼수학학원 고등부 대표강사

수학교육과 전공

전) 깊은생각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