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스카이 기고] '서울대 의대 면접이 어려운 이유' 시리즈
②질문이 없다. 그리고 추가 제시문이 있다
[연재순서]
1편. 5개방, 60분, 다른 의대와 무엇이 다른가
3편. 소재가 광범위한 이유
4편. 학생부를 해체한다
5편. 언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의대 면접은 정답을 채점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과정을 평가합니다. 서울대 의대는 그 원칙을 가장 깊은 수준에서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순간, 서울대 의대 면접의 가장 낯선 구조가 왜 그렇게 설계되었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질문이 없는 것이 질문이다
의대 면접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처음 서울대 의대 관련 제시문을 받았을 때 가장 난처해 합니다.
질문은 없고 제시문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질문을 빠뜨린 것이 아닙니다. 질문을 주지 않는 것 자체가 가장 깊은 질문입니다. 서울대 의대는 제시문 하나 안에 이미 모든 질문을 내포시켜 놓았습니다.
이 제시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이 제시문에서 논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이 문제가 강화되거나 약화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가. 해결책은 무엇인가. 나의 경험과 가치관은 어떤가. 이 모든 것이 질문 없는 제시문 하나 안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면접관은 학생이 스스로 이것들을 찾아낼 수 있는지를 봅니다.
방향이 있는 면접과 방향을 만드는 면접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의대 면접과 비교해보겠습니다. 다른 의대 면접이 쉽다는 것이 아닙니다. 구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2026학년도 연세대 의대 수시 면접에서 다음과 같은 제시문과 질문이 출제되었습니다.
제시문은 세 개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가]는 내성적인 아이가 어머니의 조언으로 친구들과 잘 지내는 척 행동하면서 실제 우정을 얻게 된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나]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바탕으로 성공과 실패가 별도의 사건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통칭하는 것일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다]는 자기계발 지침서가 넘치는 오늘날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를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질문이 제시됩니다.
"친구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선택을 힘들어한다. 제시문 [가]와 [나]를 바탕으로 어떤 조언을 할 것인지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시오."
"위에서 당신이 친구에게 준 조언을 제시문 [다]의 상황을 바탕으로 변경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시오.“
이 구조를 보면
제시문 [가]와 [나]가 조언의 근거를 제공하고 [다]가 그 조언을 흔드는 반론을 제공합니다. 질문 1번에서 어떤 제시문을 활용해야 하는지 방향이 명시됩니다. 질문 2번에서 추가적인 관점을 어떻게 통합할지 방향이 제시됩니다. 학생이 생각해야 할 구조가 이미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쉽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안에서 깊이 있게 사고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고, 제시되지 않은 추가질문도 있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다만 방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대는 그 방향 자체를 학생이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두 면접의 구조적 차이입니다.
자연계 학생들이 특히 어려워하는 이유
서울대 의대를 지원하는 학생들은 전국 최상위권 이과생입니다. 수학과 과학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정답이 있는 문제를 푸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평생 방향이 주어진 문제를 풀어왔다는 것입니다. 수학 문제에는 풀어야 할 것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과학 문제에는 구해야 할 값이 있습니다. 심지어 국어나 사회 문제에도 무엇을 분석하고 무엇을 논해야 하는지가 제시됩니다.
그런데 서울대 의대 제시문은 아무것도 주지 않습니다.
이때 많은 학생들이 두 가지 극단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는 즉문즉답입니다. 정답을 빠르게 내야 한다는 강박이 면접에서도 작동합니다.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일단 말부터 내뱉습니다. 그러면 첫 번째 답변이 얕아지고 이후 면접이 깊어지는 순간 막히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침묵입니다. 모르는 문제는 넘어가면 된다는 습관이 면접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런데 면접에서 침묵은 공란이 아닙니다. 사고 과정 자체를 보여주지 못하는 가장 아쉬운 선택입니다.
사실 이 두 반응 사이에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 있습니다. "잠깐 생각해보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또는 "제 생각이 부족할 수 있지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이것을 하지 못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면접을 시험처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시험에서 "모르겠습니다"는 감점입니다. 그런데 면접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는 오히려 사고의 깊이를 보여주는 기회입니다. 서울대 의대가 선발하는 것은 완성된 의사가 아니라 배울 준비가 된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가죽나무 제시문 — 합격생 후기를 바탕으로
2026학년도 서울대 의대 면접에서 다음과 같은 제시문이 출제되었습니다.
다음은 두 사람의 대화이다.
[사람1] "내게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죽나무라 부른다네. 큰 줄기는 울퉁불퉁해서 직선을 그리는 도구로 사용할 수 없고, 작은 가지는 꼬이고 구부러져 있어 원이나 네모꼴을 그리는 도구로 사용할 수 없다네. 그래서 길가에 서 있지만 목수가 거들떠보지도 않지. 자네가 가진 말도 크기만 하고 쓸 곳이 없으니, 사람들이 하나같이 외면하는 것이라네.“
[사람2] "자네는 고양이나 족제비를 보지 못했는가? 매우 민첩해서 높은 곳, 낮은 곳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다가 덫이나 그물에 걸려 죽을 때가 많지. 반면에 크고 검은 소를 떠올려보게. 그 덩치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도 같지. 비록 쥐를 잡지는 못하지만,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네. 지금 자네는 이처럼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쓸모가 없다고 고민하는데, 어째서 아무도 없는 광활한 들판에다 심어두고 유유자적하게 그 곁을 노닐다가 드러누워 잠을 자거나 하지는 않는가? 그 나무는 쓸모는 없지만 도끼에 찍힐 일도 없으니 무슨 괴로움이 있겠는가?“
질문은 없습니다.
이 제시문을 받은 학생은 2분 안에 스스로 이 안에 내포된 모든 질문을 찾아야 합니다.
이 제시문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쓸모없음의 역설인가, 효율성 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인가, 아니면 쓸모라는 기준 자체에 대한 의문인가. 이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쓸모의 기준이 강화되면 어떤 사회가 되는가. 해결책은 무엇인가. 나 자신은 이것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모든 것을 2분 안에 혼자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의과대학 면접에서 장자의 고전 텍스트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많은 학생들을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의학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이 이야기가 왜 의대 면접에 나왔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논점 자체를 놓치게 됩니다.
추가 제시문이 등장하는 순간
학생이 자신의 해석과 입장을 말하고 나면 면접관은 추가 제시문을 제시합니다.
아래는 소도에 제공한 서울대 의대 합격생 후기를 바탕으로 하며,
실제 대학에서 공개하지 않은 내용이므로 후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가죽나무 제시문의 추가 제시문으로는 도구적 가치와 내재적 가치에 관한 내용이 제시되었습니다.)
도덕철학에서 도구적 가치와 내재적 가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을 구분하는 개념입니다. 어떤 사물이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도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간주됩니다. 반면 내재적 가치는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망치나 세탁기와 같은 도구나 가전제품은 각각 못을 박거나 옷을 세탁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도구적 가치를 지닙니다. 행복과 쾌락은 일반적으로 내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누군가가 왜 그것들을 원하는지 묻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추가 제시문이 등장하는 순간 면접의 판도가 완전히 바뀝니다.
가죽나무 제시문을 "쓸모없어 보여도 나름의 역할이 있다"는 방향, 즉 도구적 가치의 관점에서만 해석한 학생에게 이 추가 제시문은 자신의 첫 번째 해석이 제시문의 깊이를 건드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가죽나무의 핵심은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쓸모라는 기준 자체가 절대적인가"를 묻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처음부터 "쓸모라는 기준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읽은 학생에게 추가 제시문은 자신의 해석을 철학적으로 확장해주는 도구가 됩니다. 도구적 가치와 내재적 가치라는 개념을 통해 가죽나무의 논점을 더 정교하게 전개할 수 있게 됩니다.
같은 추가 제시문이지만 첫 번째 해석의 방향에 따라 한 학생에게는 함정이 되고, 다른 학생에게는 도약의 발판이 됩니다.
그리고 면접관은 추가 제시문 이후에도 탐침 질문을 이어갑니다. 합격생 후기에 따르면 이 면접에서 나온 질문들은 이런 방향이었습니다.
"제시문의 주제를 말해보세요."
"이렇게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대상에 대해 알고 있다면 말해보세요."
"제시문의 나무처럼 쓸모없어 보였는데 알고 보니 쓸모 있었던 경험이 있다면 말해보세요."
"이렇게 쓸모에 따라서 판단하는 세상의 장단점에 대해 말해보세요."
"추가 제시문처럼 내재적 가치가 높고 도구적 가치가 낮은 대상과, 내재적 가치가 낮고 도구적 가치가 높은 대상의 사례를 들어 말해보세요."
"본인의 내재적 가치를 인지한 적이 있는지 말해보세요."
마지막 질문을 보십시오.
"본인의 내재적 가치를 인지한 적이 있는지 말해보세요."
이 질문은 결국 학생 자신에게로 향합니다. 평생 성적과 스펙이라는 도구적 가치로 자신을 증명해온 학생에게, 쓸모와 무관하게 자기 자신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수능 만점에 가까운 학생이 이 질문 앞에서 처음으로 말문이 막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고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답이다
추가 제시문 앞에서 많은 학생들이 두 가지 잘못된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첫 번째 입장을 무조건 고수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추가 제시문이 나오자마자 첫 번째 입장을 완전히 포기해버리는 것입니다. 둘 다 좋지 않습니다.
면접관이 보고 싶은 것은 새로운 관점 앞에서 자신의 사고가 어떻게 정교화되고 확장되는가 입니다. 자신이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었을 때 그것을 자신의 사고 안에 통합하려는 시도 자체가 평가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의사의 실제 임상 현장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의사는 처음 판단을 내린 후 새로운 검사 결과나 추가 정보가 나올 때마다 그 판단을 수정하거나 강화하거나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추가 제시문 앞에서 유연하게 사고를 이어가는 능력, 그것이 서울대 의대가 이 구조를 통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의대 면접은 정답을 채점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과정을 평가합니다. 그런 면에서 서울대 의대는 그 원칙을 가장 깊은 수준에서 구현하고 있습니다.
‘질문이 없는 것이 질문이다’ ‘추가 제시문이 내 판단, 주장, 사고를 흔들 수 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글쓴이: 박정진 소도스카이 대표원장
『의대 면접 기출 해제집』
『의대 합격 소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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