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스카이 기고] '서울대 의대 면접이 어려운 이유' 시리즈

③소재가 광범위한 이유

[연재순서]
1편. 5개방, 60분, 다른 의대와 무엇이 다른가
2편. 질문이 없다. 그리고 추가 제시문이 있다
4편. 학생부를 해체한다
5편. 언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지역내일 2026-09-22

서울대 의대 면접 최근 3년의 기출 제시문을 처음 본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의대 면접 문제가 맞나요?"


장자의 고전 텍스트, 인도네시아 부족의 장례 문화, 나폴레옹 시대의 기록화, 층간소음 분쟁, 금붕어가 든 믹서기 예술 작품. 의학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소재들이 의과대학 면접장에 등장합니다. 왜 이런 소재들이 사용되는 것일까요.


소재가 광범위한 것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다


많은 학생들이 이 질문을 가집니다. "다양한 분야의 배경지식을 공부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도 필요하지만 이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서울대 의대가 소재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것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테스트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측정하고자 하는 역량의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소재도 자연스럽게 광범위해지는 것입니다.


서울대 의대 면접이 4개의 제시문 방을 통해 측정하고자 하는 역량은 이것입니다.


분석능력, 추론능력, 비판적 사고능력, 공감능력, 의사소통능력, 인문사회적 소양.


이 역량들은 하나의 소재로 모두 측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4개의 방이 각각 다른 소재를 통해 각각 다른 역량을 측정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소재가 광범위한 것은 이 설계의 결과입니다.

 

어떤 소재가 어떤 역량을 측정하는가


사례를 들기위해 서울대 의대 면접 기출을 기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동전 던지기와 문학 배지 승객 제시문이 있었습니다. 동전 앞면이 10번 연속으로 나오자 "이제는 뒷면이 나올 차례"라고 말하는 친구, 두꺼운 고전 문학책을 읽는 승객을 보고 "100% 문학 전공자"라고 단정하는 장면입니다. 이 제시문은 인간의 인지편향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측정하는 것은 비판적 사고능력입니다. 주어진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정보의 한계와 오류를 인식할 수 있는가를 봅니다.


금연 보상 연구 제시문이 있었습니다. 금연 보조제만 제공한 그룹, 성공 시 80만원을 지급한 그룹, 15만원을 예치하고 성공 시 돌려받는 그룹의 금연 성공률을 비교한 연구 데이터입니다. 이것을 통해 측정하는 것은 분석능력과 추론능력입니다. 데이터를 정확하게 읽고, 그 안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고, 이것이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추론할 수 있는가를 봅니다.


사과법(Apology Law) 제시문이 있었습니다. 사과가 법적 과실 인정으로 간주되어 소송에서 불리하게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된 법입니다. 이것을 통해 측정하는 것은 가치 판단 능력과 의사소통능력입니다. 법과 윤리, 개인의 감정과 사회적 제도 사이의 긴장을 인식하고 자신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가를 봅니다.


인도네시아 부족 장례 문화 제시문이 있었습니다. 시신을 방부 처리하여 집에 보관하고 산 사람처럼 대하며 생활하는 문화, 물소 희생 의식, 나무에 어린아이를 묻는 풍습입니다. 이것을 통해 측정하는 것은 공감능력과 인문사회적 소양입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문화를 판단하지 않고, 그 문화가 가진 고유한 가치와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가를 봅니다.


이렇게 보면 소재가 왜 광범위한지가 선명해집니다. 각 소재는 특정 역량을 측정하기 위해 선택된 것입니다. 소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소재를 통해 무엇을 볼 것인가가 먼저 설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의학은 과학이지만, 의료는 과학과 인문사회적 문제가 항상 함께 작동하는 현장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왜 의과대학 면접에서 인문사회적 소양을 이토록 중요하게 보는 것일까요.


의학은 과학입니다. 해부학, 생리학, 약리학, 술기. 이것들은 과학적 사고와 훈련으로 익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의사가 되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의료는 다릅니다. 의료는 그 과학이 실제 사람과 사회 안에서 작동하는 순간, 인문사회적 문제와 분리될 수 없게 됩니다. 진단은 과학이지만 그 진단을 환자에게 어떻게 전달하는가는 인문사회적 문제입니다. 치료는 과학이지만 누구에게 먼저 치료를 제공하는가는 인문사회적 문제입니다. 수술은 과학이지만 수술 동의를 받는 과정은 인문사회적 문제입니다. 과학과 인문사회적 문제가 항상 함께 작동하는 것, 그것이 의료의 본질입니다.


의사가 실제로 마주하는 인문사회적 문제의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넓습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환자와의 관계입니다.환자가 치료를 거부할 때 그것이 자율성의 문제인가, 정보 부족의 문제인가, 문화적 배경의 문제인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환자의 종교적 신념이 치료 방향과 충돌할 때, 가족의 의견이 환자의 의사와 다를 때, 말기 환자에게 얼마나 어떻게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가. 이 모든 것은 의학 지식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합니다.


집단 차원에서는 동료와의 관계입니다. 의료팀 안에서의 의사소통, 동료 의사의 실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직업윤리와 조직문화 사이의 충돌. 이것들은 과학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제도 차원에서는 의료보험과 의료행정의 문제입니다.한정된 의료 자원 안에서 누구에게 먼저 치료를 제공할 것인가, 의료보험 체계 안에서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과 비용 사이의 충돌, 의료 자원 배분의 윤리적 문제. 이것들은 가치 판단과 사회적 합의의 영역입니다.


국가 차원에서는 보건 행정, 예방의학, 공중보건 정책의 문제입니다.감염병이 확산될 때 개인의 자유와 공중보건 사이의 균형, 예방의학에 국가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의료 취약 지역에 대한 정책적 접근. 이것들은 의학 지식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합니다.


이 네 가지 차원의 문제들은 과학적 사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인문사회적 소양이 있어야 이 문제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하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의대 면접에서 사과법, 인도네시아 장례 문화, 층간소음 분쟁, 금연 보상 연구 같은 소재가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맥락에서입니다. 이 소재들은 의료 현장에서 의사가 마주하게 될 인문사회적 문제들의 축소판입니다.

 

이과 학생들이 실제로 어려워하는 다섯 가지


많은 학생들이 분석능력, 추론능력, 비판적 사고능력은 수학과 과학에서 이미 충분히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공감능력과 인문사회적 소양은 면접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면접에서는 이 모든 역량이 예상보다 훨씬 부족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 번째는 오독의 문제입니다. 인문사회 제시문의 핵심 논점을 잘못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학 문제처럼 표면에 드러난 것을 그대로 읽으려 하기 때문에, 제시문이 실제로 말하려는 더 깊은 논점을 놓칩니다. 2편에서 언급했던 가죽나무 제시문을 "쓸모없어 보여도 나름의 역할이 있다"로 읽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표면은 읽었지만 핵심은 놓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추론의 폭이 좁은 문제입니다. 제시문을 어느 정도 이해했더라도 추론의 방향이 한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학적 관점이나 자신이 익숙한 분야로만 추론하고, 사회적·철학적·역사적·문화적 방향으로의 확장이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금연 보상 연구 제시문을 보고 "금전적 보상이 효과적이다"는 결론에서 멈추는 것이 이 경우입니다. 이것이 왜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또는 금전적 보상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은 무엇인지까지 추론이 이어지지 못합니다.


세 번째는 비판적 사고가 한쪽으로 치우치는 문제입니다. 비판적 사고는 어떤 주장의 장점과 단점을 균형 있게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한쪽 의견에 치우친 채 그것을 정답으로 확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과법 제시문을 보고 "사과법은 좋다" 또는 "사과법은 나쁘다"는 단일한 결론으로 향하는 것이 이 경우입니다. 제도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인식하고, 그 사이에서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리는 것이 요구되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네 번째는 공감능력의 문제입니다.다른 문화, 다른 가치관,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도네시아 장례 문화 제시문 앞에서 많은 이과 학생들이 처음 보이는 반응이 있습니다. "이 문화는 비위생적이다", "이 관습은 비합리적이다"라는 방향으로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과학적·의학적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제시문이 측정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다른 문화를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고, 그 문화 안에서 어떤 의미가 작동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가를 봅니다. 이것은 의료 현장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환자를 만날 때 그대로 요구되는 능력입니다.


다섯 번째는 인문사회적 소양 자체가 부족한 문제입니다. 철학, 역사, 문화, 사회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으면 제시문의 맥락 자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평생 수학과 과학에 집중해온 이과 학생들에게 이 소양이 부족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소양을 서울대 의대 면접이 측정하고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 문제는 수학과 과학에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면접장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마주합니다. 1편에서 언급한 합격생들의 말, "내가 이렇게 부족한 사람인지 처음 알았습니다"는 바로 이 순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배경지식이 있으면 사고가 확장된다


소재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배경지식이 있으면 제시문의 논점을 더 빠르게 잡을 수 있고,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와 해결책을 더 넓고 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특정 소재를 암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다양한 인문사회적 소재와 배경지식을 꾸준히 접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사고 안에서 소화하는 훈련이 쌓일 때, 낯선 제시문 앞에서도 사고가 자연스럽게 확장됩니다. 어떻게 배경지식을 쌓고 활용하는지는 5편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겠습니다.

 

소재가 광범위한 것이 말하는 것


결국 서울대 의대 면접의 광범위한 소재가 말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어떤 소재가 와도 그것을 통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리고 그 생각이 인문사회적 문제 앞에서도 유연하게 작동하는 사람인가.


의학은 과학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료 현장은 과학과 인문사회적 문제가 항상 함께 작동하는 현장입니다. 환자와의 관계, 동료와의 갈등, 제도와의 충돌, 국가 보건 정책과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문제들은 과학적 사고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문제들을 이해하고 판단하고 해결하는 능력의 기반이 인문사회적 소양입니다. 


이것은 비단 서울대 의대 뿐만아니라 전국의대에서 면접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의대 면접의 광범위한 소재는 바로 이 소양을 측정하기 위한 설계입니다. 특정 소재를 알고 모르고가 아니라, 낯선 소재 앞에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이 서울대 의대가 광범위한 소재를 통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글쓴이: 박정진 소도스카이 대표원장

『의대 면접 기출 해제집』 

『의대 합격 소스』 저자


문의 02-6053-3131

소도스카이 홈페이지


*이 글은 소도커뮤니케이션즈가 직접 작성한 1차 콘텐츠입니다.

*해당 대학 기출 외 어떠한 외부 자료도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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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5개방, 60분, 다른 의대와 무엇이 다른가

2편 질문이 없다. 그리고 추가 제시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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