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사람들> 학교폭력예방 프로그램 ‘갈등 뽀개기’ 기획한 아트인제이 교육연구소 황정인 대표
“상황극·모의재판으로 타인의 입장 이해하고 갈등 해결법 배워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조차 철 지난 구호처럼 들리는 시대다. 경제적 안정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는 없다. 문제는 공부를 위한 시스템은 촘촘해졌지만, 그 안에서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갈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배울 기회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선을 넘은 학교폭력에는 단호한 대응이 필요할 테지만 갈등이 폭력으로 번지기 전, 아이들 스스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아보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마주할 법한 갈등을 상황극으로 재연하고 모의재판까지 열어보는 학교 폭력 예방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아트인제이 교육연구소 황정인 대표가 기획한 ‘갈등 뽀개기’다. ‘밝은 학교문화 만들기’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고양특례시와 파주시 관내 학교 및 청소년 관련 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육디렉터 황정인 대표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태정은 리포터 hoanhoan21@naver.com

“아이들이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해요”
고양·파주 지역에서 교육디렉터로서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황정인 대표가 ‘관계와 갈등’에 주목하게 된 것은 2025년 사회성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부터다. 많은 청소년을 만나며 아이들이 의외로 자신의 감정을 잘 알지 못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에도 서툴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사회 정서’에 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실제와 비슷한 사건 속으로 들어가 직접 판단하고 해결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기획된 학교 폭력 예방 프로그램이 ‘갈등 뽀개기’다. 이 수업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 타인을 바라보고, 실제 갈등 상황을 경험한 뒤 해결 방법을 찾는 4차시 과정으로 구성된다.
“감정과 다름을 통해 나와 너를 알아가다”
1차시 ‘자기 인식’ 수업에서는 자신의 선호와 취향, 감정을 들여다본다.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과 짬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 서로의 취향은 그저 ‘다를 수 있다’는 사실부터 확인한다. 지금 내 기분은 어떤지, 자주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며 ‘감정의 주인’이 되는 연습을 해본다.
2차시 ‘나도 너도, 인아웃(IN-OUT)’ 수업에서는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찾아본다. 상황에 따라 강점이 약점이 되고 약점도 강점이 될 수 있음을 알아보며 사고를 전환하는 연습을 한다. 친구들이 서로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는 ‘라이크 샤워’도 진행한다. 황 대표는 “학생들이 서로 칭찬을 주고받으면서 같은 모습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걸 경험한다”며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 역시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방법임을 깨닫게 된다”고 설명했다.
상황극·모의재판으로 갈등 속 여러 입장 경험해보기
3차시 수업은 ‘갈등 뽀개기’의 핵심이다. 황 대표는 청소년들이 자주 겪는 ‘사이버 왕따’와 ‘와이파이 셔틀’을 소재로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한 학급 학생들을 4개 조로 나누고 모든 학생이 상황극이나 모의재판에서 각자 하나씩 역할을 맡는다. 연기를 잘할 필요는 없다. 대본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단, 황 대표는 학생들에게 이것만은 꼭 주문한다. ‘그 상황에 처한 사람의 표정을 지어보기’다.
상황극과 모의재판이 끝나면 학생들은 모두 배심원이 된다. ‘피해자’와 ‘직접 가해자’뿐 아니라 ‘동조자’, ‘방관자’, ‘중립·외면’ 등 각 역할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책임투표판’에 자신의 판단을 표시한다. 이어 사과와 대화, 반성문, 학급 규칙 만들기, 관계 회복 활동, 처벌 등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지도 함께 이야기해 본다. 누가 나쁜 사람인지 찾아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갈등 속에 여러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관계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활동이다.
간접 경험은 이해 확장으로 이어져
마지막 4차시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해결왕’이 된다. 학급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함께 찾아보고, 개인별로 ‘욕구카드’와 ‘실천약속카드’를 만든다.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한 뒤 이를 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지 구체화한다. 완성된 카드는 학급 게시판에 붙여 학생들이 자주 들여다보도록 한다.
갈등 뽀개기 활동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도 흥미롭다. “직접 괴롭히지 않아도 방관하거나 동조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남의 입장이 돼보니 이해가 되는 점이 있었다”,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시간이었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그런가 하면 “연극이 이렇게 쉽고 재미있는지 몰랐다”, “친구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아서 기분 좋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갈등 뽀개기’, 더 넓고 지속적인 교육으로
학생들의 진솔한 반응을 접한 황정인 대표는 ‘갈등 뽀개기’ 프로그램을 앞으로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하나는 ‘갈등 뽀개기 2탄’으로 2차시 정도의 사후 관리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것이다. 일정 기간 후 자신과 학급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돌아보고 실제 학급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찾아 학생들 스스로 해결책을 만들어보는 과정이다. 다른 하나는 교육의 대상을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청소년기에는 친구끼리의 갈등도 있지만,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갈등은 관계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생기기 마련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갈등 없는 교실이 아니라, 갈등을 마주했을 때 상대의 입장에도 서보고 함께 해결할 줄 아는 교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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