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반대로 돌봄을 받아야 할 학생이 마을을 돌보는 데 앞장서고 있다면? 영일고등학교(교장 오흥구, 이하 영일고) 1~2학년 120명의 학생은 홀몸 어르신들의 점심을 배달하고 있다. 도시락 비용도 배달하는 학생이 부담한다. ‘남는 것을 덜어서 모자란 곳을 채우면 평화로워진다’는 뜻의 읍피주자천강백상(挹彼注玆天降百祥)을 줄인 읍주백상(挹注百祥)을 실천하며 나눔의 소중함을 배워가고 있는 현장을 소개한다.
5년 전부터 시작, 봉사로 얻는 것은
영일고 도시락배달 봉사 활동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무부장이었던 박성호 선생님의 제안으로 마을에 관심을 갖고 도와주고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점심시간을 이용해 홀몸 어르신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봉사활동을 생각해냈다.
우선, 학교 주변에서 제일 가까운 등촌2동과 목3동 주민센터에서 어르신 12명을 추천받았다. 도시락 비용은 봉사하는 학생이 부담하기로 했다. 메뉴는 학생들이 먹는 급식과 같은 것으로 급식실 조리원의 도움을 받아 도시락을 쌌다.
점심시간 안에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매일 24명의 학생은 급식을 빨리 먹고 도시락을 들고 교문을 나선다. 찬바람을 가르고 열심히 달려갔지만, 어르신이 집을 비우기라도 하면 ‘괜한 짓을 하나’ 생각이 들어도 깨끗하게 빈 도시락을 보며 가벼운 마음으로 되돌아온다.
배달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 급식이 있는 날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빠짐없이 진행된다. 학교가 끝나지 않은 점심시간, 교문을 열고 더구나 남학생을 매일 내보낸다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다. 모범생이라 하더라도 한 번쯤은 일탈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학교의 결단 있는 선택으로 학생들은 나눔과 봉사를 배울 기회가 생겼다. 급식이 없는 방학 때는 학생들 따로 집에서 도시락을 마련해 배달할 만큼 이 봉사활동은 나눔을 실천하는 장이 됐다.
5년 동안 에피소드도 많다. 단축 수업을 마치고 급식만 먹고 귀가하다 도시락 배달이 생각나 급하게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기다리고 있는 어르신이 있다는 것을 심어주기 위해 담당 선생님이 사비를 들여 배달을 시키기도 했다. 때론 어르신이 입원하거나 돌아가셔서 다른 분을 추천해주면 삶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하고, 형편이 좋지 못한 어르신들을 보면서 사회복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는 학생도 생겼다, 벽에 금이 가서 물이 새는 것을 보고 동사무소에 연락에 조치를 취하기도 했지만 결국 벽지 닦는 것 외에 다른 대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연말, 김장에 이은 재롱잔치까지
어르신과 매주 만나다 보니 정이 새록새록 들었다. 손잡고 이야기도 나누고 안마도 해드리고 마치 손자가 된 것 같아 불편한 것은 없는지 살피게 된다. 도시락 배달을 하는 학생들은 홀몸 어르신들을 도울 길이 없을까 여러 가지 방안도 제시했다. 지역 예산도 사업을 통해 받고 귀가 잘 안 들리는 할머니를 위해 보청기 마련을 위한 모금마련 행사도 학교 축제 때 열었다.
연말에는 텃밭에서 재배한 무와 배추를 재료로 학교 급식실에서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이 참가해 김장을 하고 어르신들을 초청해 점심 대접과 재롱잔치를 선보였다. 담근 김치는 어르신 가정으로 배달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도시락배달을 맡고 있는 문병모 부장교사는 “봉사점수를 받고 대학 진학에 혹 유리할까 하는 생각에 출발하지만 봉사를 하면서 학생들이 변화되는 것을 자주 본다”며 “도시락 배달은 봉사의 힘도 알고 인간으로 변화되는 과정”이라 덧붙였다.
미니 인터뷰
정한미르 학생(2학년)“계속해서 봉사활동 이어가길 바래요”
중학교 때 요양원 봉사로 진로와 상관없이 홀몸 어르신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마을 연계 프로젝트로 주말에 홀몸 어르신들에게 반찬과 다과를 갖다 드리는 활동도 기획했습니다. 저에게는 작은 일인데 할머니가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며, 도시락이 아니라 누군가 찾아오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학교에서 이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창희 학생(2학년)
“소외 계층 복지에 관심 갖게 됐어요”
비록 봉사 시간이 인정되지 않는다 해도 어르신이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책임감이 더 생겨납니다. 도시락 비를 내고 전달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봉사에서 좀 더 능동적으로 홀몸 어르신들을 돕고자 학교 축제 때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를 위해 보청기 마련을 위한 모금 활동도 진행하면서 장애인 복지시스템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나눔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김현우 학생(1학년)
“좋아하는 급식 나오면 할머니 반응 설레요”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 메뉴 그대로 도시락을 싸 가는데 내가 좋아하는 급식이 나왔을 때 급식을 먹으면서 할머니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설레기도 합니다. 복지관에서 치매어르신 돕기 봉사활동을 하면서 어르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독거노인 실태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도시락 배달 봉사 활동으로 나눔과 배려에 대해 배워가는 중입니다.
김규빈 학생(1학생)
“도시락 다 비우셨을 때 기분 좋아요”
도시락을 갖다 드리면서 할머니가 맛있게 드셨는지 확인합니다. 도시락이 깨끗하게 비어 있으면 ‘맛있게 드셨구나’ 생각하고 힘들게 걸어가서 배달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거 같아요. 학생이지만 지역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보람돼요. 소외된 사람을 보살필 수 있는 마음 따뜻한 검사가 되고 싶은데 이 길이 봉사로 성장하는 첫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