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떠난 독일 여행

도시마다 역사와 스토리가 풍성한 독일

박혜준 리포터 2018-12-20

미뤄둔 휴가를 겨울에 다녀왔다. 추운 겨울이다 보니 여행지 선택이 쉽지 않았는데, 이왕이면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가보자 싶었다. 그래서 각 도시마다 특색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는 독일로 떠났다. 도시마다 역사와 스토리가 풍부한 독일, 그래서 마치 각각 다른 나라들을 보고 온 것 같은 기분이다.



베를린, 과거와 현재의 묘한 어울림
‘베를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분단의 역사이다. 1990년 독일 통일 전까지 베를린 장벽을 두고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었던 베를린. 이제 유일한 분단국가의 국민으로서 그들의 통일과정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꼭 방문하고 싶은 도시였다. 베를린 분단의 흔적이 남아있는 Wall Memorial와 Brandenburger Tor, Checkpoint Charlie, 동독의 문화와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DDR 박물관, 장벽 붕괴의 생동감을 느껴볼 수 있는 East Side Gallery 등을 둘러보면서 아이들과 함께 독일의 통일과정에 대해, 그리고 우리나라의 통일에 대해 생각을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다.
베를린은 최근 힙스터들의 사랑하는 도시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던 탓에 경제적 발전은 더뎠지만, 가난한 예술가들이 버려진 동네를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으로 채우고 개성 강하고 창의적인 도시로 거듭나면서 세계적인 핫 플레이스가 된 것이다. 특히 ‘회페’라고 불리는 복합 건물에 자리한 Hackesche Markt는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에서는 볼 수 없는 개성 넘치는 상점들이 모여있어서 골목을 따라 다니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 미로처럼 이어진 회페를 따라 걷다 보면 구글맵으로도 길을 놓치기 쉬우니 주의할 것.



유대인 학살과 독일인들의 반성
분단과 통일이라는 굵직한 역사와 함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역사는 바로 히틀러와 유대인 학살이다. 1933년 나치당의 당수로서 독일 수상이 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인 히틀러. 그가 벌인 만행들은 책으로, 영화로 수없이 보고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 만행의 절정 앞에 서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제각각 다른 크기로 2711개의 콘크리트 판이 세워져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통로를 따라 걸으니 무참히 희생된 유대인들의 고통이 들려오는 듯해서 숙연한 마음이었다. 유대인 학살 관련 자료들을 모아 놓은 지하 방문자센터도 잊지 말고 들려보길 권한다.
유대인 학살의 참상을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뮌헨 근교의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찾았다. 최초의 나치 강제 수용소인 이곳은 남부 바이에른 지방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170개의 위성 노동 수용소의 중심이었고, 약 20만 명의 죄수가 이 수용소를 거쳐 갔다고 추정된다. 유대인들이 생활하던 막사, 생체 실험 기록, 바닥과 천장에서 가스가 분출되게 설계된 가스실 등을 무거운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조상들의 참혹하고 부끄러운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사과하고 반성하는 독일인들의 모습, 인간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악행을 벌인 히틀러가 최후를 맞은 히틀러벙커의 스산한 흔적은 역사를 넘어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고민하고 돌아보게 했다.



바흐, 슈만, 멘델스존, 그리고 베를린필
클래식 음악의 거장 바흐, 베토벤, 브람스, 헨델 등을 떠올리면 독일이 음악으로도 유서 깊은 나라임을 잘 알 수 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 토마스 소년 합창단의 토마스교회, 바흐 박물관, 게반트하우스, 슈만 하우스와 멘델스존 하우스 등이 있는 라이프치히는 시간이 악보에 맞춰 흐르는 것 같은 음악의 도시이다. 또 1989년 평화 혁명의 시작점이었고, 공산주의 통치를 겪으면서도 개혁과 혁명을 주도할 정도로 정열적인 도시였다. 라이프치히를 둘러보는 동안 거리 곳곳에서 길거리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선율을 들을 수 있었고, 쌀쌀한 겨울 날씨도 이겨낼 만큼 가슴이 따뜻해져 왔다.
독일에서 꼭 클래식 공연을 직접 듣고 싶었던 나는 다행히 여행 일정에 맞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예매할 수 있었다. 세계 3대 오케스트라의 명성과 콘서트홀의 독특한 외관은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꼭 한번은 들러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발산한다. 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자와 베를린필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러시아 음악의 하모니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독일의 알프스, 추크슈피체
추크슈피체(Zugspitze)는 해발 2,962m에 달하는 독일의 최고봉이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가 걸쳐 있는 알프스 산맥 산봉우리 중 독일 쪽에 해당하는 곳으로, 날씨가 좋으면 정상에서 알프스 4개국이 한눈에 보이는 알프스 파노라마 전망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산악열차를 타고 한 시간 넘게 산을 오르고, 또 케이블카로 갈아타서 다다른 알프스 정상은 그야말로 겨울왕국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추크슈피체 정상에서 바라본 깎아지른 듯 뻗은 산맥과 하얀 눈,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같이 가까운 하늘, 그리고 그 위를 유유히 날고 있는 새 한 마리, 그저 너무 아름답다는 말밖에 안 나왔다.
산악열차의 종착점인 Zugspitzplatt에는 스키와 스노보드를 즐기는 독일인들이 북적였다. 한없이 이어지는 슬로프를 스키를 타고 내려가면 어떤 기분일까. 아이들이 너무 스키를 타고 싶어했지만 시간이 부족한 여행자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 아쉬운 대로 눈썰매를 빌려 알프스 산맥의 눈 위를 달려보았다.

도시마다 특색있는 크리스마스 마켓
겨울 유럽여행에서만 즐길 수 있는 볼거리로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다.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유럽에서도 가장 유명해서 베를린, 라이프치히, 뉘른베르크, 뮌헨 등 방문하는 도시마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았다. 마켓에 따라 1유로 정도 입장료가 있는 곳도 있는데,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 보고 먹고 즐길거리가 풍성했다.
특히 쌀쌀한 날씨에 글뤼바인을 마시며 마켓을 구경하는 건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다. 글뤼바인(Gluhwein)은 포도주에 향신료를 더해 따뜻하게 데운 술로, 프랑스에서는 뱅쇼라고 부른다. 마켓마다 다양한 디자인의 머그컵에 따라주므로 이번엔 어떤 컵인지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아이들은 알코올 없는 글뤼바인을 마시면 된다.
이밖에도 독일은 축구와 노이슈반슈타인 성도 유명하다. 축구광 아들을 위해 FC 바이에른 뮌헨 축구팀 홈구장인 알리안츠 아레나 투어를 신청해서 축구장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뮌헨 사람들이 얼마나 홈팀 FC 바이에른 뮌헨을 사랑하는지, 독일 분데스리가의 열정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시간은 참 빨리 흘러 얼마 전 새학기를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한 학년의 끝에 섰다. 각자 스케줄이 바쁘고 개성이 강한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함께 무언가를 하기가 힘든 일 년을 보내면서 아쉬움도 컸다. 그래서 열흘간 일상을 떠나 아이들과 뽁닥거리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주위에선 사이만 더 벌어지는거 아니냐, 이제 중2 되는데 무모한거 아니냐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지만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 것 같아 그냥 떠났다.
2016년, 2017년에 이어 이번이 아이들과 함께 한 세 번째 유럽 배낭여행이었다. 아이들은 일년 새 또 많이 컸고, 사춘기 티를 팍팍 내면서도 아직은 엄마한테 어리광을 부리는 아기같은 모습도 보여줬다. 당분간은 장기 여행이 쉽지 않을거고, 또 학업 부담은 더 커져갈거다. 앞으로 성장통을 겪을 때면 함께 여행한 시간들이 추억이 되고 사랑이 되어 그 힘듦을 버텨낼 지지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박혜준 리포터 jenna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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