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를 소재로 한 공연이라면 무겁고 슬픈 이야기를 먼저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조금 다르다. 엉뚱하고 유쾌한 상상력으로 웃음을 끌어내다가 어느 순간 가슴 한쪽을 먹먹하게 만든다.
지난 10월 1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한남동 더줌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공연을 관람했다. 이날 춘자 역은 백현주, 큰아들 진수 역은 윤성원이 맡았다.
이야기는 칠순을 맞은 춘자씨의 생일잔치에서 시작된다. 가족들은 생일 소원을 묻지만 춘자씨는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떠올리지 못한다. 그러다 느슨해진 정신줄에서 빠져나온 ‘영혼의 물고기’를 따라 기상천외한 여행을 떠난다. 현실에서는 갑자기 사라진 어머니를 찾아 가족들이 동네 곳곳을 헤맨다.

작품의 매력은 치매를 환자의 이상행동이 아닌, 그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데 있다. 가족들에게는 당혹스럽고 답답한 상황이지만 춘자씨에게는 나름의 이유와 사연이 있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무대는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에게도 여전히 감정과 삶의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백현주는 천진난만한 모습과 노년의 쓸쓸함을 오가며 춘자씨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노인이 아니라 한때 누군가의 딸이었고, 자신의 꿈과 소망을 품었던 한 사람으로 다가오게 한다. 큰아들 진수를 연기한 윤성원 역시 어머니를 향한 걱정과 현실적인 부담이 교차하는 가족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영혼의 물고기’라는 독특한 장치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이 하나둘 빠져나간다는 슬픈 현실을 동화 같은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유머와 음악이 어우러진 무대는 치매라는 무거운 주제에 관객이 조금 더 편안하게 다가서도록 돕는다.
공연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실수하면 성장하는 과정이라며 기다려주지만, 나이 든 부모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 쉽게 답답해한다. 어쩌면 노년에도 어린 시절과 같은 기다림과 이해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부모를 잘 모셔야 한다는 교훈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기억이 흐려진 뒤에도 한 사람의 존엄과 마음을 어떻게 지켜줄 것인지 조용히 묻는다. 그래서 공연이 끝난 뒤 남는 것은 치매에 대한 두려움보다 가족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누구나 언젠가는 춘자씨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곁에는 이미 저마다의 춘자씨가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웃으며 시작해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드는 공연이다.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11월 15일까지 더줌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백인숙 리포터 bisbis68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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