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2만원의 사랑(?)

지역내일 2016-11-18

해마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분이 있다. 바로 내가 재직하고 있는 중산고등학교의 설립자인 고 신호일 이사장님이다. 아담한 체격에 이마가 훤하고 늘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며 항상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셨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함경도 북청 출신으로 6.25때 남쪽으로 피난을 오셔서 힘든 세상사 모진 고생을 하며 한푼 두푼 돈을 모아 자신의 못 배운 한(恨)을 승화시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후학을 양성해 훌륭한 동량을 만들어 보겠다는 고귀한 생각 속에 자신의 사재를 털어 헌납하며 세운 학교. 그 학교가 바로 지금 내가 근무하는 중산고등학교이다.

사실 처음 인가 받았을 때는 이쪽 지역의 지명을 따라 수서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았지만 당신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아호도 태어난 살았던 고향 땅의 이름 중산리의 지명을 따라 중산으로 하고 교명도 중산으로 개명하면서 많은 애정과 정성을 쏟았던 이곳. 그분의 손때가 묻은 이곳이 내가 현재 20년이 넘도록 근무하고 있는 나의 직장이자 나의 일터이고 나의 삶의 대부분을 함께한 동료들이 있는 바로 중산고등학교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입사할 때만 해도 교직 초년생으로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지금은 세월이 나를 이기고 저 만큼 앞서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그랬다. 선생님들도 동년배가 제일 많았고 또 절반은 선배였지만 모두가 30세 전후의 젊은 시기였다. 우리는 그 젊음과 패기를 자랑삼아 열정을 가지고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며 매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최단기간에 우리의 위상을 정립하며 명실상부한 명문고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일이 많았는데 참 신기하기만 하다. 돌이켜보면 아마도 그것이 시너지효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우리는 성장을 거듭해 왔다. 그 중심에 나도 속해 있다는 자부심과 함께 오늘의 모습을 위해 함께 해 왔다. 내가 이맘때 그분이 생각나는 것은 교직 초년 시절인 20년 전의 조그만 사건(?) 때문이다. 예전에는 학교의 문화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휴일에도 학교에 당직을 서는 교사가 있어야 했고 아침에 출근하면 출근부에 도장을 찍어 출근 확인이 이루어졌다. 주번 학생들이 분주히 아침마다 교무실과 복도를 청소하던 풍경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명절 연휴 기간에 당직 근무를 서게 되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 책을 보고 있는데 교무실 출입문이 삐걱하고 열렸다. 누군가 인기척이 나서 돌아보았더니 그 어르신께서 오셨다. 나는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여 주뼛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리고 있을 때 그분께서 “괜찮아!” “오늘 김 선생님이 근무시구먼!” 나는 얼떨결에 “예, 그렇습니다.” 그 뒤로 이런 저런 말씀을 하셨는데 경황이 없어 기억나질 않았다. 아마도 엄청 긴장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분과의 20여 년 전의 일을 기억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돈(?)이었다. 느닷없이 돈 이야기를 하니까 나도 좀 쑥스럽기도 하고 오래전 일이지만 얘기를 해도 될까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실이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사건의 발단은 집에서 책장을 정리하다가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 눈에 들어 와서 무심코 꺼내어 책장을 넘기며 살피던 중 책 속에서 구권 화폐 1만 원짜리 2장을 발견하였다. 이게 무슨 돈이지? 책속에 내가 비상금을 숨겼나? 하던 생각도 잠시 20여 년 전 당직근무를 서던 그날 그 어른께서 내게 말씀하셨던 내용이 또렷이 기억나며 그 장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김선생! 내가 꼭 점심을 사주고 싶은데,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김 선생 미안해. 대신 점심 값을 줄 테니 맛난 거 꼭 사드시게.” 그 분의 음성이 들렸다. 나는 그 돈을 받을 수도 없고 안 받을 수도 없고 정말 난처한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손사래를 칠뿐이었다. 그때 그 어른은 인자하게 웃으시며 “이 사람아! 괜찮아! 내가 주는 건 촌지가 아니야! 그러니 받아도 돼!” 억지로 그렇게 2만원을 용돈(?)으로 받았다. 그리고 곧 바로 당신은 자리를 뜨셨다. 나는 그 돈을 들고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특별한 분이 주신 특별한 돈이니까 잘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들고 있던 책갈피에 끼워 두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도록 기억도 못하고 있다가 얼마 전 책 속에서 그 돈을 발견했다. 그리고 또 20여 년 전의 상황을 그리며 상념에 잠겨본다.

자신의 삶 속에서 ‘삶은 고단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며 항상 검소하게 생활하던 그분의 모습이 그려진다. 노후에 간암으로 투병하면서도 태연하게 학교 행사에 참석하고 잔잔한 미소로 모든 이를 맞아 주셨던 그 분. 병원에 누워계시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된다며 한사코 면회도 사절하신 그 분. 당신의 장례식에 절대로 부의금 받지 말라 하셨던 그 분. 오늘을 사는 나에게 청렴한 삶과 노력하는 삶의 표본이 되어 주셨던 그 분. 오늘따라 가슴이 시리도록 그분이 생각난다.

온갖 부정과 부패로 만연된 우리의 삶을 바로잡고자 일명 ‘김영란 법’이 발효되고 적지 않은 혼란이 있지만 내 가슴속에 기억되는 그분에겐 이런 법조차 필요 없으셨던 삶이었기에 그저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그 분이 만드시고 세우신 이곳에서 그 분의 건학이념에 따라 매사에 떳떳하고 정직한 사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줄 아는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을 길러내는 거룩한 이 사역에 내가 일원이 되었다는 자랑과 자부심을 가지고 그 분이 내게 사랑의 표현으로 남겨주신 2만원. 그 2만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삶으로 기억되는 2만원이 되도록 부끄럼 없는 선생의 길을 다짐해 보며 오늘도 중앙 현관에서 항상 자애로운 미소로 우리를 반기는 그 분의 흉상을 바라보며 감사와 행복의 마음으로 교실로 향하는 계단을 오른다.  


김재수 교사(중산고 생활지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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