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교원평가 결과지에 대한 단상

지역내일 2016-12-01

1년의 시간, 그 끝에 닿아있는 12월이 되면 왠지 겸허한 마음가짐이어야 할 것 같다. 올 한해 자신의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여기에는 주관적인 자기반성이 주가 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상적이고 지엽적일 수밖에 없기에 아무래도 객관적인 숫자와 학생들의 코멘트에 눈을 돌리게 된다. 교원평가 결과를 몇 번이고 다시 뒤적이고 밑줄을 그어가며 읽어본다. 그러한 과정이 사실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도리어 사뭇 두려운 마음이 크다.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학생 때의 성적표만큼이나 똑같은 떨림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동료 교원 평가나 학부모 평가는 참고를 하는 정도다. 아무래도 나를 잘 알지 못하리란 생각에서다. 그러나 학생들의 평가는 다르다. 실제 많은 시간을 함께했고, 요즘 학생들은 상당히 직설적이기에 그들의 평가는 충분한 타당성을 근거로 한다. 5점 만점의 수치는 의무적으로 체크를 하도록 되어있고, 희망하는 학생은 덧붙여 자유서술식 문항을 작성할 수 있다.

출력해보니 12장의 자유서술식 문항에 대한 답변, 한 장에 12개의 코멘트가 들어가니 대략 140여개의 학생들 목소리가 담겨있다. ‘김태훈’이라는 교사의 좋은 점과 바라는 점에 대해 장난스럽게 쓴 글도 있고, 정색하는 분위기가 올곧이 전해지는 글도 있다. 대략적인 비율로 정리해보니 11장의 좋은 이야기와, 1장의 쓴 소리가 담겨있다. 나는 자연스레 쓴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이들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불만의 대부분은 ‘잠’을 그 원인으로 한다. 잘 가르치지는 못하더라도 학생들이 잠으로 시간을 허비해버리는 것은 간과할 수 없다는 게 나의 교사로서의 신념 중 하나다. 그래서 수업 중에는 아이들을 집요하게 깨운다. 그러면 당연히 학생들은 힘들어한다. 나에 대한 쓴 소리에는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게 그렇게 잘못이냐는 되물음과 수업을 하다 잠을 깨우기 위해 책상이나 칠판을 치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글도 몇 개가 보인다.

잠을 자는 학생을 깨우는데 쓰는 에너지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더 쏟아달라는 글도 있고, 내가 특정 반을 무시한다거나 짜증을 낸다거나 하는 불만 글도 여럿 보인다. 내가 정말 그렇게 행동했을까. 사실 이 말은 정확하게… 맞는 말이다.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잠을 깨우다 보면 학생들과 마찰을 빚을 때가 있다. 교사로서 자는 학생을 깨우는 기본적인 마인드는 수업 시간에 어떻게 잠을 잘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피곤하면 저렇게 잠을 잘까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다. 그래서 조는 학생을 톡톡 깨우고, 그래도 잠이 오면 뒤로 나가 서 있다가 잠이 깨면 자율적으로 앉게 하거나, 그마저도 나아지지 않으면 화장실 가서 세수를 하고 오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잠을 몇 번이고 깨워도 깨려는 노력 없이 그 자세 그대로 또다시 자는 학생이다. 한쪽다리를 거나하게 무릎에 얹고 의자 뒤로 크게 기대서는 앞에 서 있는 선생님을 전혀 어려워하지 않는 학생도 있고, 그러다 도를 지나쳐 눈을 부라리며 나에게 오히려 성질까지 낼 때도 있다. 학생이 예의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면 그것은 무엇보다 엄하게 혼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부는 잘 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지만, 예의가 없고 인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학생은 확실히 그 잘못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몇의 학생과 이러한 문제로 충돌이 있었고, 그 학생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같은 반 학생들이었다. 수업에 대한, 교사로서 인격에 대한 감정이 상하자 그 반 수업을 정말이지 들어가고 싶지 않았고, 억지로 교단에 선 나는 내 저의가 어떻든 분명 짜증이 묻어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 반에서는 정상적인 수업이 진행될 수 없다고 판단했고, 학생들은 수업과 자습 중 자습을 택했다. 2학기 중간고사 이후 나는 그 반에 들어가 학생들 출석을 부르고, 자습을 하게하고, 한 시간 내도록 돌아다니며 자는 학생들만 깨웠다. 내가 수업에 들어가는 8개 반 중 유일했고, 8년 만에 이런 반 역시 처음이었다.

나는 왜 이 반 학생들과 내가 이렇게 틀어졌는지 고민했다. 그리고 너무도 굳건한 바위 같았던 자는 학생을 깨우는 것에 대한 나의 신념이, 그것이 오히려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나아갔다. 아이들의 말처럼 굳이 학생들과 문제를 만들 필요 없이 수업 듣는 학생 중심으로 즐겁게 수업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는, 필사적으로 자는 학생을 굳이 깨우지 않았다면 부딪힐 일조차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들. 주변 선생님의 조언도 구해보고, 다른 반 학생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문제였기에 오랜 시간 고민했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이런 결론을 얻었고,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주었다.

선생님은 내년에도 자는 학생을 깨울 거라고. 피곤해서 졸릴 수는 있지만, 엎어져 자는 것은 가능성이 무한한 너희들에게는 스스로에게 너무도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너희가 최선을 다하리라 믿고 있는 부모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행동이라고. 나는 ‘강사’가 아니라 ‘교사’이기에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그렇게 말이다.
예의에 어긋난 것에 대한 불같은 내 성격도 물론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앞으로 이런 반이 또 생기지 않도록. 그것은 내가 잘못한 것이 확실하고, 나 역시 갈 길이 한참이나 먼 부족함 많은 진행형의 교사에 불과하다.

자유서술식 문항에 한 학생이 이런 글을 적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12년 중 가장 좋은 담임선생님이십니다. 공부뿐만이 아니라… 이하 생략
11장의 좋은 평가는 나에게 민망할 만큼 과분하다. 그런데, 이 글 하나면 올 한 해, 나에게 그럭저럭 잘 한 것 같지 않느냐고, 다소 의기소침해 있는 나에게 ‘괜찮아’라고 다독여주고 싶어진다.


김태훈 교사 (단대부고 진로진학부·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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