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자장면의 추억

지역내일 2017-01-19 (수정 2017-01-19 오후 6:17:54)

새해가 시작되면서 여러 가지 업무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방학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매일 출근해 신학기 계획을 세우고 공문서를 처리하느라 시간이 어찌 흘러가는지 잠시 앉아서 일했을 뿐인데 점심을 훌쩍 넘기기가 일쑤다. 찬바람이 부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간의 교직생활을 생각해 보는데 오늘은 우리학교 3회 졸업생이었던 제자들과의 재미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교실에서 사라진(?) 제자들
지금은 30대 후반의 멋진 녀석들로 변했지만 그땐 말썽도 많았고 다치는 경우도 엄청 많았다. 지금처럼 겨울방학에 그땐 보충수업을 전체가 실시할 때여서 대다수의 학생들이 시간표대로 4시간씩 오전에 수업을 받았다. 처음에는 다들 새 학년 준비를 위해 열심히 공부도 하고 그런대로 분위기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일주일쯤 지났을 때로 기억된다. 3교시가 영어시간이었는데 다른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던 나에게 영어선생님이 찾아오셔서 다급한 목소리로 “선생님! 교실에 애들이 10명밖에 없어요! 수업을 해야 하는데 학생들이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교실로 달려갔고 상황을 확인해 보니 교실에 45명이 있어야 하는데 10명밖에 없고 나머지는 가방은 있는데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교실에 남아 있던 몇 명의 아이들에게 탐문한 결과 2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에 인근의 오락실로 모두 게임을 하러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엔 휴대전화도 없는 시기여서 달리 연락할 방법도 없었고 무작정 들어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열이 받을 대로 받은 나는 수업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4교시가 끝나기 전에 교실 문 앞에 가서 몽둥이를 들고 교문을 바라보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기 10분전 쯤 녀석들은 정문 경비실에서 보일까봐 허리를 잔뜩 수그리고 일렬종대로 마치 뱀이 기어가듯 교사로 뛰어들었다. 1차로 올라온 20여명을 복도에서 붙잡아 몽둥이 뜸질을 하고 있었는데 나머지 녀석들은 그 기세를 보고 도저히 들어 올 수 없었던지 다시 도망을 가버렸다. 나는 화가 나서 교실 출입문을 모두 잠그고 열쇠를 책상에다 감추어 버렸다. 그리고 도망을 나간 녀석들 집집마다 전화를 해서 사실을 알리고 협조를 구했다.

한차례 폭풍이 휘몰아치고 점심 끼니도 거른 채 퇴근하려고 일어서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집에 있는 아내의 전화였다. 내용인즉 한 두어 시간 전부터 아파트 입구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서 내다보니 학생들 10여명이 우리 집 앞 복도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어디서 본 듯한 학생들이라고 한다. 그러더니 이내 우리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던 우리 반 학생들 같다고 이야기 한다. 화가 잔뜩 난 나는 집사람에게 “당신이 밖에 나가서 그 놈들 전부 무릎 꿇고 꿇어앉아서 기다리라고 해!”

말은 했지만 전달해 줄 리 만무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내가 차에서 내리고 아파트 출입구에 들어서니 기가 막힌 상황이 펼쳐져 있다. 이놈들이 내가 오는 것을 망을 보고 있다가 모두 꿇어앉아서 목을 늘어뜨리고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파트 주민들이 내다보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제자들을 집까지 불러서 야단하는 아주 몰상식한 선생으로 낙인찍힐 위기의 순간이었다. 나는 전부 돌아가라고 소리를 냅다 지르고 밖으로 다 내몰았다.

집으로 들어서는 나를 향해 집사람은 아이들이 몇 시간째 추운 밖에서 떨었을 터인데 뭘 얼마나 잘못했는지 모르지만 이건 좀 아니라는 식으로 말을 건넸다. 나는 이미 화가 난 상태였기에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점심을 먹으려고 했다. 그랬더니 집사람이 대뜸 좀 있으면 자장면 배달 올 거니까 그때 아이들과 함께 먹으라고 한다. 그러더니 문을 열고 아이들을 모두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불러들였다. 나는 기가 막혔지만 집사람이 하는 대로 그냥 보고만 있었다. 아이들이 거실에 들어와 벌을 서듯이 서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고 마침 자장면이 배달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둘러 앉아 자장면을 먹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누고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돌려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다른 아이들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기에 자장면을 먹었던 아이들을 복도로 불러내 엉덩이를 두어 대씩 매질을 했다. 그런데 어제 맞았던 녀석들이 불공평하다고 아우성이었다. 어제는 정말 맞으면 죽을 것 같았는데 오늘은 너무 살살 때린다고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미 우리는 자장면을 나누어 먹은 사이가 아닌가. 그렇게 그날의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다.

말썽쟁이 제자들, 사회에서 나름의 역할하고 있어
그리고 지난 12월 28일 반가운 얼굴들을 상봉하게 되었다. 바로 그날 자장면의 주인공들을 다시 만났다. 어떤 녀석은 기자가 되었고, 또 어떤 녀석은 국내 최고기업의 반도체 분야 연구원이 되었고, 또 어떤 녀석은 의사가 되어 정형외과 전문의가 되었다. 또 어떤 녀석은 박사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고, 또 어떤 녀석은 가업을 이어 사업에 매진해 지금은 꽤 큰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되었다. 또 어떤 녀석은 일반기업의 중견 간부로 그리고 어떤 녀석은 교수가 되었다.

10여명이 모인 그 자리에 절반은 내가 주례하고 결혼식을 치른 녀석들이다. 이제는 초등학교 학부모가 된 녀석도 있고 모두가 30대 후반의 가장들이 되었다. 우리는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옛일을 이야기하며 그날 자장면을 먹었던 일을 회상하곤 다들 박장대소하고 웃었다. 나는 매를 맞았네, 나는 자장면 곱빼기를 먹었네, 이렇게 서로 옥신각신 웃음꽃을 피우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그날 컨디션이 별로 좋이 않았던 나에게 잠자리에 들 무렵 메시지가 몇 통 계속 왔다. 녀석들이 돌아가며 “선생님 아프지 마시고 오래 오래 건강하게 우리 곁에 계셔주세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다음엔 사모님도 꼭 모시고 나오세요!” 등등의 내용이었다. 잠자리에 누운 내 콧등이 시큰해졌다. 모두들 자신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며 번듯하게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내 제자들. 그래 난 너희가 있어서 참 행복하다. 그리고 고맙다!

속으로 고마운 마음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행복해 했다.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교단을 떠나지 않고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사랑하는 내 제자들의 나를 향한 그 순수한 사랑 때문이었으리라. 그렇게 재미있고 즐거운 하루하루의 삶이 내겐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으로 기억되기 위해 교실로 향하는 계단을 기분 좋게 오른다.

김재수 교사(중산고 생활지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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