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작심(作心) 30일

‘또’로 시작하는 4월

지역내일 2017-04-14

당차게 시작한 학교생활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늘어져 버린 긴장감, 슬금슬금 자리 잡는 게으름, 현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배경지식, 방향성을 상실한 채 튀어 오르는 활화산 에너지, 유혹에 풀려버린 자제력, 예전엔 미처 몰랐던 바닥난 극기력, 핑계와 변명으로 일관하는 책임전가, 시간을 무색케 하는 잡담 등 사면초가의 현실이 녹록하지 않은 탓이다.
애초의 의지와 다르게 또 한 해가 썰물처럼 흘러가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든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매몰차게 다그치고 무너져 가는 초심을 담금질해 보지만 속절없이 지나가 버린 한 달의 당혹감은 금할 길 없다. 친구들은 뛰어가는데 왜 혼자만 제 자리를 맴돌고 있을까 하는 낭패감이 드는 건 비단 혼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연녹색 바람이 스쳐지나간 듯 주위의 초목들은 자기만의 태깔로 하루가 다르게 변신하지만, 머지않아 학생들은 중간고사 성적 순위에 의해 스스로의 존재감을 계량화하고 자신감을 서열화할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학교생활이 곧 사회생활은 아니라고 소리 높여 항변이라도 하고 싶지만 억지스런 변명이나 구차한 핑계 따위로 여겨질 게 뻔하기에 소심한 자괴감에 고개를 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주안점은 동·서양이 서로 다르다. 동양의 교육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에 중점을 둔다. 전통과 기존 지식의 습득을 중시하는 동양에 비해 ‘밖으로(e) 끌어내다(ducare)’란 의미의 ‘educare’에서 유래된 서양의 교육(Education)은, 재능을 끌어내는데 방점을 찍는다. 그런 의미에서 서구 사회가 과학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물론 바람직한 교육은 사회구성원이 익혀야 할 생활양식 위에 개인의 잠재력과 수월성을 더해가는 것이다. 공동체로서의 민족성과 문화는 같더라도, 개개인의 유전인자와 가풍, 교육과 생활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저마다의 개성과 적성, 기호와 취향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육의 관건은 ‘우리’의 지식에 ‘나’의 개성을 어떻게 녹아내느냐에 있다고 하겠다.
학문은 배우고(學) 묻는(問) 과정이다. 지식을 일방적으로 배우는 행위가 아니라 상대에게 배움의 원리를 묻거나 스스로에게 이치를 되묻는 소통의 한 방식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학문은 지식을 배우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음을 통해 이치를 터득하고 의미를 습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꾼 창조적 소수자들은 사회와 사물의 본질에 관한 물음뿐 아니라 ‘나’와 우리, 나아가 자연과 우주에 대한 되물음으로 역사를 이어왔다.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Steve Jobs)도 물음과 되물음으로 사회통념을 깨뜨리고 문화적 영감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질문 없는 수업이나 메아리 없는 강의의 홍수 속에서 일방적인 배움에만 골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진정한 배움이란…
배움(學)과 익힘(習)의 교집합이 학습이다. 배움(學-learning)이 수동적인 교육의 통로라면 익힘(習-studying)은 능동적인 학습과정이다. 화가 피카소(Picasso)도 어린 시절, 직업으로 소묘를 가르치던 아버지로부터 새의 발톱을 수없이 반복하는 그리기 교육을 받았다. 이런 정성과 익힘 덕분에 그림의 원리를 터득하고 자기만의 그림세계를 열어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대체로 우리는 배움에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그 배움을 내 것으로 익히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편이다. ‘1만 시간의 법칙’처럼, 꾸준한 익힘의 과정이 있어야 그들의 지식이 내 앎이 되고 나아가 자기만의 독창성이 더해져 창의성이 발현되는 것이다. ‘지루하다’ 혹은 ‘바쁘다’는 핑계로 반복적 익힘을 소홀히 하게 되면 결국 쏟아 부은 힘에 비해 결과가 시원찮고 나대는 데 비해 내실이 없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작심(作心) 한 달
‘다름’은 ‘틀림’이라는 편견 속에 개성이 묻혀버리고, 순수한 의문이 딴지를 거는 것으로 오해되며, 익힘이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흥미와 재미로 숨은 힘을 이끌어내고, 배움에 물음과 익힘을 더하는 자기주도학습이 인성과 창의성에 디딤돌이 되는 시대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배움의 본질과 익힘의 과정, 학습의 원리를 새롭게 인식하고 어제와 다른 내일을 준비해 보자. 어미닭이 때에 맞춰 껍데기를 쪼아줘야 병아리가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듯이, 공부에도 ‘줄탁동시(啄同時)’가 필요하다.
기존의 지식에 자신의 재능을 더하고 배움에서 물음을 낳고 그 물음이 익힘으로 성숙되면 어제와 다른, 꿈꾸던 내일이 펼쳐지지 않을까? 내일은 오늘의 다른 이름이며, 청소년은 현존하는 아름다운 미래다.

휘문고 이종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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