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관계·주체성으로 성장하는 선사고의 혁신교육

강동구 선사고등학교(학교장 정연정, 이하 선사고)를 떠올리면 ‘혁신학교’라는 말이 먼저 따라온다. 학생자치와 공동체 활동, 프로젝트 수업, 학교 밖 체험 등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다양한 교육활동을 꾸준히 펼쳐오며 혁신교육의 현장을 성실하게 보여왔다. 선사고는 학생들이 사고력을 키우고, 삶에서 주제를 끌어오며 교실에서 배운 내용을 사회와 잘 연결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도움말 · 강은경 혁신부대표교사
지식을 넘어 사고하고, 삶과 연결해 배우다
선사고가 2026학년도에 새롭게 강조하는 것은 ‘무엇을 많이 하는 학교인가’가 아니다.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그 배움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채롭고 개성 있는 활동 중심으로 알려졌던 혁신학교의 모습을 넘어 이제는 각각의 교육활동에 담긴 ‘배움의 의미’를 더욱 알차게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강은경 혁신부대표교사는 “우리 학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학교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살펴봤습니다”라며 “결국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학생들이 잘 배우는 것이고, 그 배움에 조금 다르게 접근하는 것이 혁신학교로서 선사고가 가진 교육적 특성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선사고에서 말하는 배움은 단순히 교과서의 지식을 익히고 시험에서 정답을 찾는 데 머물지 않는다. 사고력을 키우고, 학생의 삶에서 주제를 끌어오며, 교실에서 배운 내용을 사회와 연결하는 것이 중요한 배움의 과정이다.
수업 역시 프로젝트형 참여활동과 협력학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혼자 경쟁하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배우도록 한다. 특히, 선사고가 강조하는 교육방식 가운데 하나가 ‘주제 융합수업’이다. 하나의 중요한 삶의 문제를 특정 교과에 가두지 않고 여러 교과가 함께 접근하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하나의 현상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지식의 경계를 넘나들게 된다.

주제 융합수업에서 선택한 핵심어는 ‘관계’다.
최근 청소년들의 또래 관계와 소통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선사고는 ‘관계’를 단순한 생활지도 차원이 아니라 ‘배워야 할 것’으로 바라봤다. 1학년을 대상으로 비폭력 평화교육, 비폭력 대화, 차별과 혐오에 대응하는 교육 등을 단계적으로 진행했다.
첫 단계에서는 안전한 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고, 다음에는 평화롭게 대화하는 방법을 익혔다. 이어 차별과 혐오를 주제로 일상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돌아보고, 그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다.
단순히 ‘이런 말은 하면 안 된다’라고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경험과 감정을 돌아보고 사회적 현상을 이해하면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런 주제를 다룬 융합수업에는 국어와 사회 교과가 중심적으로 연결되었다. 사회에서는 사회적 소수자와 존중의 문제를, 국어에서는 말하기와 비폭력 대화의 문제를 다뤘다. 타 교과교사들도 협력하면서 하나의 주제를 학교 전체가 함께 배우는 구조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1학년에서 3학년까지 성장의 길을 잇다
선사고가 올해 교육과정을 정비하면서 특히 힘을 준 부분은 ‘계열성’이다. 좋은 프로그램을 하나씩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학생의 성장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길러주고자 하는 교육목표를 ‘배움·관계성·주체성’이라는 세 영역으로 구조화했다.
‘배움’은 1학년에서 기초를 쌓고, 2학년에서 깊이를 더하며, 3학년에서는 자신의 삶과 연결해 결실을 맺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관계성’도 학년에 따라 단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1학년에서는 소통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2학년에서는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방법을 익히며, 3학년에서는 스스로 주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선사고가 말하는 ‘주체성’은 일반적인 의미의 진로 교육보다 넓은 개념이다.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힘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표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와 관심 분야를 바탕으로 교과와 교과를 연결한 심화탐구를 진행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탐구의 깊이와 범위를 넓혀가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 2026학년도 선사고 교육과정 구조도
‘탐탐탐’으로 진로와 배움을 연결하다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 분야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도록 마련한 대표적인 활동이 ‘탐탐탐’이다. 1학년 진로심화탐구(나와 세상을 탐험하기), 2학년 교과심화탐구(나를 발견하기), 3학년 개념심화탐구(세상으로 나아가기, 전공 및 직업)를 뜻하는 ‘탐탐탐’은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교과를 연결해 탐구 주제를 찾고, 이를 점차 깊이 있는 활동으로 발전시키도록 돕는다.
독서 활동도 이러한 흐름 안에서 진행된다. 학생들은 교과와 관련된 책이나 자신의 진로와 관심 분야에 맞는 책을 선택하여 공동 관심사를 바탕으로 팀을 구성해 멘토 교사와 1년간 이어가는 자율독서활동을 진행한다. 또,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진로 분야 도서를 읽고 주제 탐구와 결과 발표로 확장하는 북극성 독서 활동도 잘 운영되고 있다.
선사고 대표 교양·인문학 강좌인 시민아카데미, 전문가 초청의 인문학 및 사회과학 캠프, 이공계 심화캠프 및 실험, 실습 등 다양한 선택형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특히, 올해 열리는 시민아카데미에서는 도전과 창업 주제로 치주물루 유나이티드 구단주의 ‘변방에서 세계를 마주하다’의 개성 있는 강연이 마련되었다. 외교와 정치 및 기후 분야에서는 ‘주권자로서 기후 위기에 마주하다’라는 주제를 다룬다. 사회과학캠프에서는 ‘디지털 전환 시대, 금융의 변화는?’이라는 주제로 경영 강좌가, 언어학 분야에서는 ‘AI를 활용한 체계적 글쓰기와 논리적 말하기’ 강좌가 준비되었다.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선사고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기회의 균등’이다. 가능한 한 모든 학생에게 참여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다. ‘누구든 성장하고자 한다면 그 기회를 고르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점이 중요하다’는 점, ‘협력’과 ‘고른 배움의 기회’가 선사고 교육활동의 핵심적인 차별점으로 꼽히고 있다.

교실 밖 세상에서 배우다
선사고에서 배움은 교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학급별 회복적 생활교육, 학급 캠프, 소규모 테마형 교육여행 및 공동체 활동, 학생자치, 체육·예술활동 등 학교생활 전체가 배움의 장이 된다. 특히, 학생과 학부모, 교사 3주체의 사전 논의를 바탕으로 한 의제 선정 및 공동체의 약속과 실천 점검 등은 바람직한 학교 공동체의 모범 사례로 서울시 일반고로 확장되고 있다.
학생자치 역시 단순히 행사를 기획하는 활동에 머무르지 않는다. 학생들이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경험을 하도록 하는 데 의미가 있다. 선사고 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은 학교 밖으로 배움의 공간을 넓히는 활동으로도 이어진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수업, 생태·환경 관련 활동 등을 통해 학생들이 학교 밖 세상을 직접 관찰하고 경험하도록 지도한다.
사회적협동조합 활동과 학생들이 참여하는 매점 운영도 선사고의 특징적인 교육활동이다. 학생들은 실제 운영 과정에 참여하면서 경제와 경영을 책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작은 조직을 직접 운영해 보는 알찬 경험을 갖는다.

많은 교육활동을 움직이는 힘, ‘교사 협력문화’
선사고의 다양한 교육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기반은 교사들의 협력 문화다.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교사 문화를 바탕으로 공동 수업 설계, 참관, 피드백으로 이어지는 협력 기반 수업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 학생 맞춤 통합 지원과 주제통합수업을 논하는 학년 연구모임, 수업 및 생활지도, 진로와 진학을 함께 연구하는 교원학습공동체 활동도 활발하다. 학교의 현안과 새로운 과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자발적인 TFT, 학교 교육의 방향을 함께 만들어 가는 토론과 협력 기반의 전 교사 워크숍 역시 알차게 운영 중이다.
강은경 혁신부대표교사는 “선사고가 강조하는 교사 협력 문화는 이런 교육활동을 개인 교사의 열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학교 전체의 교육과정으로 만들어 가는 힘입니다. 올해 학교가 교육과정뿐 아니라 학교 조직 자체를 ‘배움 중심’으로 다시 구성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라고 강조한다.

진학보다 먼저, 학생 성장의 가능성을 보다
진로와 진학에서도 선사고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 진학률의 숫자만은 아니다. 교육부 학교알리미 자료에 따르면, 선사고 학생들의 4년제 대학 진학 비율은 약 44~45%, 전문대학 진학 비율은 약 28~30% 수준이다. 그러나 학교가 더욱 중요하게 보는 것은 입학 당시와 비교했을 때 학생들이 얼마나 성장했는가이다. 학생의 진로와 진학을 입학 당시의 성적이나 성향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3년간 학교생활을 통해 얼마나 성장했고 시야를 넓혔는지를 함께 살펴본다.
혁신학교가 학업과 진학에 소홀하다는 일부의 인식과 달리, 선사고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꾸준히 탐색하고 교과와 연계한 심화탐구를 이어가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대학 진학에서도 적성에 맞는 길을 찾고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이다.
선사고가 보여주는 혁신교육의 핵심은 결국 ‘무엇을 많이 경험하게 할 것인가’에 있지 않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학생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발견하며,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있다. 배움에서 시작해 관계를 배우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는 것. 선사고가 2026학년도 교육과정에서 다시 세운 ‘배움·관계성·주체성’의 방향은 학생을 학교 교육의 중심에 놓겠다는 교육철학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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